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각 증상’이라는 것이 있다. 뇌에서 신호가 엉키는 바람에 시각이나 청각처럼 따로 분리되어 있는 감각이 하나로 연결되는 증상이다. 뇌니, 신호니 하는 표현에 긴장할 필요 없다. 가령 와인을 마시며 ‘이태리 처녀들이 밭일을 하다가 잠시 시냇가에서 찰박찰박’거리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처럼 오감 중 어떤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치환해 느끼는 것이 공감각이다. 다만 공감각 증상을 겪는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수사가 아닌 실제로 느낀다. 즉 그들은 숫자를 보며 따스한 색감을 느끼거나 니스를 칠한 목재를 쓰다듬으며 시큼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무엇’을 보여주느냐 보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한 예술가들에게 대상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는 공감각은 매혹적인 탐구대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추상주의 회화를 통해 캔버스에 음악을 옮기고자 했던 칸딘스키나 ‘A는 검고 E는 하얗고 I는 붉고 O는 푸르고 U는 초록이다’라고 말했던 랭보처럼 많은 예술가들은 공감각을 자신의 분야 안에서 실현하고 싶어 했다. 3월 18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新오감도’展에 출품된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이 전시는 크게 두 개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김환기의 ‘봄의 소리’처럼 시각 외의 다른 감각을 자극하는 회화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비누로 만들어 향이 나는 신미경의 조각처럼 실제로 두 가지 이상의 감각을 자극하는 작업이다. 우열을 따질 수는 없지만 공감각 증상이라는 것에 좀 더 근접한 건 첫 번째 섹션일 것이다. 공감각 증상을 가진 사람은 많게는 5000 명 중, 적게는 20000명 중 한 명 꼴로 나온다고 한다. 그들이 경험하는 세계를 쉽게 예상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가끔 풍부한 감수성은 그런 기적을 경험하게 해준다. 물론 예술이라는 촉매를 만난다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2007년│다니엘 타멧 지음
이 책의 저자이자 실제 주인공인 다니엘 타멧은 전형적인 서번트 증후군(자폐증을 가진 환자가 어떤 분야에 있어서는 천재적 능력을 발휘하는 사례)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는 집을 나서기 전 자신이 걸친 옷의 개수를 세어야 하는 강박을 가지고 있는 자폐증 환자인 동시에 22514개의 원주율 소수점 이하 숫자들을 암기하고 10개 국어를 구사하는 천재다. 이런 그가 숫자와 단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분히 공감각적이다. 그에게 ‘5는 천둥소리 아니면 바위에 부딪히는 우렁찬 파도소리’로 다가오고, ‘단어들은 저마다의 색과 촉감을 갖고’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가르쳐준다.


2004년│감독 유대얼
원더걸스의 소희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출연했던 것으로 더욱 유명해진 단편영화이다. 한 소녀가 대야에 담긴 물을 살짝 건드릴 때마다 그 파장에 맞춰 소리가 들린다. 놀이터에서 시소를 타고 그네를 타는 아이들의 움직임을 따라 박자가 만들어진다. 개구쟁이 꼬마들이 대야의 물을 물총에 담아 소녀에게 뿌리고 도망간 후 카메라는 소녀의 귀에 끼워진 보청기를 비춘다. 피타고라스는 음계와 현악기 현 길이의 상관관계를 수학적으로 증명해 배음구조의 기초를 밝혔으니 실제로 그 원리를 안다면 물에 퍼지는 파장을 통해 소리를 느끼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