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원은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퍼포밍 디렉터다. 그는 자신이 몸담았던 그룹 블랙비트의 황상훈과 함께 국내 최초로 이 일을 하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이 스스로 퍼포밍 디렉터의 역할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쪽이다. SM의 가수들에게 무대에 대한 마인드를 형성하도록 하고, 작은 제스처와 표정까지도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그들은 춤에 있어 기존 안무가와는 또 다른 영역을 만들려 하고 있다. 그것은 현재 한국 가요계에서 춤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중요한 예일 것이다. 심재원이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와 ‘소녀시대’의 안무 등을 만든 연습실에서 요즘의 춤 이야기에 대해 들어봤다.

“퍼포밍 디렉터는 안무 외에도 무대 매너, 표정까지도 코치한다”

퍼포밍 디렉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심재원: 팀 활동을 할 때도 멤버들에게 뭔가 만들어주는 걸 좋아했다. 무대 위에 직접 서는 것보다 프로듀싱에 욕심이 있었던 편이다. 그리고 블랙비트 활동 전부터 가수들에게 트레이닝을 시켰는데, 그러다보니 춤에 대해서 점점 큰 그림을 그리게 됐다. 특히 림프 비즈킷의 프레드 더스트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생겨서 림프 비즈킷의 무대에 올라간 적이 있었는데, 베이시스트 한 명에 어시스턴트만 세 명이 있을 정도로 공연 진행이 세분화 돼 있었다. 그래서 춤도 이렇게 세분화 돼야 하지 않나 생각하면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회사나 가수들도 내가 하는 일에 신뢰를 보내줬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건가.
심재원: 안무가는 춤의 전체적인 부분에 관여한다면, 퍼포밍 디렉터는 거기에 가수가 무대에 섰을 때의 표정, 표현하는 방식, 춤의 전달 방식에 대해 상의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어느 동작을 어떻게 추는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그걸 왜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 작업을 무대에 설 때까지 계속 하면서 가수가 어떻게 무대를 장악할 것인가를 생각하도록 한다. 그런 점에서는 가수들의 파트너나 조언자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수들과 춤에 대해 대화할 때 무엇을 강조하나.
심재원: 테크닉보다는 인성이다. 춤을 추려면 무엇보다 책임감이 필요하다. 무대 들어가서 멤버들과 구성을 맞추고, 자기가 하는 부분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그런 일들을 제대로 하려면 책임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책임감을 바탕으로 춤을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단지 연습을 많이 하는 것보다는 생각할 시간을 많이 주려고 한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건 90년대식이니까. (웃음) 단 한 명의 관중이 있더라도 자기표현을 할 수 있게끔 가르친다.

안무를 만들 때 가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궁금하다.
심재원: 음악에 대해 전체적인 안무나 느낌에 대한 뼈대가 나오면, 그 뼈대에 대해 가수들과 충분히 이야기한다. 솔로 가수의 경우에는 춤의 흐름에 대해서도 많은 관여를 하지만 그룹 멤버들의 경우 보통 자신이 솔로 파트를 담당하는 부분이나 춤의 아이템에 관한 아이디어를 내는 편이다. 그러면 안무가는 그 아이템들을 조합해서 큰 그림을 그리는 식이다.“춤으로 소리를 표현해서 음악을 더 잘 들리게 하려고 한다”

회사 측이 안무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관여하나.
심재원: 회사는 최대한 모니터를 많이 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쪽이다. 전체적인 틀에 대해 회사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식은 아니다. 다만 무대 위에서 나오는 그림이 완벽해야 하기 때문에 충분한 모니터링을 하면서 디테일을 만들어나간다. 무엇보다 안무는 어떤 눈에 띄는 동작을 넣거나, 춤만 돋보이게 하는 게 아니다. 회사가 지향하는 음악의 색깔과 멤버들의 생각, 그리고 안무가 전체적으로 만들어내는 느낌이 조화가 될 때 좋은 안무가 나온다.

