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영화 ‘거룩한 분노’ 포스터/사진제공=날개엔터테인먼트

화음이 잘 맞는 합창 속에 내 목소리가 너무 특이한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사실 지휘자가 각각의 성량에 따라 파트를 나누고, 화음이 어우러지게 큰 목소리는 작게, 작은 목소리는 크게 조정해 주면 꽤 들어줄만한 소리가 난다. 그렇게 합창의 전제는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모두와 어우러지는 균형이다. 하지만 간혹 어우러지지 않는 목소리도 있다. 내 소리가 타인과 섞이지 않거나 균형을 망친다고 생각되면 지휘자는 끊임없이 최대한 남들과 같은 소리를 내려고 조정을 할 것이다. 그래도 계속 내 목소리가 합창 속에서 튄다면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남들과 똑같아지려 노력할 것이다. 그러다 자칫하면 합창에서 배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내 목소리는 숨긴 채 입만 뻥긋거리는 순간도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의 안정적 균형도 이런 합창과 같은지도 모르겠다.영화 ‘거룩한 분노’는 균형을 맞춰 안온하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순간, 자신의 ‘다른’ 목소리를 발견한 한 여성이 바꿔가는 세상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서구사회 중에서 가장 늦은 1971년, 주민투표를 통해 여성의 투표 참정권이 인정되었던 스위스의 한 마을에서 일어난 소중한 변화를 보여준다.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던 시절도 있었다. 남편 뒷바라지를 잘 하고, 아이를 잘 키우며, 살림을 잘 하는 것이 여성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던 그 시절, 여성들 중의 일부는 자신들도 투표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여성의 참정권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남성들의 투표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물론, 남성들의 생각도 함께 바꿔야 하는 어려운 현실과 맞서 싸워야 한다.

페트라 볼프 감독은 ‘거룩한 분노’를 통해 남성과 여성의 대립이 아니라 여성들의 연대와 이를 이해하는 남성들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 한다. 영화의 배경은 1970년대 스위스이지만, 2018년 한국 사회에 대입해 봐도 크게 다르지 않은 남녀차별과 편견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한국사회에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차별이라고 인지되지 못하고 당연하게 자행되던 관습들이 화음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름답지 못한 소리였다는 것을 누군가 얘기하기 시작했다. 다른 목소리가 아름답다고, 그 목소리를 함께 품어야 더 균형 있는 소리가 난다고, 그래서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다소 거칠어 보이지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람들의 이해도 더 넓고 깊어져야 할 것이다.

‘거룩한 분노’는 아주 논쟁적인 주제와 달리 고전적인 해법을 가진 영화라 후련하지 않은 지점이 있다. 논쟁보다는 예상 가능한 결말에 이르는 것이 조금 심심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페트라 볼프 감독이 말하는 이야기는 충분히 귀 기울일 가치가 있다. 내 목소리가 크고, 다수의 사람과 어울리지 않더라도 그 목소리가 뚜렷이 들려야 한다면 내가 내 목소리를 변화시키거나 침묵하지 말고, 다시 한 번 모두가 화음을 맞춰보자는 그 균형감각은 꽤 설득력이 있다. 물론, 변화의 시작은 불협화음이자 불균형이라는 전제는 당연한 것이다.

최재훈(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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