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잘 웃기도 하거니와 SBS MC로 활동할 때는 동료 배우들의 슬픈 사연이나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종종 눈물 흘리는 모습도 보였는데 감정 표현이 풍부한 편인 것 같다. 그런 성격이 정다정이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데는 플러스된 면도 있을 것 같은데.
엄지원 : 사실 그건 모든 인물을 연기할 때 똑같이 적용되는 거기도 한데 전작에서는 감정을 많이 드러내면 안 되는 인물들을 주로 연기했기 때문에 그냥 봤을 때 다이내믹해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때는 인물의 깊이감이나 밀도를 중심으로 표현했다면 다정이는 버라이어티한 인물이다. 사람 자체도, 이 여자의 일상도. 그런데 내 나이 또래 여자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그 일상의 사건 사이에서 다정이는 꿍하게 상처를 담아두는 대신 상처받으면 상처받았다고 울고, 기쁘면 기쁘다고 웃고, 화나면 나 지금 화났다고 얘기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면서도 속 깊은 면이 있고 적지 않은 공주병도 있고, 그래서 재미있다.
“추하다고 생각할 때 더 까발리는 게 재밌다”
대개 나이가 들면 어떤 감정을 느껴도 아닌 척, 점잖은 척 하게 마련인데 다정은 지극히 솔직하다는 면에서 부러운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런데 많은 여자들이 다정에게 공감하는 반면 남자들은 당황스럽게 받아들이기도 할 것 같다. 주위 반응은 어떤가?
엄지원 : 음, 남자들도 귀엽다고 하던데. 다정이는 귀엽다고, 그런데 내 주변이라서 그런가? 아하하. 아, 그런데 생일에 반석이 케익 하나만 선물하니까 다정이 서운해 하는 걸 보고 “정말 싫으니?” 라고들 물어서 “당연히 싫지!” 했더니 “너 정말…다정이구나?” 하더라. (웃음) 그래서 “당연히 싫은 거 아냐?” 하니까 “어떻게 그렇게 정성스럽고 소중한 선물을 싫어할 수 있냐, 넌 정말 다정이구나” 하는 분위기여서. 하하하.
그런 디테일을 통해 구축되는 리얼리티가 상당하다. 다정이 소개팅에 목매는 것도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 드러나는 게 재미있다.
엄지원 : 신영이 결혼 안 하겠다고 선언하니까 “그럼 이제 괜찮은 소개팅 들어오면 나 줘” 하는 것도 그렇고. 아하하. 삼십대 여성으로 공감되는 지점이 많기 때문에 대사가 절로 외워질 만큼 와 닿는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신이나 대사가 있다면.
엄지원 : 많다. 아마도…다? (웃음) 다정이가 생일에 자기 돈으로 옷 사 입고 선물 받은 것처럼 말했다가 반석에게 들켜 싸우고 혼자 남겨져서는 “내 생일날 이젠 다시 울고 싶지 않단 말예요. 내 생일날 다신 쓸쓸해지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하는 데서는 웃기면서도 슬퍼서 눈물이 났다.
슬픔이나 외로움도 코미디를 통해 보여주는 다정과 달리 전작에서는 주로 정적인 인물들을 연기했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의 코믹한 모습이 놀랍다는 반응도 많다. 스스로는 어떤가.
엄지원 : 편하다. 전작의 인물들을 연기할 때보다 마음이 훨씬 편한 걸 보면 잘 맞는 것 같다.
코미디는 대사를 소화하는 것 뿐 아니라 동작이나 표정을 통한 것도 어느 정도 단련이 되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엄지원 : 코미디는 거의 템포와 타이밍 싸움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웃기고 어떻게 하면 안 웃긴지에 대한 동물적인 감이 많이 필요하고 상대방과 호흡을 주고받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게 리듬감을 타는 거라 재미있다. 자신을 찬 남자에게 찾아가 항의하거나 술에 취해 뜨거운 아스팔트에 넘어지는 등 ‘망가지는’ 신에서 확실한 진가를 보이기도 했다. 그동안 지니고 있던 청초하거나 단아한 이미지에 대해 ‘실은 그게 아니에요’ 라고 보여주는 것도 즐기는 것 같다.
