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기자]
영화 ‘물괴’에서 물괴를 추적하는 수색대 성한 역을 맡은 배우 김인권./사진제공=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롯데엔터테인먼트

한국 영화의 ‘웃음장인’ 중의 한 사람인 김인권은 민화의 호랑이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연기에는 해학과 익살, 파격과 즐거움이 걸쭉하게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것처럼 ‘물괴’의 모든 웃음은 김인권으로 통했다. 수색대장 윤겸(김명민)의 파트너 성한 역과 주인공 ‘물괴’의 목소리까지 소화해낸 그를 지난 10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0. 한국 영화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물괴’가 밑거름이 될 듯싶다.김인권: 크리쳐 무비가 발전하는 것은 환영하고 쾌재를 부를 만한 일이다. 우리가 만든, 한국어를 쓰는 영화에 괴수가 나와서 휘젓고 다니는 것은 영화인의 로망이다. 게다가 사료를 바탕으로 한 조선시대 사극에 괴수가 나온다고 하니까 더 메리트가 있다. 사실 괴수 영화의 연장선 상에 놓인다는 부담감은 있다. 흥행 시장의 비주류고, 기술력을 포함해서 위험 부담이 있는 장르다. 그런 리스크를 안고도 과감하게 뛰어드는 제작진을 조금이라도 돕고 싶었다.

10. 완성된 영화는 어떻게 보았는지?

김인권: 재미있게 봤다. 영화하면서 가장 녹음실에 많이 간 영화다.10. 실록에도 기록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짐승 ‘물괴’의 목소리 연기는 어땠나?

김인권: 필요하면 하겠다고 호기롭게 말했다가 진짜 하게 됐다. 점점 할 때마다 소름도 끼치고 진이 쭉쭉 빠졌다. (웃음)

10. 경쟁력 있는 김인권만의 목소리로, 애니메이션 더빙 제의가 들어오지 않을까 싶다.김인권: 도전해보고 싶다.

10. ‘물괴’가 주인공인데 목소리 개런티는 따로 있나?

김인권: 없다. 대신 태원영화사가 의리가 있다. 차기작을 확보했다. ‘배반의 장미’. (웃음)
영화 ‘물괴’ 스틸컷

10.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것처럼 ‘물괴’의 모든 웃음은 김인권으로 통했다.

김인권: 유머 창구다. (웃음) 늘 해왔던 극의 윤활유지만 ‘또’라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배우를 오랫동안 하다보니까 무엇이 장점인지 무엇이 안 되는지 구분이 된다. 결국 제작진도 안정적인 역할을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위험이 있느냐 하면, 지겹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번 작품에서는 피해가려고 고민했다. 물론 포지션으로는 극의 윤활유지만 무사로서의 진정성에 초점을 맞췄다.10.조선시대 무사라는 설정 때문에 체중을 13kg나 불렸다던데.

김인권: 마동석 선배님을 생각했다. 조선시대 무사라고 하면 잔 근육이나 초콜릿 복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근육이 있더라도 마동석 선배 같은 굵고 두터운 근육. 배, 다리, 어깨에서 나오는 느낌도 산 같은 느낌. 물놀이 하는 장면을 보면 배꼽이 안 보인다. 조선시대 바지는 배꼽 밑으로 있지 않았다. 복근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10. 고증에 굉장히 충실한 건가? (웃음)

김인권: 그렇다. 집에서 운동을 하더라도 들어본 중에 가장 무거운 기구를 들었다. 기진맥진해서 식욕이 당길 때 단백질, 탄수화물을 막 먹고.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부풀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 오랜만에 화면을 보니까, 목소리도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덩치가 커지면서 성대가 굵어지고 그랬다. 최대한 노력하려고 했다. 관객들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

10. 웃음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있을 것만 같다.

김인권: 영화 속에서 웃음은 엄청난 무기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보다 더 큰 공포심이란 무게를 갖고 있다. 웃음만 보완되면 물괴에 대한 공포와도 맞물려서 관객들을 즐겁게 하지 않을까 싶었다. 웃음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다. 자칫 따로 놀 수가 있으니까 위험하기는 하지만. 어느 영화든지 웃음의 조율이 잘 된 작품이 흥행에 성공한다. 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하면서 극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하는 아주 훌륭한 무기다.

김인권은 ‘물괴’에서 웃음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다고 한다./사진제공=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롯데엔터테인먼트

10. ‘물괴’에서 ‘윤겸(김명민)X성한(김인권)’의 콤비 플레이가 돋보였다. 다른 작품, 다른 장르에서 만나도 둘의 조합은 꽤 괜찮을 성싶은데.

김인권: 호흡이 잘 맞아야 ‘콤비’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선배님이 나를 너무 좋아해줬다. (웃음) 계속 풀어주고…. 노련한 솜씨로 나를 성한으로 만들어 주셨다. 선배님을 믿고 마음껏 연기를 할 수 있었다.

10. 선배 김명민에 대한 충직한 애정이 느껴진다.

김인권: 정말 지혜롭다. 간혹 뭔가 막혀서 여쭤보면 답이 툭 나올 것 같은 선배님이다. 중심에서 선후배 배우들을 끌고 가고, 현장에서 수많은 스탭들을 조율해 나가는 모습이 ‘불멸의 이순신’ 같았다. 나 역시 어떤 역을 연기하면 그 역이 내 안에 남는데, 선배님한테는 이순신이 남아 있었다. 노련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참 부러웠다.

10.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남아있는 역할은?

김인권: 처음 했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송어’의 태주나 ‘아나키스트’의 상구. 엄청나게 긴장하고, 엄청나게 노력하고. 지금 생각해도 내 인생의 모든 것이었다. 삶을 걸고 연기를 했다.

10. 1998년작 ‘송어’로 데뷔했으니 벌써 20년이 넘는 배우 인생이다. 회사로 치면 20년 장기근속한 사원과도 같다.

김인권: 정말 미스터리하다. 이런 평범한 외모로, 목소리가 좋은 것도 아닌데 배우를 하는 것은…. 도와주신 분들이 참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운도 참 좋았고. 나란 사람은 평범하거나 평범 이하인데, 배우이기 때문에 특별한 것 같다.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