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서 YB는 관록 있는 중견 밴드가 아니라 이제 막 음악을 시작한 소년들 같다. 이들의 미국의 워프트 투어 도전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에서 멤버들은 실없는 농담과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자작곡으로 장거리 이동의 지루함을 달래고, 우연히 들어간 악기상에서 보물을 발견한 아이들처럼 들뜬다. 그러나 뮤지션의 고뇌보다는 일단 즐기고 보는 이들의 투어가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여러 도시들을 순회하며 열리는 워프트 투어는 한국의 록페스티벌과는 또 다르다. “서부 개척 시대에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처럼 몇 십 대의 트레일러가 같이 이동하는” (드럼, 김진원) 투어는 한 자리에서 열리는 페스티벌보다 훨씬 터프하다. “회당 300불 정도만 받고 서는 무대”는 메인 스테이지도 아니다. 한국의 록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였던 YB는 첫 공연 때 단 네 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노래했다. “관객의 많고 적음을 떠나 무대에서 작아지는 느낌” (기타, 허준) 때문에 힘들었고, “음악 하는 애들한테 소문이 나서 관객이 한두 명씩 늘어”났을 때를 “다행”이라고 회상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내년에도 또 투어에 참가”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음악을 할 때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것을 미국에서의 도전이 주기 때문이다.

“는 청춘이에요. 청춘의 시기를 이미 한참 지난 우리 나이에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인데, 로드트립을 하면서 배낭 하나 메고 여행을 떠나던 시절의 청춘을 경험했죠. 내년에도 또 갈 거예요. 가기 전에 저희 앨범이 미국에서 나오니까 그 땐 좀 다르지 않을까요? 정말로 간절하게 미국에 가서 뜨고 싶어요. (웃음)” (보컬, 윤도현) 네 명의 관객에서 시작된 투어가 마지막엔 수십 명의 관객에게서 앵콜 요청을 끌어낸 것처럼 그들의 새로운 도전 또한 많은 이들을 사로잡지 않을까? 다음은 YB의 윤도현을 음악으로 사로잡았던 영화들이다.
1. (Tenacious D In The Pick Of Destiny)
2006년 | 리암 린치
“그야말로 괴짜 영화의 최고봉이죠! (웃음) 실제로 터네이셔스 디라는 밴드의 멤버이기도 한 잭 블랙의 활약이 대단해요. 잭 블랙의 다른 영화 도 좋아하지만 상대적으로 가 덜 알려진 것 같아서 추천해요. 이들이 하는 음악도 되게 좋아요. 로니 제임스 디오가 포스터에서 나오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올해 그분이 이승하고는 작별을 해서 더 생각 났구요.”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쉴 새 없이 웃게 만드는 누가 봐도 딱 잭 블랙의 영화. 그러나 실제 밴드이기도 한 터네이셔스 디의 음악은 절대 장난이 아니다. 뛰어난 코미디 배우로서의 매력과 재기발랄한 뮤지션으로서의 잭 블랙의 역량 모두를 확인할 수 있다.

2. (Out Of Rosenheim)
1988년 | 퍼시 애들론
“주제가인 ‘콜링 유’가 너무 좋아서 음악 때문에 봤죠. 영화의 색감도 너무 좋았구요. 먼지 낀 사막의 쓸쓸함이랄까요? 실제로 그곳에 가보고 싶은 느낌이 들 정도로 멋있었죠. 바그다드 카페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 특히 누가 봐도 예쁘지 않은 뚱뚱한 아줌마가 너무 귀여운 걸 보고나니까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되겠더라구요. (웃음)”

에서는 모든 것이 몽롱하다. 사막 한 가운데에 툭 던져진 등장인물들처럼 관객들 또한 그들의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서로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친구가 되고, 오아시스보다 소중한 연대를 사막에 꽃 피운다.
3. (Green Fish)
1997년 | 이창동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언더그라운드 인생을 너무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영화예요. 처절하게 때로는 잔인하게. 굉장히 어둡고 묵직하게 현실을 그린 영화죠. 조직폭력배가 등장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한국 조폭영화의 약간은 유치하고 그려졌다는 기분을 전혀 못 느꼈어요. 아, 이건 진짜 사람 이야기구나… 되게 안타까워하면서 봤어요.”

