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클래식에 문외한이다. 바하도 잘 모른다. 다만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좋아한다.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한 음과 다음 음의 높낮이, 첫 박자와 다음 박자 사이의 정밀한 변화만으로 이루어진다. 하나의 테마가 그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때론 처음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건 인간의 감정을 배제한 채 음과 음, 박자와 박자의 변화가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구조로 완결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우주의 메트로놈이다. 당신이 어떤 시간과 공간에 있든, 인간의 감정을 배제한 채 음과 음의 변화에 대한 구조적 완결성을 갖춘 이 작품은 언제나 똑같은 음악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음악들은 듣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음악이 선택되고, 다른 느낌으로 전달된다. 하지만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듣는 사람이 골드베르그 변주곡의 절대적인 음악, 인간의 감정을 초월한 숭고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연주한다는 건, 신이 만들어낸 영구적이고, 불변인 법칙을 인간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안드라스 쉬프는 그 음악을 그대로 재현하며 이 작품의 절대적인 숭고함을 현재에 재현했다.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아니지만, 안젤라 휴이트는 LG아트센터에서 했던 내한 공연에서 바하의 평균율을 연주하며 음과 음을 하나씩 해체, 바하가 짜 놓은 우주의 룰에 대한 설계도를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굴드다. 굴드는 1955년 연주에서 음과 음의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변화 시켰다. `정밀하게 짜여진 음과 음의 구조를 그가 마음대로 늘이고 줄이고, 확대하고 축소하자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격정적인 드라마로 변했다. 이 연주의 26번 트랙은 마치 감성적인 영화의 스코어로 쓰일 법한 풍부한 감정을 전달한다. 클래식을 모르니 이것은 추측일 뿐이지만, 굴드의 연주는 절대적이었던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연주자 개인이 무한하게 해석할 수 있는 세계로 던져놓았다. 애니메이션 에 등장하는 골드베르그 변주곡의 ‘Aria’를 들어보라. 그 곡은 한 없이 느린 연주로 진행된다. 우리는 언제나 시간이 똑같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 소녀는 시간을 ‘달려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시간을 늘리고, 압축한다. 신의 숭고함이 인간의 감정으로, 절대적인 시간이 상대적인 시간으로. 신은 하나의 절대적인 룰을 인간에게 던지지만, 인간의 인생은 그 룰 안에서 수없이 변주한다. 굴드가 그 세상을 처음으로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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