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한 SBS 에 이어 KBS 까지 더 이상 대한민국의 정치드라마는 ‘제 5공화국’에 머물러 있지 않다. 대통령이란 금기는 깨진지 오래. 이제 관건은 대통령이라는 존재의 무소불위나 청렴결백을 구술하는 수준이 아니다. 그 직위에 대한 통찰 혹은 그것을 얻기까지의 현실정치를 얼마나 깊이 있게 반영하는가에 달렸다. 누구나 욕하고 누구나 훈수를 두지만 멀 수밖에 없는 존재, 대통령. 그를 드라마 트루기의 가장 강력한 동력으로 삼은 를 위근우 기자와 윤이나 TV평론가가 점검했다. /편집자주
“솔직히 아직 모르겠습니다.” KBS 첫 회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느냐는 여당 대선 후보 장일준(최수종)의 질문에, 그의 사생아이자 그의 선거과정을 다큐로 남기고 있던 유민기(제이)는 이렇게 답한다. 이러한 보류는 전체 레이스에서 반 바퀴를 살짝 넘은 드라마에 대한 평가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듯하다. 어중간한 만듦새를 보여준다는 뜻은 아니다. 수많은 욕망과 신념이 뒤얽힌 혼탁한 공간으로서의 정치판을 순수와 타락의 이분법적 구도로서 재단하기보다는 그 안의 다양한 딜레마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는 제법 잘 만든 정치드라마다. 그럼에도 는 여전히 뚜렷한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작품이다. 현실 정치의 메커니즘을 드라마틱하게 재현하고는 있지만 그 메커니즘의 동력이어야 할 정치 철학과 신념에 있어 이 드라마는 종종 침묵하거나 어중간한 양시양비론을 취한다.
정치인의 딜레마, 그저 보여주는 것에서 멈추다
“장일준이라면 이 정치판을 바꿀 것 같아서” 선거캠프의 미디어 총책임자를 맡은 오재희(임지은)를 비롯해 지지자들은 장일준으로부터 구악에서 벗어난 새로운 정치를 꿈꾼다. 하지만 시민운동을 했다는 과거사를 제외하면 그가 새 시대의 정치인으로서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고비마다 새 공약으로서 위기를 돌파하지만, 무상 의료서비스 공약은 고상렬(변희봉) 미래당 대표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발표한 것이고, 비무장지대 환경특구 개발은 심지어 해킹을 통해 김경모(홍요섭) 후보 캠프의 것을 가로채기 한 것이다. 박을섭(이기열)과 비서의 스캔들을 언론에 흘리고, 청와대를 해킹하는 장일준의 부도덕한 전략을 정당화하는 것은 대통령이 되어 펼칠 더 큰 선의 명분뿐이다. 물론 장일준의 딸 인영(왕지혜)의 말대로 “때론 더 큰 선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성공하지 못한 정치인이 좋은 정치를 펼치는 건 불가능하기에 정치의 영역에서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가 정말 어려운 건, 이러한 전략적 효율성과 도덕적 선의 가장 조화로운 지점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장일준은, 그리고 는 상당히 무책임하다. “비겁한 승리보다는 정정당당한 패배가 낫다”는 오재희와 “그 딴 얘기는 올림픽 개회식 가서 하라”는 기수찬(김흥수)의 갈등은 흥미롭지만 그것이 더 나아가 일종의 정반합을 이루지는 못한다. 장일준은 “초심을 잃은 권력욕이 고상렬이라는 참신한 정치인을 괴물로 만들었다”고 일갈하지만 과연 “영혼을 팔아서라도 표를 얻겠다”고 말하는 그는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결코 순결한 영웅일 수 없는 정치인의 선천적 딜레마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 것은 이 드라마의 성과지만, 여기서 멈추는 순간 작품 속 대중과 시청자는 또 다른 괴물의 탄생을 무기력하거나 냉소적으로 목도하는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자격을 확인할 수 있을까
작품 속에서 대중들이 “선수들의 피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이자 흑색선전에 부화뇌동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건 그래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영웅 서사를 해체하다가 정치 철학적 관점까지 희미해져버린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뚜렷이 남는 것은 좋은 정치를 위해서는 가장 괜찮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다. 장일준의 형 장일도가 대통령을 꿈꾼 것도 같은 이유다. 그래서 의 진짜 주인공은 장일준이 아닌, 프레지던트 그 자체다. 완벽한 주인공이 등장하리라는 허상을 걷어찬 자리에는 절대적 권력자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또 다른 영웅 신화가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정치는 국민과 별개로 치러지는 정치인들의 파워게임으로 축소된다. 만약 가 대의제 민주주의의 가치를 잊은 정치인들의 자기합리화를 보여주는데 만족하는 작품이라면, 제법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장일준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것처럼, 정치적 승리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찾지 않고 과정에만 천착할 때 옳은 정치에 대한 모든 고민은 가장 천박한 형태의 실용주의로 귀결된다. 이 드라마에 대해 “아직 잘 모르겠는” 건 그래서다. 남아있는 장일준의 정치 행보에서 유민기와 우리는 그 너머를, 대통령의 자격을 확인할 수 있을까. 그 결과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 역시 극과 극으로 나뉠 것이다.