그만큼 전체적인 관점에서 안무를 짜는 건가. 요즘 가수들의 안무는 그 그룹의 특성까지도 설명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심재원: 무대의 흐름을 많이 생각한다. 단지 춤만 염두에 두고 안무를 짜면 춤이 노래와 안 맞는다. 안무를 볼 때 가수들의 춤이 보이기보다는 춤을 통해 음악의 느낌이 더 극대화 돼야 한다. 그리고 가수의 특성에 따른 고려도 해야 한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할 때는 멤버들이 신인이다 보니까 의도적으로 가수들을 모두 중앙에 나오게 했다. 멤버가 많으니까 카메라 감독이나 관객에게 누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춤추는 느낌도 멤버들마다 달라서 멤버들의 개성도 살려야 하고. 소녀시대의 수영은 팔다리가 기니까 팔 동작을 많이 뻗는 느낌을 강조하는 식이다. 노래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멤버의 이미지, 그리고 그룹의 이미지가 모두 맞물렸을 때 좋은 안무가 나온다. ‘다시 만난 세계’는 굉장히 복잡한 구성을 가진 군무다. 어떻게 보면 뮤지컬의 춤처럼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심재원: 그건 시대적인 흐름도 영향이 있다. 90년대에는 립싱크하며 춤추는 것이 유행하기도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군무로 쭉 가는 식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라이브를 많이 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음악을 스스로 느끼려고 하는 편이다. 그래서 안무도 음악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멤버들이 솔로 파트로 나설 때는 춤 동작보다는 가수의 제스처나 표정이 더 필요할 때도 있다. 그리고 예전에는 춤의 기승전결이 뻔해서 처음에는 잔잔하게 가다 하이라이트에서 한 번 터뜨리는 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음악이 계속 다이내믹하게 가는 경우가 많아서 춤도 여러 동작에 포인트를 줘야 한다.

SM 소속의 가수들의 춤은 특히 음악의 사운드 하나하나에 다 맞춰서 춤을 추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심재원: 요즘 대중들은 민감해서 덩어리가 아닌 한 포인트로 듣기 때문에 안무도 거기에 맞춰 간다. 예전에는 춤으로 리듬을 쪼갰다면, 이제는 춤으로 소리를 표현해서 음악을 더 잘 들리게 하려고 한다.

“실제로 DJ 작업도 하고 있고, 다양한 음악을 들으려고 노력” 하지만 ‘다시 만난 세계’처럼 9명이 쉴 새 없이 복잡하게 움직이는 안무를 만드는 건 모험은 아니었나. 신인인데다 멤버들마다 춤 실력의 차이가 있었을 텐데.
심재원: 그런 부분을 해결하는 게 퍼포밍 디렉터가 해야 할 일이다. 춤은 결국 사람의 몸으로 공간에 그리는 그림이라고 생각하는데, 춤을 추다 보면 그런 그림에서 자신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다. 대부분 자신이 실력이 떨어진다거나, 어느 부분이 잘 안되다는 걸 스스로 알고 노력한다. 그걸 모르면 그 때는 다시 조언을 해주고. 나만 안무의 전체적인 흐름을 아는 게 아니라 멤버들 스스로 ‘다시 만난 세계’의 느낌과 소녀시대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알고 있다. 그 과정까지 가수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퍼포밍 디렉터다.

안무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심재원: 당연히 춤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해야겠지만, 그 이상으로 시대적인 흐름을 아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춤은 결국 즐기는 문화니까.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많이 들으면서 그런 흐름을 따라가려고 한다. 실제로 DJ 작업도 하고 있고, 다양한 음악을 들으려고 노력한다.

안무가로서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심재원: 사람들이 봤을 때 단지 멋있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 보다 뭔가 남을 수 있는 퍼포먼스를 완성하고 싶다. 퍼포먼스를 통해 인간적인 감동을 주고 싶다. 그리고 춤추는 사람으로서는 다양한 춤을 더 알리고 싶고. 해외에서는 이미 춤의 경계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아직 그렇지는 못하다. 재즈 펑크처럼 새로운 유형의 춤을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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