엄지원 : 사람들이 ‘저렇게 추하게 망가질 수가!’ 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오히려 그걸 더 까발리는 게 재밌는 것 같다.
“후배들에게 좋은, 편한 친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원래 좀 대범한 편인가?
엄지원 : 그러니까 쪼끔, 털털한? 아, 그냥 ‘개의치 않는’ 성격인 것 같다. 무슨 일이든 ‘음, 그런가보네’ 하는 성격이라, 남들이 ‘어떻게 저렇게 추한 걸?’ 이라 할 때도 ‘왜애? 어때서?’ 하면서 저지르는 편이다. 아하하.
그 ‘개의치 않는’ 성격 때문에 지금까지 작품을 선택할 때도 외적인 요소들보다 다양한 캐릭터와 장르를 오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동안 남자들이 하는 이야기 속의 여자를 주로 연기해 왔다면 는 여자가 하는 여자 이야기라는 게 흥미롭다.
엄지원 : 어떤 지점에 목마른 기분이 들 때 만나게 되는 작품들이 있다. 직전에도 이상한 헛헛함이 있었다. 그동안 연기하면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준비해서 인물을 만들어 가는데 다 하고 나면 사라지니까. 어, 이렇게 열심히 하면 뭐 하나? 이렇게 인물을 만들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이런 갈증이 있을 때 홍상수 감독님이 러브콜을 보내셨다. 사실 그 시기가 상업적으로 꽤 괜찮은 걸 할 수도 있는 타이밍이었는데 그 때는 그냥 생 날 것의, 생선 같은, 피를 철철 흘리는 뭔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대본도 없고 뭘 찍을지도 모르고 그 날 아침에 바로바로 이야기가 나오는. 그런 타이밍에 을 하게 된 거였고, 이번 작품도 그동안 참 좋은 영화를 좋아서 했지만 대부분의 영화는 남자 감독님들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시니까 그 속의 여자를 내가 새롭게 만들어 보여주는 것에 조금 지쳐 있었다. 그래서 영화 하는 친구들과 술 먹으며 종종 ‘왜 여자 감독님은 이렇게 없는 거니? 방은진 감독님 다음 작품 언제 나오니? 여자 감독님 또 입봉 안 하시니?’ 하는 얘길 농담처럼 많이 했다. 그런데 드라마에는 여자 작가분이 많고, 김인영 작가님은 여자 이야기를 잘 쓰는 분이니까 는 그런 내 바람과 정말 잘 맞아떨어졌다. 그 결과 이번 작품을 통해 30대, 여배우로서 새로운 국면을 맞은 것 같다. 예전에 4, 50대 여배우가 된다면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선배라기보다 좋아하는 선배가 되어주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엄지원 : 이를테면, 안성기 선배님은 우리가 존경하는 분이면서도 후배들을 따뜻하게 챙겨주시는 좋은 선배님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찌됐건 후배들이 봤을 때 좋아하거나 존경하거나 하는 호감을 가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업적과 커리어들이 인정할만하거나 좋아할만한 바탕이 있어야 가능하지 비단 사람 자체만 좋다고 그런 감정이 생기는 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탄탄한 연기 생활이나 필모그래피가 있으면서 사람됨이라는 면에서 더 큰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사실 배우는 어떻게 보면 축복받은 직업이지만 한편으로는 외롭고 불행한 직업이기도 하니까 나 역시 좋은 배우가 되는 동시에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편한 친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촬영이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정신없이 바쁠 텐데, 이렇게 뭔가를 채우고 쏟아내는 순간에도 또 다른 갈증을 느끼나.
