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드라마는 마치 끝나지 않는 돌림노래 같다. 스펙터클한 연출이 가능한 고구려 사극은 2000년대 들어 시대의 총아처럼 만들고 또 만들어진다. MBC , KBS , MBC 등 후손들에 의해서 반복재생되고 있는 이들 드라마들의 목록에 최근 한 편이 더 추가되었다. KBS 는 탄탄한 스토리에 높은 인기를 얻었던 원작 만화 덕분에 시작부터 조금 다른 사극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막상 시작된 이야기는 우리가 이제껏 보아왔던 사극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KBS 의 제작진들이 만드는 는 곳곳에서 장보고와 염장의 흔적이 보이고, 무휼은 주몽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KBS표 사극의 원형을 충실히 복원하지만, 좀처럼 신선한 바람이 불지 않는 를 조지영, 김선영 TV평론가가 말한다. /편집자주

엔 드넓은 벌판에서 불어오는 바람(wind)도 있지만, 서로 부딪혀서 피를 보는 바람(desire)도 있다. 유리(정진영)와 대소(한진희)의 바람이 다르고, 무휼(송일국)과 도진(박건형)의 바람이 다르고 배극(정성모)과 상가(김병기)의 바람도 다르다. 간절히 바라는 바에 따라 그들은 한 팀을 이루기도 하고, 적으로 갈라서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을 추동하는 힘이 대대로 내려오는, ‘한’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살아 움직이는 자들은 저마다 가슴속에 망자의 한을 켜켜이 새기고 있다.

죽은 자들에게 발목 잡힌 산 자들의 삶죽은 자들은 말이 없다지만, 에서 먼저 죽은 사람들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그들이 죽어가며 산 자에게 남기고 간 숙제 리스트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살아 남은 자들은 그 숙제에 의문도 품지 않고, ‘이 길만이 해답’ 이라는 옹골찬 신념으로 전장에 나선다. 혜압(오윤아)은 사랑했던 해명(이종원)의 유언에 따라 무휼의 곁을 지킨다. 배극도 권좌를 빼앗긴 가문의 한을 풀고자 유리와 대척점에 선다. 대소는 죽은 주몽에 대한 열패감을 극복하고자 정복전쟁에 나서고, 유리는 죽은 주몽과 비교되어 평생을 콤플렉스 속에 살았다.

히어로 무휼도 마찬가지다. 극의 초반, 무휼이 부여의 ‘살인부대’인 흑영의 엘리트로 활동했던 것은 죽은 해명의 원수를 갚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유리마저, 무휼에게 숙제를 안기고 세상을 뜰 예정이므로 무휼에게는 그야말로 죽은 자들이 남긴 과제가 너무 많이 밀려있다. 무휼의 적대자이며 부여의 왕자이기도 한 도진의 운명은 사실, 좀 더 기구하다. 그는 역적의 아들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선대의 그림자를 벗어나, 오늘을 사는 도진이 품었던 단 하나의 꿈이 하필, 가질 수 없는 사랑으로 판명 났다. 망자의 뜻에 따라 움직이거나, 가질 수 없는 바람을 품은 사람들의 선택은 부여 사람이나 고려 사람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베거나 베이거나, 독약을 먹거나 먹이거나.

모험과 자유를 버린 모범생 드라마는 최근 TV드라마로 몇 번째인지 세기도 어려운 ‘고구려’의 이야기를 다룬다. 원작을 명시하고 있지만, 막상 드라마가 빚지고 있는 것은 김진의 원작이 아니라 과거의 성공한 사극이다. 태자 경합은 이제, 사극의 새로운 전통이며 불길한 예언으로 인해 죽을 뻔한 운명을 거스른 영웅은 KBS 에서 낯익고 원작에는 없는 인물인 도진에겐 의 애절한 안티 히어로 ‘염장’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무휼과 연(최정원)이 마주 볼 때, 애절한 휘성의 발라드가 깔리는 것은, 과거 드라마들이 정립한 ‘사극 멜로의 기술’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원작이 있어도 장르가 다르니 재해석의 영역이 존중 받아야 함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왕자로 나고 자란 원작의 무휼과 마침내 왕자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데 19부까지나 걸려야 했던 드라마의 무휼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다. 드라마 속의 무휼은 얼굴도 ‘주몽 폐하’를 닮았지만 그 고민마저 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의 착실한, 안정적 행보는 과거의 충실한 벤치마킹에 힘입은 바 크다. 드라마 속의 인물들은 과거의 빚을 갚는다며, 혹은 대의를 위해 적을 죽이거나, 아버지(혹은 아버지 같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연금하거나 혹은 스스로 목숨을 버려가며 현재를 잠식해가고,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은 과거 성공한 드라마들의 빛나는 순간들을 되살리려고 애쓴다. 모험과 자유를 포기하고, 성공의 예시를 착실하게 따라가는 그 행보는 모범생 같다. 다만, 모범생이 대부분 그렇듯, 공부는 잘하지만 매력은 그만 못한 경우가 많다.
글 조지영

