1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뭐라 읽어야 할지 모를 불친절한 제목, 희생양을 붙잡아 놓고 “당신도 뭔가 죄를 저지른 게 있을 테니 고백하라”고 강요하는 살인자. 극화체로 시작했다가 갑자기 2등신의 카툰체로 바뀌는 그림까지, 의 첫인상은 낯설고 불편하다. 하지만 제목 그대로 ‘난감’해 하던 독자들을 작품의 팬으로 돌려놓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만화 속에서 우발적이었던 첫 살인을 필두로, 자신이 죽인 모든 이들이 공교롭게 ‘죽어 마땅한 부류’라는 걸 깨닫게 된 주인공 이탕은 자기 합리화의 과정을 거쳐 살인을 즐긴다.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라인만큼과 은근히 가려웠던 구석을 알아서 긁어주는 듯한 생생한 심리묘사는 불편하되 매력적이었다.

오래 전부터 을 준비해 온 작가는 작품을 시작하기 전 ‘꼬마 도깨비’라는 뜻의 필명 ‘꼬마비’의 앞에 분노할 노(怒)자를 붙여 ‘노마비’라는 이름을 달았다. 눈이 밝은 사람들이라면 눈치 챘겠지만, 작가는 2003년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에 연재하던 전작 의 주인공들을 10화에 깜짝 출연시켰다. 소박한 일상을 이야기하던 의 주인공들은 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에 대한 글을 읽으며 탄식한다. 귀여운 꼬마비의 세계와 분노하는 노마비의 세계는 그렇게 겹쳐진다. 자신의 일상에 대해 살갑게 말을 건넬 것만 같은 외양의 2등신 캐릭터들은 이제 작품 안에서 분노하고 증오하고 살인한다. “이제 웹툰의 세계에서 작가가 스스로를 고양이로 표현하든 병아리로 표현하든, 우리 옆에서 호흡하는 별반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인식이 독자들에게 쌓인 거 같아요. 그렇다면 이제 캐릭터들이 툰 안에서 섹스를 하든 살인을 하든 이질감이 없겠구나 싶었지요.”

이러한 두 세계의 삼투는 작가가 매 회 ‘작가의 말’로 남겨놓는 그 화의 BGM에서도 드러난다. 작품 전체의 정조를 맨 마지막 순간 단 한 줄로 반전시키는 BGM에 대해서 꼬마비/노마비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작품은 모두 저마다의 느낌으로 보겠지만, 정작 작가는 이런 느낌으로 이번 편을 봤다는 ‘디렉터스 컷’ 같은 시도를 해보는 거죠.” 다음의 곡들은 이처럼 자신의 작품 세계를 더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그가 영화의 OST에서 골랐던 의 BGM들이다.
1. Clint Mansell의
“은 개봉하고 나서 한참 후에 친구에게 소개를 받고 본 영화에요. 제니퍼 코넬리가 약에 중독돼서 인물은 가만히 있는데 배경이 막 흔들리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때 나오는 음악이 이 ‘Summer Overture’인데, 되게 좋았던 기억이 있었어요. 제가 고른 곡이 영화의 OST들인데, 어떻게 보면 곡의 이미지가 이미 정해져 있는 거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저 곡은 빼앗아 오고 싶다’고 욕심이 나는 곡들이 있어요. 제가 고른 곡들은 대부분 그런 곡이에요.” 대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의 전작 에서도 호흡을 맞췄던 클린트 만셀은 친구의 두 번째 영화 의 OST로 일렉트로니카 팬들에게 광적인 인기를 얻었다. 꼬마비/노마비 작가가 추천한 ‘Summer Overture’는 강하고 둔중한 비트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스트링의 조화가 멋진 곡으로, 장중하면서도 긴박한 멜로디로 수많은 영화나 TV 프로그램에서 변주되어 삽입되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바 있다.
2. Yann Tiersen의
“이탕이 지검사한테 해코지를 하는 프롤로그에 ‘Guilty’라는 곡을 고른 건 제목 때문이 아니라 분위기 때문이었어요. 긴박한 상황이지만 지직거리는 레코드 음악이 나오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저는 심각한 장면에 나오는 심각한 음악들이 별로 마음에 안 들거든요. 가령 홍콩 느와르 영화에서 주인공이 술집에 들어가 총을 난사하는 장면이 있다고 칠 때, 영화적으로는 웅장한 음악이 나오는 게 맞겠죠. 하지만 저는 그 순간 술집에 무슨 음악이 흐르고 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요. 사실 과 가장 닮은 정서를 갖춘 게 장-피에르 주네 감독님 영화라고 생각해요. 우연과 필연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프랑스 작곡가 얀 티에르상이 작업한 OST는 영화의 대 성공과 함께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의 음악을 담당할 작곡가를 찾던 장-피에르 주네 감독이 우연히 듣게 된 얀 티에르상의 음악에 반해 음반가게에서 그의 CD를 있는 대로 다 구매했단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다.