엄지원 : 물론이다. 배우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난 하고 싶은 게 정말 많고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것들에 도전할 거다. 아직 말 그대로 ‘끝까지 확 가는’ 캐릭터를 만나보지 못한 게 좀 아쉽지만 언젠가 꼭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엄지원 : 사실 그건 모든 인물을 연기할 때 똑같이 적용되는 거기도 한데 전작에서는 감정을 많이 드러내면 안 되는 인물들을 주로 연기했기 때문에 그냥 봤을 때 다이내믹해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때는 인물의 깊이감이나 밀도를 중심으로 표현했다면 다정이는 버라이어티한 인물이다. 사람 자체도, 이 여자의 일상도. 그런데 내 나이 또래 여자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그 일상의 사건 사이에서 다정이는 꿍하게 상처를 담아두는 대신 상처받으면 상처받았다고 울고, 기쁘면 기쁘다고 웃고, 화나면 나 지금 화났다고 얘기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면서도 속 깊은 면이 있고 적지 않은 공주병도 있고, 그래서 재미있다.
“추하다고 생각할 때 더 까발리는 게 재밌다”
대개 나이가 들면 어떤 감정을 느껴도 아닌 척, 점잖은 척 하게 마련인데 다정은 지극히 솔직하다는 면에서 부러운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런데 많은 여자들이 다정에게 공감하는 반면 남자들은 당황스럽게 받아들이기도 할 것 같다. 주위 반응은 어떤가?
엄지원 : 음, 남자들도 귀엽다고 하던데. 다정이는 귀엽다고, 그런데 내 주변이라서 그런가? 아하하. 아, 그런데 생일에 반석이 케익 하나만 선물하니까 다정이 서운해 하는 걸 보고 “정말 싫으니?” 라고들 물어서 “당연히 싫지!” 했더니 “너 정말…다정이구나?” 하더라. (웃음) 그래서 “당연히 싫은 거 아냐?” 하니까 “어떻게 그렇게 정성스럽고 소중한 선물을 싫어할 수 있냐, 넌 정말 다정이구나” 하는 분위기여서. 하하하.
그런 디테일을 통해 구축되는 리얼리티가 상당하다. 다정이 소개팅에 목매는 것도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 드러나는 게 재미있다.
엄지원 : 신영이 결혼 안 하겠다고 선언하니까 “그럼 이제 괜찮은 소개팅 들어오면 나 줘” 하는 것도 그렇고. 아하하. 삼십대 여성으로 공감되는 지점이 많기 때문에 대사가 절로 외워질 만큼 와 닿는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신이나 대사가 있다면.
엄지원 : 많다. 아마도…다? (웃음) 다정이가 생일에 자기 돈으로 옷 사 입고 선물 받은 것처럼 말했다가 반석에게 들켜 싸우고 혼자 남겨져서는 “내 생일날 이젠 다시 울고 싶지 않단 말예요. 내 생일날 다신 쓸쓸해지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하는 데서는 웃기면서도 슬퍼서 눈물이 났다.
슬픔이나 외로움도 코미디를 통해 보여주는 다정과 달리 전작에서는 주로 정적인 인물들을 연기했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의 코믹한 모습이 놀랍다는 반응도 많다. 스스로는 어떤가.
엄지원 : 편하다. 전작의 인물들을 연기할 때보다 마음이 훨씬 편한 걸 보면 잘 맞는 것 같다.
코미디는 대사를 소화하는 것 뿐 아니라 동작이나 표정을 통한 것도 어느 정도 단련이 되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엄지원 : 코미디는 거의 템포와 타이밍 싸움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웃기고 어떻게 하면 안 웃긴지에 대한 동물적인 감이 많이 필요하고 상대방과 호흡을 주고받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게 리듬감을 타는 거라 재미있다. 자신을 찬 남자에게 찾아가 항의하거나 술에 취해 뜨거운 아스팔트에 넘어지는 등 ‘망가지는’ 신에서 확실한 진가를 보이기도 했다. 그동안 지니고 있던 청초하거나 단아한 이미지에 대해 ‘실은 그게 아니에요’ 라고 보여주는 것도 즐기는 것 같다.
