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배우 이병헌.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시각적으로 스케일이 큰 재난 영화에 버디 영화의 요소가 가미된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재난 영화와 버디 영화의 요소가 모두 담긴 영화는 흔치 않아서 차별화된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배우 이병헌은 영화 ‘백두산’에 출연한 이유로 이 같은 매력을 꼽았다. 지난 19일 개봉해 4일 만에 246만 관객을 모은 이 영화에서 이병헌은 북한 무력부 소속 요원 리준평 역을 맡았다.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하다 발각돼 수용소에 갇힌 리준평은 백두산 폭발을 막는 남측의 작전에 핵심이 되는 정보를 갖고 있다. 영화에서 백두산은 용암을 내뿜고 그 로 인해 서울 한복판에는 싱크홀이 생기고 빌딩이 무너진다. 백두산이 화산 폭발을 일으킨다는 상상력을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로 구현해낸 반면 스토리나 캐릭터 설정은 전형적인 편이다.“상황 설정이 강한 재난오락영화는 기존의 공식을 완전히 깨긴 어려워요. 클리셰를 따라간다는 건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죠. 하지만 예측 가능할지라도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놀랄 만한 비주얼을 보여주고 유머, 눈물, 감동이 버무려진 재미를 선사하죠. 나름대로 아쉬운 점이야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상업영화에서 중요한 점 중 하나는 재미를 줘야한다는 겁니다.”

영화 ‘백두산’ 스틸.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이병헌은 영민한 두뇌와 빠른 행동력까지 갖춘 엘리트 요원이라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남측의 작전에 협력하는 듯하면서도 때때로 돌발 행동을 해 작전에 투입된 남측 대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면서 인간적인 매력, 부성애까지 보여준다. 이병헌의 위화감 없는 연기가 다채로운 면모의 캐릭터를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요인이다. 이병헌은 “내면의 감정을 그런 상태로 계속 만들어 놓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 감정에 가까워지려고 발버둥친다”며 “촬영현장에서 쉬는 시간에도 어느 정도의 감정 수준은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시간을 많이 투자해서 집에서부터 공부해와서 연기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읽을 때 감독이 이야기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캐릭터가 영화 안에서 하는 역할은 무엇인지 등을 처음에는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다음에 주관적으로 인물을 보면서 캐릭터의 감정을 상상해보죠. 대사를 외울 때가 아니고선 특별히 대사를 연구하듯 들여다보진 않아요. 한두 번 읽고 나서 머릿속으로 생각해보는 게 저한테는 좋은 방법이에요.”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라 할 수 있는 이병헌과 하정우는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연기 호흡을 맞췄다. 하정우는 남측의 폭발물처리팀 조인창 대위 역을 맡았다. 조인창과 리준평은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화산 폭발을 막기 위해 힘을 합치고 우정을 쌓아간다.

“서로 성격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죠. 하정우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재치는 우리가 사실 다 아는 거잖아요. 기대했던 것만큼 역시나 그랬어요. 카메라 앞에서도 재밌고 맛깔나고 유머러스하게 연기하더라고요.”
배우 이병헌.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내년이면 데뷔 30년 차가 되는 이병헌은 배우로서 기폭제가 된 작품으로 영화 ‘달콤한 인생’을 꼽았다. 그는 “‘달콤한 인생’을 통해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유럽 등 외국에 처음으로 나와 내 영화를 알렸다”며 “미국에 에이전시도 생겼고 미국에서도 일할 수 있게 된 계기였다”고 밝혔다. 또한 “작품적으로도 누아르의 마니아를 생기게 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병헌은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을 주최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회원이다. 2016년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시상자로 참석했다. 이병헌은 이번 아카데미상 후보로 거론되는 ‘기생충’에 대해 “기대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 제안은 없었을까. 그는 “고민하다가 안 하게 된 작품도 있고 한국 작품에 출연키로 결정을 하자 제의가 온 할리우드 작품도 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작품도 있었다”며 “생각하는 대로 스케줄이 이상적으로 맞춰지지 않는다. 내년, 내후년 중반까지는 이미 스케줄이 정해져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한 연기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병헌의 목표는 무엇일까. “내가 어떤 작품을 찍는다고 했을 때 ‘그 작품을 보고 싶다’는 얘기를 오래 듣고 싶어요. 연예계뿐만 아니라 다른 일에 종사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인데 인생의 곡선은 누구나 있는 거잖아요. 그 곡선이 얼마나 길게 늘어지느냐, 얼마나 급격하게 떨어지느냐의 문제 같아요. 그래서 어떤 작품을 찍더라도 ‘기다려진다’는 얘길 오래 듣고 싶은 겁니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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