에 떠돌고 있는 것은 강력한 아버지의 유령이다. 최근의 영웅담들이 왜소할 정도로 인간적이고 끊임없이 회의하는, 아버지 부재시대의 주인공을 내세우며 신화를 해체할 때, 는 “주몽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들의 신화적 세계를 복원시킨다. 주몽의 신묘가 있는 동굴에서 자라난 무휼(송일국)은 주몽 신검을 손에 쥠으로써 비범한 운명을 드러내며 “잃어버린 땅, 부도”에 대한 주몽의 비전을 이어받는 전형적인 영웅들의 적자다. 형식적으로도 MBC 이 집대성했던 영웅사극의 전통적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는 궁극적으로 신화적 영웅담의 부계 전통을 구축해 나간다.부자 영웅적 연대기 혹은 부자 멜로드라마

이것은 드라마 가 원작과 달라지는 결정적 지점이기도 하다. 운명과 개인의 충돌에서 빚어지는 고대 비극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며 전형적인 영웅성장담과 거리를 둔 원작과 달리 이 드라마의 이야기는 ‘불행한 운명도 스스로 극복해나갈 수 있는 의지’를 지닌 근대적 영웅의 성장담이다. 따라서 ‘장차 부모 형제와 자식을 죽이고, 나아가 나라를 멸망케 할 것’이라는 드라마 속의 불길한 예언은 무휼의 운명에 대한 비장미와 중요한 극적 갈등을 이끌어 낸다기보다 그의 비범한 성장담을 위한 하나의 장치에 머문다. 예언 속의 살부 모티브 또한 원작과 드라마가 정반대의 양상을 보여준다. 자식을 죽이는 유리왕과 그 운명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대무신왕의 비극을 그린 원작에서는 그것이 극 전체를 지배하는 결정적 갈등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영웅적 연대기인 드라마에서는 오히려 그 살부 모티브가 부자 멜로드라마를 강화하는 데 기능하고 있다. 가령 극 초반을 이끌었던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무휼의 운명을 알게 된 뒤 그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했던 유리왕(정진영)의 부성애, 그리고 그를 위해 스스로 적에게 목숨을 바친 사랑하는 아들 해명(이종원)과의 이야기였다. 여기에 해명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한 무휼과의 의사 부자관계까지 더하면 부자 멜로는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이야기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해명의 죽음 뒤 이는 다시 유리왕과 되찾은 아들 무휼의 멜로드라마로 이어진다. 그리고 18회에서 유리왕이 무휼에게 부친 주몽에게서 받았던 적자의 표지인 부러진 칼을 보여주는 장면에 이르면 이 부자 멜로드라마의 역사는 더욱 확장된다. 이는 ‘아버지들의 못다 이룬 꿈, 부도’에 대한 열망과 함께 이 드라마의 부계 영웅담을 구축해가는 가장 큰 요소이다. 그 후, 얼마나 나아간 걸까

의 이러한 성격은 최근 드라마들의 일경향이기도 한 아버지의 복권과도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가령 사도세자의 조각난 예진을 하나로 완성해 장헌세자로 추존하며 자신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왕권을 강화하려한 정조의 이야기가 한 축이었던 SBS 과 한국 근대사의 전형적 영웅이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늘 가슴에 품고 사는 형제의 근대적 영웅서사이자 부자형제지간 멜로드라마이기도 한 MBC 은 아버지 신화에 대한 향수라는 측면에서 동일한 의미 선상에 놓인다. 대중문화 속에서 이렇게 강력한 아버지들의 유령은 나라에 위기가 올 때마다 종종 소환되곤 했다.

이제 10여회의 에피소드를 남겨둔 는 앞으로 무휼이 본격적으로 ‘전쟁의 신’이자 강한 왕권을 지녔던 대무신왕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나간다. 그 자신이 아버지가 되면서 영웅담은 더욱 강력해지고 신화 또한 공고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에 따라 최근까지 진화해온 영웅서사 속에서 새롭게 발굴됐던 개인의 영역과 주변자적 시선은 다시 좁아지고 있다. 과연 지금 는 2006년의 에서 얼마나 나아간 걸까.
글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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