글 위근우
계속 몰아치는 벼랑 끝에서는 한 발을 내딛는 것(百尺竿頭進一步). KBS 의 ‘프레지던트’ 장일준(최수종)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방법인 동시에 이 드라마가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방식이다. 는 장일준(최수종)이 집권 여당인 새물결미래당의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어 유세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자신의 정치 비자금 수수와 관련된 조사를 받으러 가던 중 총을 맞고 쓰러지면서 다시 3개월 전으로 이야기의 시작점을 돌린다. 그 다음 는 이미 장일준이 승리한 싸움인 후보 경선의 과정을 장일준이 위기 상황을 클리어 해나가는 정치 게임으로 만들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것은 정치 판타지가 아니다
그래서 는 처음부터 승패를 결정지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긴장감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탄탄한 지지기반도, 세력도 없이 무모해 보이는 싸움을 시작한 장일준이 경선 4위에서부터 차근차근 위로 올라가는 동안 여러 가지 스캔들이 벌어지고 위기 상황에 발생하지만, 장일준은 지극히 정치적인 방식, 곧 음모와 계략, 정치공작으로 그 위기 상황을 타계해 나간다. 똑같이 ‘대통령 되기’를 서사의 중심에 두고 있는 SBS 과 비교해 보았을 때, 의 방식은 정반대의 것이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 장일준을 보면서 유민기(제이)는 “진정성으로 승부하라”고 말하지만, 장일준은 “정치는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권력의지”라고 답한다. 는 과 같이 “진정한 힘은 국민에게 있다”는 당위적인 말은 하지 않는다. 경선을 진행하는 ‘선수들’에게 국민은 ‘관객’이며, 30년 넘게 정계를 지켜온 고상렬(변희봉)의 정의에 의하면 “숫자는 많고 어리석은 대중”이다. 하지만 이런 장면만을 보고 단편적으로 가 국민을 무시하거나 대중을 얕잡아 본다고 말 할 수는 없다. 굳이 말하자면 국민은 의 관심사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는 “패배자에게 사약을 보내는” 승자 독식의 대한민국 정치현실 속에서, 과연 어떤 사람이 승리자가 되느냐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다. 가 기존의 정치 드라마와 차별화 되는 이유는, 이 승리에 최소한의 당위나 인간적인 설득을 배제했다는 점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승리를 만들어가는 장일준은 평범한 아줌마였다가 대중적인 감화와 국민사랑을 통해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르는 의 서혜림(고현정)과 전혀 다른 인물일 수밖에 없다. 극 초반의 장일준은 소속 당원이나 의원들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한 채 경선에 뛰어드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장일준은 이미 3선의 중진 의원으로 정치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운동권 출신인 동시에 재벌가 사위인 그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지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말끔한 외모에 달변으로 비디오 정치, 이미지 정치에 적합하다. 게다가 장일준에게는 뛰어난 현실 감각과 본능적인 위기관리 능력, 인재를 발견하는 눈과 그들을 완벽한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는 반칙이 필요한 순간 거리낌 없이 반칙하고, 때로 말과 신념을 배반하면서도 달변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자신이 받은 타격을 상대에게 몇 배로 되돌려 줄 만큼 현실 정치인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의 어둠, 그림자를 맡기”로 한 조소희(하희라)의 전폭적인 지지는, 처가인 대일그룹의 자본력과 권력의 지지로 치환된다. 초반의 지지율 외에 모든 것을 이미 갖고 있던 장일준은 언제 어느 때고 부정적으로 변할 수 있는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이용하고, 때로 가족까지도 수단으로 사용하며 승리를 향해 간다. 한국 정치 현실 속에서 장일준은 ‘승리를 하게 되어있는’ 괴물이다. 김경모(홍요섭)가 아니라 장일준이 승리하기 때문에, 는 정치 판타지가 아니라 한국의 현실 정치를 가장 밀착해서 보여준 정치 드라마가 된다.
