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사용설명서
이렇게 입어라, 저렇게 입어라, 이게 유행이다, 그건 한물갔다…. 굳이 패션 잡지를 펼치지 않아도 옷차림에 대한 코멘트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 세상에 유연하게, 그리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을 알려드리는 마지막 패션사용설명서.
1) 에 한동안 게재된, 패션 아이템 및 유행하는 룩의 활용법을 다룬 칼럼.
2) 패션잡지, 스타일관련 단행본에 실려 있는 옷 입기 및 의류 쇼핑에 관한 글.
3) 케이블 TV, 근래 들어 공중파 TV와 라디오에서도 접할 수 있는 패션 프로그램 및 코너들. 1) 활용법
① 일단은 듣고, 보고, 읽는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패션사용설명서’가 무의미하며 무가치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생각이 정답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패션사용설명서’의 숫자와 다루는 매체가 늘어난다는 건 분명 어떤 측면에서든 효용이 있기 때문일 거다. 게다가 대부분의 패션사용설명서는 공짜로 제공된다. 패션에 특별한 관심이 없더라도, 이미 사용설명서 따위 볼 필요도 없을 정도의 고수라도 설명서를 접할 기회가 있다면 일단은 읽고, 보고, 들어라. 당신이 미처 몰랐던, 혹은 한때 알았으나 잊고 있었던 귀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꽤 폼 나는 안주거리-작금의 소비 풍조와 미디어들의 안일한 콘텐츠 제작 행태 비판하는-로 활용할 수도 있다.
② 아니꼽고 치사하지만 따라해 본다.
한예슬이 버버리 프로섬의 드레이프 드레스에 워커를 매치하고 제작 발표회에 나왔다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김민희는 그런지한 퍼 베스트에 헐렁한 데님 셔츠를 매치하는 파격 패션을 선보였다고? 그건 김민희니까 어울리지. 자자, 흥분 가라앉히고…. 연예인들이 뭘 입는지 따위엔 관심 없다고 무조건 귀를 닫아버리지 말고 자세히 살펴보자.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입은 옷의 상표가 아니라 그걸 어떤 식으로 매치했느냐 하는 것이다. 케이블 TV라면 브랜드나 가격에 대한 설명보다는 거기에 덧붙는 전문가들의 코멘트, “남성성과 여성성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군요.”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블랙 드레스에 로큰롤적인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주었네요.” 등을 더 유념해 듣는다. (아니꼽고 치사하지만) 옷장 속에 있는 옷들을 꺼내 따라해 본다. 그리고 그 ‘따라해 보기’에서 부족한 아이템이 있다면(분명 있을 것이다) 쇼핑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③ 섣불리 쇼핑하지 않는다.
쇼핑 리스트를 만들라고 했지, 쇼핑하라고 하지 않았다. 한동안은 1번과 2번을 거듭하며 쇼핑 리스트만 만든다. ④ 쇼핑한다.
1번과 2번을 거듭하다 보면 쇼핑 리스트가 늘어나기도 하지만, 매번 어떤 룩을 연출할 때마다 부족함을 느끼게 하는 아이템, 그것 하나만 있으면 옷장에 있는 옷을 잘 활용할 수 있게 될 아이템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걸 산다.
⑤ 잘 입는다.
이미 숱한 연습을 거쳤으므로, 당신은 이미 꽤 스타일리시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고로,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잘 입는다. 이때, ‘옷발’을 위해 살을 조금 빼주는 성의를 발휘해주면 금상첨화.
⑥ 패션사용설명서 따위 무시한다.
이제 당신은 패션의 고수. 패션사용설명서 따위 깡그리 무시하고 입고 싶은 대로 입는다. 언제나 패션에서 법칙이나 트렌드보다 중요한 건 자신감.
⑦ 이제 다시 패션사용설명서를 듣고, 보고, 읽는다.
이 상태에서 다시 접하는 패션사용설명서는 1의 단계에서 접한 것과 설사 같은 내용이라 할지라도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어떤 것은 ‘쓰레기’겠지만 또 어떤 것은 공감과 깨달음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오래 전에 면허를 딴, 운전의 고수가 면허시험 문제지를 들춰보는 것처럼 느긋하게 패션사용설명서를 즐긴다. 당신에겐 그럴 자격이 있다.
글. 심정희 ( 패션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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