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일가족 살인사건 발생 1년 후, 모두에게 잊힌 사건이지만 잡지사 기자인 타케시(츠마부키 사토시)는 다시 심층취재를 시작한다. 그 기간, 여동생 미츠코(미츠시마 히카리)는 아동학대 혐의로 수감 중이다. 살해 당한 가족들의 지인들을 만나 취재하는 동안 타케시는 혼란에 빠진다. 뒤틀린 두 남매를 둘러싼 이야기는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모호한 상태를 만들어낸다. 똬리 틀고 얌전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독이 든 이빨을 드러내는 뱀처럼, 잔인함은 사람들 사이에 일상적인 모습으로 동그마니 웅크려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도 속내를 끝내 감추고 있는 결말은 우리를 조롱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본심을 알 수 있는지, 겉으로 더 없이 다정하게 서로를 위하는 것 같지만 비밀을 가진 남매의 모습 사이로 의심이 싹트는 순간, 균열 사이로 과거의 비밀은 관객들에게 현재의 공포를 재현한다. ‘우행록’은 깜짝 놀랄 충격적 반전, 소름끼치는 공포는 없지만 곱씹을수록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영화다. 케이 감독은 욕심을 내며 힘을 줄 법도 한데, 찬찬히 인물의 속내를 들여다보면서 주제를 해치지 않는 선 안에서만 플롯을 교란시키며 스릴을 위해 이야기를 희생하지 않는다.
선인과 악인의 경계라는 것이 애초에 무너진 채로, 관객의 입장에서는 누구를 응원하고 누구에게 맘을 줘야하는지 모른다는 점에서 교감을 하게 만드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저열한 욕망이 바로 당신의 모습과 닮았다고 말하며 거친 손으로 계속 관객을 감성의 밖으로 밀어내며 악의를 체험하게 만든다. 그렇게 영화의 엔딩에 이르면 관객들은 하나의 거대한 질문과 마주서게 된다. 과연 당신은 주목받지 못하는 고루한 진실과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거짓 중 무엇을 원하는가. 아마 그 누구도 묵직한 이 화두에서 명쾌한 걸음으로 달아나진 못할 것이다.
최재훈(영화평론가)
영화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 포스터/사진제공=풍경소리
두 손이 묶인 채 앉은 자리에 물 한 잔이 놓여 있다. 마치 나를 향해 끼얹어 버릴 것 같은 그 물 한 잔이 얼음처럼 차가울지, 화상을 입힐 만큼 뜨거울지 알 수가 없다. 이시카와 케이 감독의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이하 ‘우행록’)은 그런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영화다. 다양한 사람들의 시점과 이야기의 배치를 통해 일가족 살인사건에 숨은 비밀을 되새기면서 손잡이가 아니라 날이 선 칼을 관객들에게 들이댄다. 이야기는 점점 더 비밀스러운 과거를 향하고, 그 사이로 인간의 저열한 욕망이 날것 그대로 나열된다. 그래서 불편하거나 끝내 불쾌해지고 만다.일가족 살인사건 발생 1년 후, 모두에게 잊힌 사건이지만 잡지사 기자인 타케시(츠마부키 사토시)는 다시 심층취재를 시작한다. 그 기간, 여동생 미츠코(미츠시마 히카리)는 아동학대 혐의로 수감 중이다. 살해 당한 가족들의 지인들을 만나 취재하는 동안 타케시는 혼란에 빠진다. 뒤틀린 두 남매를 둘러싼 이야기는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모호한 상태를 만들어낸다. 똬리 틀고 얌전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독이 든 이빨을 드러내는 뱀처럼, 잔인함은 사람들 사이에 일상적인 모습으로 동그마니 웅크려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의 한 장면. /사진제공=풍경소리
과거와 현재, 사람들의 증언에 따라 오가는 이야기 속에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진 인물들을 통해 희망이라 불리는 자기 기만이 얼마나 허망한지, 개개인의 호기심과 작은 악의가 얼마나 깊게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우행록’은 현실 속에서 쉽게 일어날 법한 일상을 포괄하고 있어 인물들이 겪는 상흔은 마치 뜨거운 지옥을 헤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선량한 미소와 소소한 부주의, 감춰진 적의를 가진 인물들을 나열하며 감독은 끊임없이 묻는다. 과연 세상에는 ‘죽을 죄’라는 것이 있는지, 죄의 값은 얼마이며, 그 값의 올바른 셈이 얼마여야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론에 이를 수 있는 건지.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도 속내를 끝내 감추고 있는 결말은 우리를 조롱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본심을 알 수 있는지, 겉으로 더 없이 다정하게 서로를 위하는 것 같지만 비밀을 가진 남매의 모습 사이로 의심이 싹트는 순간, 균열 사이로 과거의 비밀은 관객들에게 현재의 공포를 재현한다. ‘우행록’은 깜짝 놀랄 충격적 반전, 소름끼치는 공포는 없지만 곱씹을수록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영화다. 케이 감독은 욕심을 내며 힘을 줄 법도 한데, 찬찬히 인물의 속내를 들여다보면서 주제를 해치지 않는 선 안에서만 플롯을 교란시키며 스릴을 위해 이야기를 희생하지 않는다.
선인과 악인의 경계라는 것이 애초에 무너진 채로, 관객의 입장에서는 누구를 응원하고 누구에게 맘을 줘야하는지 모른다는 점에서 교감을 하게 만드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저열한 욕망이 바로 당신의 모습과 닮았다고 말하며 거친 손으로 계속 관객을 감성의 밖으로 밀어내며 악의를 체험하게 만든다. 그렇게 영화의 엔딩에 이르면 관객들은 하나의 거대한 질문과 마주서게 된다. 과연 당신은 주목받지 못하는 고루한 진실과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거짓 중 무엇을 원하는가. 아마 그 누구도 묵직한 이 화두에서 명쾌한 걸음으로 달아나진 못할 것이다.
최재훈(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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