현실의 대중들은 이미 정치에 지쳤다
하지만 도리어 그래서 과 비교했을 때 가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 정치의 벽은 의 음모와 술수 같은 걸로 비견될 것이 아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느껴지는 정치 혐오의 수준은 의 정치판의 수 싸움을 보며 느껴지는 놀라움을 훨씬 상회한다. 여성 비하적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면서 여비서와 불륜관계를 유지하는 박을섭과 룸싸롱이니 자연산 운운하는 발언을 태연하게 내뱉는 현실 정치인 중에 어느 쪽이 더 끔찍한가? 라이벌을 앞에 두고도 “친구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진실을 말하는 김경모와 대쪽 같던 신희주(김정난)마저 “괴물이 되어가는” 곳이 정치판인 것은, 때로는 드라마보다 흥미로운 뉴스와 신문에서, 철새들이 날아다니는 여의도의 현실에서 배울 만큼 배운 것이다. 어쩌면 대중들은 드라마에서 마저 정치 싸움을, 괴물의 탄생을 지켜보기엔 이미 너무 피로한 것이 아닐까.
글 윤이나
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와 사진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글. 위근우 eight@
글. 윤이나(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
“솔직히 아직 모르겠습니다.” KBS 첫 회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느냐는 여당 대선 후보 장일준(최수종)의 질문에, 그의 사생아이자 그의 선거과정을 다큐로 남기고 있던 유민기(제이)는 이렇게 답한다. 이러한 보류는 전체 레이스에서 반 바퀴를 살짝 넘은 드라마에 대한 평가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듯하다. 어중간한 만듦새를 보여준다는 뜻은 아니다. 수많은 욕망과 신념이 뒤얽힌 혼탁한 공간으로서의 정치판을 순수와 타락의 이분법적 구도로서 재단하기보다는 그 안의 다양한 딜레마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는 제법 잘 만든 정치드라마다. 그럼에도 는 여전히 뚜렷한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작품이다. 현실 정치의 메커니즘을 드라마틱하게 재현하고는 있지만 그 메커니즘의 동력이어야 할 정치 철학과 신념에 있어 이 드라마는 종종 침묵하거나 어중간한 양시양비론을 취한다.