엄지원 : 사람들이 ‘저렇게 추하게 망가질 수가!’ 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오히려 그걸 더 까발리는 게 재밌는 것 같다.
“후배들에게 좋은, 편한 친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원래 좀 대범한 편인가?
엄지원 : 그러니까 쪼끔, 털털한? 아, 그냥 ‘개의치 않는’ 성격인 것 같다. 무슨 일이든 ‘음, 그런가보네’ 하는 성격이라, 남들이 ‘어떻게 저렇게 추한 걸?’ 이라 할 때도 ‘왜애? 어때서?’ 하면서 저지르는 편이다. 아하하.
그 ‘개의치 않는’ 성격 때문에 지금까지 작품을 선택할 때도 외적인 요소들보다 다양한 캐릭터와 장르를 오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동안 남자들이 하는 이야기 속의 여자를 주로 연기해 왔다면 는 여자가 하는 여자 이야기라는 게 흥미롭다.
엄지원 : 어떤 지점에 목마른 기분이 들 때 만나게 되는 작품들이 있다. 직전에도 이상한 헛헛함이 있었다. 그동안 연기하면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준비해서 인물을 만들어 가는데 다 하고 나면 사라지니까. 어, 이렇게 열심히 하면 뭐 하나? 이렇게 인물을 만들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이런 갈증이 있을 때 홍상수 감독님이 러브콜을 보내셨다. 사실 그 시기가 상업적으로 꽤 괜찮은 걸 할 수도 있는 타이밍이었는데 그 때는 그냥 생 날 것의, 생선 같은, 피를 철철 흘리는 뭔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대본도 없고 뭘 찍을지도 모르고 그 날 아침에 바로바로 이야기가 나오는. 그런 타이밍에 을 하게 된 거였고, 이번 작품도 그동안 참 좋은 영화를 좋아서 했지만 대부분의 영화는 남자 감독님들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시니까 그 속의 여자를 내가 새롭게 만들어 보여주는 것에 조금 지쳐 있었다. 그래서 영화 하는 친구들과 술 먹으며 종종 ‘왜 여자 감독님은 이렇게 없는 거니? 방은진 감독님 다음 작품 언제 나오니? 여자 감독님 또 입봉 안 하시니?’ 하는 얘길 농담처럼 많이 했다. 그런데 드라마에는 여자 작가분이 많고, 김인영 작가님은 여자 이야기를 잘 쓰는 분이니까 는 그런 내 바람과 정말 잘 맞아떨어졌다. 그 결과 이번 작품을 통해 30대, 여배우로서 새로운 국면을 맞은 것 같다. 예전에 4, 50대 여배우가 된다면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선배라기보다 좋아하는 선배가 되어주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엄지원 : 이를테면, 안성기 선배님은 우리가 존경하는 분이면서도 후배들을 따뜻하게 챙겨주시는 좋은 선배님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찌됐건 후배들이 봤을 때 좋아하거나 존경하거나 하는 호감을 가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업적과 커리어들이 인정할만하거나 좋아할만한 바탕이 있어야 가능하지 비단 사람 자체만 좋다고 그런 감정이 생기는 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탄탄한 연기 생활이나 필모그래피가 있으면서 사람됨이라는 면에서 더 큰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사실 배우는 어떻게 보면 축복받은 직업이지만 한편으로는 외롭고 불행한 직업이기도 하니까 나 역시 좋은 배우가 되는 동시에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편한 친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촬영이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정신없이 바쁠 텐데, 이렇게 뭔가를 채우고 쏟아내는 순간에도 또 다른 갈증을 느끼나.
엄지원 : 물론이다. 배우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난 하고 싶은 게 정말 많고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것들에 도전할 거다. 아직 말 그대로 ‘끝까지 확 가는’ 캐릭터를 만나보지 못한 게 좀 아쉽지만 언젠가 꼭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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