3. Various Artists의
“제가 음악 듣는 취향이 잡식성인 것처럼, 영화 보는 취향도 잡식성이에요. 영화 에서 주인공이 좌중을 압도하기 전에 그 판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친구가 부르던 음악이 바로 Jamie Scott & The Town의 ‘Made’라는 곡이었는데, 저는 오히려 그 음악이 주인공의 노래보다 더 신났던 거 같아요. 흔히 요새는 앨범을 사도 전곡을 다 듣진 않는 거 같은 데, 숨겨져 있는 곡 중에서 이런 좋은 곡도 있으니까 전곡을 들어보면 좋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언젠가 흥청거리는 느낌의 에피소드에 쓰이게 될 곡입니다.” 직접 에 출연하기도 한 제이미 스캇은 유명세와 실력에 비해 앨범이 늦게 발매된 아티스트로, 블루스에서부터 R&B, 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싱어송라이터다. 경쾌한 전자기타 솔로와 제이미 스캇의 가성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Made’는 작가의 말처럼 “흥청거리는” 맛이 즐거운 록넘버다.

4. James Newton Howard의
“영화를 극장에서 볼 때 처음에 압도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같은 경우는 프롤로그에 일러스트들로 옛날의 신화를 이야기 해주잖아요. 그때 깔리는 ‘Prologue’ 한 곡으로 ‘자, 관객 여러분, 제가 지금부터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건데, 그게 용이 등장하는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어느 아파트에서 진행이 됩니다’라는 판타지와 현실의 만남이 다 이해가 됐어요. 저도 제가 그렸던 프롤로그가 나중에 어떤 식으로 귀결될지 보여주는 화에 ‘Prologue’를 선곡할 거 같아요.” 엘튼 존의 키보디스트로 음악 경력을 시작한 제임스 뉴튼 하워드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신뢰받는 영화음악가 중 한 사람이다.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모든 영화의 OST를 담당한 제임스 뉴튼 하워드는 ‘Prologue’에서 여성 합창단과 글로켄슈필이 리드하고 관악기와 스트링이 뒤를 잇는 곡 구성으로 동화를 표방한 의 세계를 간명하게 표현해 냈다.
5. Ryo Yoshimata의
“사실 의 ‘Whole Nine Yards’에는 약간 개인적인 사연이 있어요. 영화를 보기 전에 이 곡을 먼저 접했거든요. 사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걸 계속 미뤘어요. 너무 아련한 곡의 감흥이 깨질까 봐. 미루고 또 미루다가 결국은 영화를 봤는데, 아쉽게도 음악만 들었을 때 느꼈던 그 애잔함이 100퍼센트 충족 받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이 곡의 느낌이 참 아련해서, 나중에 그런 내용이 나올 때 BGM으로 사용하게 될 거 같아요.” , , 등의 OST를 작업한 요시마타 료는 SBS OST에도 참여해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이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일본 공연의 키보디스트로 활약하기도 했던 그의 음악은 특유의 서정성으로 한국인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Whole Nine Yards’는 지금도 각종 방송이나 CF를 통해 만날 수 있는 그의 대표곡이다.
사진으로도 확인할 수 있듯, 꼬마비/노마비 작가는 군복 무늬 야상의 지퍼를 턱 끝까지 올려 입고 있었다. “사실 조만간 작품에서 탕이 이 옷을 입고 나올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미리 준비를 해보는 거죠.” (인터뷰 후에 나온 29화에 군복무늬 야상을 입은 탕이 등장한다.) 부산이 배경인 에피소드를 그리기 위해 직접 차를 끌고 대전에서 부산까지 가는 길을 살펴보고, 해운대에서 이름이 독특한 모텔을 찾다가 발견한 ‘잠자리 모텔’을 작품 속에 등장시킨 꼬마비/노마비 작가에게 주인공이 입을 옷을 먼저 입어보는 것쯤은 대단한 일도 아닌 듯 보였다. 문득, 정말로 어디선가 살인마 이탕이 밝은 대낮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쌓아 올린 리얼리티의 견고함은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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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승한 fourteen@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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