정치인의 딜레마, 그저 보여주는 것에서 멈추다
“장일준이라면 이 정치판을 바꿀 것 같아서” 선거캠프의 미디어 총책임자를 맡은 오재희(임지은)를 비롯해 지지자들은 장일준으로부터 구악에서 벗어난 새로운 정치를 꿈꾼다. 하지만 시민운동을 했다는 과거사를 제외하면 그가 새 시대의 정치인으로서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고비마다 새 공약으로서 위기를 돌파하지만, 무상 의료서비스 공약은 고상렬(변희봉) 미래당 대표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발표한 것이고, 비무장지대 환경특구 개발은 심지어 해킹을 통해 김경모(홍요섭) 후보 캠프의 것을 가로채기 한 것이다. 박을섭(이기열)과 비서의 스캔들을 언론에 흘리고, 청와대를 해킹하는 장일준의 부도덕한 전략을 정당화하는 것은 대통령이 되어 펼칠 더 큰 선의 명분뿐이다. 물론 장일준의 딸 인영(왕지혜)의 말대로 “때론 더 큰 선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성공하지 못한 정치인이 좋은 정치를 펼치는 건 불가능하기에 정치의 영역에서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가 정말 어려운 건, 이러한 전략적 효율성과 도덕적 선의 가장 조화로운 지점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장일준은, 그리고 는 상당히 무책임하다. “비겁한 승리보다는 정정당당한 패배가 낫다”는 오재희와 “그 딴 얘기는 올림픽 개회식 가서 하라”는 기수찬(김흥수)의 갈등은 흥미롭지만 그것이 더 나아가 일종의 정반합을 이루지는 못한다. 장일준은 “초심을 잃은 권력욕이 고상렬이라는 참신한 정치인을 괴물로 만들었다”고 일갈하지만 과연 “영혼을 팔아서라도 표를 얻겠다”고 말하는 그는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결코 순결한 영웅일 수 없는 정치인의 선천적 딜레마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 것은 이 드라마의 성과지만, 여기서 멈추는 순간 작품 속 대중과 시청자는 또 다른 괴물의 탄생을 무기력하거나 냉소적으로 목도하는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자격을 확인할 수 있을까
작품 속에서 대중들이 “선수들의 피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이자 흑색선전에 부화뇌동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건 그래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영웅 서사를 해체하다가 정치 철학적 관점까지 희미해져버린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뚜렷이 남는 것은 좋은 정치를 위해서는 가장 괜찮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다. 장일준의 형 장일도가 대통령을 꿈꾼 것도 같은 이유다. 그래서 의 진짜 주인공은 장일준이 아닌, 프레지던트 그 자체다. 완벽한 주인공이 등장하리라는 허상을 걷어찬 자리에는 절대적 권력자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또 다른 영웅 신화가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정치는 국민과 별개로 치러지는 정치인들의 파워게임으로 축소된다. 만약 가 대의제 민주주의의 가치를 잊은 정치인들의 자기합리화를 보여주는데 만족하는 작품이라면, 제법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장일준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것처럼, 정치적 승리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찾지 않고 과정에만 천착할 때 옳은 정치에 대한 모든 고민은 가장 천박한 형태의 실용주의로 귀결된다. 이 드라마에 대해 “아직 잘 모르겠는” 건 그래서다. 남아있는 장일준의 정치 행보에서 유민기와 우리는 그 너머를, 대통령의 자격을 확인할 수 있을까. 그 결과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 역시 극과 극으로 나뉠 것이다.