별 볼일 없는 청춘들이 이리저리 치이면서 변해가는 막동의 모습과 함께 개발에 피로한 당시 한국의 모습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낯설지 않다. 과 를 통해 완성형에 가까운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 소설에서 영화로 방향타를 바꿔 든 감독의 날 선 시절이 느껴진다.

4. (My Neighbor Totoro)
1988년 | 미야자키 하야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을 워낙 좋아해요. 와이프도 좋아해서 집에 DVD도 많이 모아놨구요. 이 감독님의 영화들은 정말 상상력을 마음껏 넓혀줘요. 그러면서도 에이 말도 안 돼, 하면서 허황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진짜일 것만 같잖아요. 그래서 그 분의 영화를 보고나면 그날 밤에 꼭 꿈을 꿔요. 하늘도 막 날아다니고. (웃음) 는 캐릭터가 특히 귀여워서 좋아해요. 물론 토토로 인형도 집에 많구요. (웃음)”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여름은 성장이 유예된 판타지의 시간이다. 시골로 이사 온 사츠키와 메이 자매 역시 낯선 곳에서 도토리나무의 요정인 토토로를 만나 고양이 버스를 타고 하늘을 난다. 언젠간 자매의 여름도 끝나겠지만 토토로와의 시간을 간직하는 한 그들의 추억은 영원할 것이다.

5. (Hedwig And The Angry Inch)
2000년 | 존 카메론 미첼
“뮤지컬 에 섭외 받기 전에 이미 좋아하고 있던 영화예요. 음악이 좋아서 두 번 정도 봤는데 자유에 대한 열망을 남자도 여자도 아닌 주인공을 통해 느꼈고, 게다가 주인공이 록 뮤지션이고 여러 가지 면에서 제게 맞는 영화라서 보면서 내내 들떴어요. 뮤지컬 때문에 다시 보게 됐을 때는 눈물도 흘렸어요. 물론 보면서 동작 같은 걸 연구해야 해서 걱정도 많이 했지만 (웃음) 은 잊지 못하는 영화죠.”

뮤지컬로도 오랫동안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 은 원작자인 존 카메론 미첼이 연출과 각본, 주연까지 맡으며 선댄스 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를 휩쓸었다. 동 베를린의 소년이 미국으로 건너와 헤드윅이라는 록가수가 되면서 겪는 절망과 비극을 화려한 영상과 폭발적인 음악으로 담았다.
“미국 공연에서 관객의 반응이 가장 좋았던 노래들은 ‘머리 아파’나 ‘잇 번스’였어요. 관객들끼리 서로 부딪치면서 반응을 보여주는데 아, 이게 가능하구나, 말이 안 통해도 음악이 통하면 교감이 가능하단 걸 알았죠.”(베이스, 박태희) 워프트 투어의 경험은 YB에게 단순히 추억을 남긴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을 난생 처음 보는 관객들과의 교감은 더 깊은 음악적인 고민으로 이어졌고, 그 고민에 대한 답은 YB의 다음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투어를 하면서 어떻게 해야 더 진한 우리만의 색깔을 낼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어요.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밴드로 활동한 걸 최대한 살려야겠더라구요. 막상 나가보니까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들었을 때 미국이나 영국 밴드랑 우리가 아무런 차별점이 없다면 안 되죠. 음악을 들었을 때 아, 한국 밴드구나 라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어야 해요. 우리만의 언어, 우리만의 멜로디를 음악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숙제인 거 같아요.” (보컬, 윤도현)

글. 이지혜 seven@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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