글 위근우
계속 몰아치는 벼랑 끝에서는 한 발을 내딛는 것(百尺竿頭進一步). KBS 의 ‘프레지던트’ 장일준(최수종)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방법인 동시에 이 드라마가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방식이다. 는 장일준(최수종)이 집권 여당인 새물결미래당의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어 유세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자신의 정치 비자금 수수와 관련된 조사를 받으러 가던 중 총을 맞고 쓰러지면서 다시 3개월 전으로 이야기의 시작점을 돌린다. 그 다음 는 이미 장일준이 승리한 싸움인 후보 경선의 과정을 장일준이 위기 상황을 클리어 해나가는 정치 게임으로 만들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것은 정치 판타지가 아니다
그래서 는 처음부터 승패를 결정지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긴장감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탄탄한 지지기반도, 세력도 없이 무모해 보이는 싸움을 시작한 장일준이 경선 4위에서부터 차근차근 위로 올라가는 동안 여러 가지 스캔들이 벌어지고 위기 상황에 발생하지만, 장일준은 지극히 정치적인 방식, 곧 음모와 계략, 정치공작으로 그 위기 상황을 타계해 나간다. 똑같이 ‘대통령 되기’를 서사의 중심에 두고 있는 SBS 과 비교해 보았을 때, 의 방식은 정반대의 것이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 장일준을 보면서 유민기(제이)는 “진정성으로 승부하라”고 말하지만, 장일준은 “정치는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권력의지”라고 답한다. 는 과 같이 “진정한 힘은 국민에게 있다”는 당위적인 말은 하지 않는다. 경선을 진행하는 ‘선수들’에게 국민은 ‘관객’이며, 30년 넘게 정계를 지켜온 고상렬(변희봉)의 정의에 의하면 “숫자는 많고 어리석은 대중”이다. 하지만 이런 장면만을 보고 단편적으로 가 국민을 무시하거나 대중을 얕잡아 본다고 말 할 수는 없다. 굳이 말하자면 국민은 의 관심사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는 “패배자에게 사약을 보내는” 승자 독식의 대한민국 정치현실 속에서, 과연 어떤 사람이 승리자가 되느냐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다. 가 기존의 정치 드라마와 차별화 되는 이유는, 이 승리에 최소한의 당위나 인간적인 설득을 배제했다는 점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승리를 만들어가는 장일준은 평범한 아줌마였다가 대중적인 감화와 국민사랑을 통해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르는 의 서혜림(고현정)과 전혀 다른 인물일 수밖에 없다. 극 초반의 장일준은 소속 당원이나 의원들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한 채 경선에 뛰어드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장일준은 이미 3선의 중진 의원으로 정치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운동권 출신인 동시에 재벌가 사위인 그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지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말끔한 외모에 달변으로 비디오 정치, 이미지 정치에 적합하다. 게다가 장일준에게는 뛰어난 현실 감각과 본능적인 위기관리 능력, 인재를 발견하는 눈과 그들을 완벽한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는 반칙이 필요한 순간 거리낌 없이 반칙하고, 때로 말과 신념을 배반하면서도 달변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자신이 받은 타격을 상대에게 몇 배로 되돌려 줄 만큼 현실 정치인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의 어둠, 그림자를 맡기”로 한 조소희(하희라)의 전폭적인 지지는, 처가인 대일그룹의 자본력과 권력의 지지로 치환된다. 초반의 지지율 외에 모든 것을 이미 갖고 있던 장일준은 언제 어느 때고 부정적으로 변할 수 있는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이용하고, 때로 가족까지도 수단으로 사용하며 승리를 향해 간다. 한국 정치 현실 속에서 장일준은 ‘승리를 하게 되어있는’ 괴물이다. 김경모(홍요섭)가 아니라 장일준이 승리하기 때문에, 는 정치 판타지가 아니라 한국의 현실 정치를 가장 밀착해서 보여준 정치 드라마가 된다.
현실의 대중들은 이미 정치에 지쳤다
하지만 도리어 그래서 과 비교했을 때 가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 정치의 벽은 의 음모와 술수 같은 걸로 비견될 것이 아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느껴지는 정치 혐오의 수준은 의 정치판의 수 싸움을 보며 느껴지는 놀라움을 훨씬 상회한다. 여성 비하적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면서 여비서와 불륜관계를 유지하는 박을섭과 룸싸롱이니 자연산 운운하는 발언을 태연하게 내뱉는 현실 정치인 중에 어느 쪽이 더 끔찍한가? 라이벌을 앞에 두고도 “친구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진실을 말하는 김경모와 대쪽 같던 신희주(김정난)마저 “괴물이 되어가는” 곳이 정치판인 것은, 때로는 드라마보다 흥미로운 뉴스와 신문에서, 철새들이 날아다니는 여의도의 현실에서 배울 만큼 배운 것이다. 어쩌면 대중들은 드라마에서 마저 정치 싸움을, 괴물의 탄생을 지켜보기엔 이미 너무 피로한 것이 아닐까.
글 윤이나
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와 사진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글. 위근우 eight@
글. 윤이나(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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