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손예지 기자]
최근 이 같은 틀을 통쾌하게 깨부순 드라마들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극본 제인, 연출 모완일), tvN 수목드라마 ‘마더’(극본 정서경, 연출 김철규 윤현기)다. 여기에 각각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 김남주, 이보영의 호연이 더해져 여성 캐릭터의 신세계를 열었다는 평가다.◆ “여자는 뭐, 국장 되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어?”
그러나 고혜란의 행동은 악행이라기보다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사이다’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재벌 2세를 ‘선택’하고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아니라 ‘나’로서의 존재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것. 그를 둘러싼 적들은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직업을 가진 여성이 부딪히게 되는 한계와 부당함이다. 고혜란은 언론인으로서의 철학과 소신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유리천장을 부수고 있다. 시청자들의 응원이 쏟아지는 이유다.
고혜란이 이토록 완벽한 여자로 그려진 데는 김남주의 공이 크다. 실제 뉴스를 보는 것 같은 완벽한 발음과 발성은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오직 눈빛과 목소리로만 감정을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고혜란의 예민함을 살리기 위해 살을 7kg이나 뺐다는 그는 의상에도 각별히 신경 쓴다. 세련되면서도 과하지 않은 스타일링으로 고혜란이라는 인물을 완성했다.고혜란은 지난 11회에서 JBC 부사장으로부터 보도국장 자리를 제안받았다. 앵커 7년 차인데도 여자라는 이유로 부장에 머물렀던 그는 고민 끝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그간 자신을 인정하고 지지해준 선배 장규석(이경영) 국장을 적으로 돌렸다. 보도국의 남자 동료들은 고혜란이 독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고혜란의 후임으로 ‘뉴스9’ 앵커를 맡게 된 한지원(진기주)이 이를 듣더니 한 마디 던졌다. “여자는 뭐, 국장 되면 안 되라는 법 있어?”
◆ “저는 엄마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습니다.”
앞서 ‘마더’ 제작진은 수진을 ‘엄마가 되기에는 차가운 선생님’이라고 소개했다. 여섯 살 수진은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친엄마(남기애)에게 버림받았다. 이후 유명 배우인 영신(이혜영)에게 입양됐다. 새엄마는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제공했지만, 정서적인 교감을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수진은 모성애가 결핍된 인물이었다.
그런 수진이 달라졌다. 어른들에게 버림받는 게 두려워 학대 사실을 밝히지 못하는 혜나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봤다. 이에 혜나를 데리고 도망치며 엄마가 되어갔다. 이 때문에 유괴범으로 몰린 수진은 경찰과 추격전을 벌인 끝에 붙잡혔다. 지난 14회에서 법정에 선 수진은 “내가 혜나였다”며 “시간을 되돌려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혜나의 손을 잡고 도망칠 것”이라고 말했다.법정 장면에선 특히 이보영의 열연이 돋보였다. “엄마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다”며 자신의 과거와 혜나에 대한 진심을 고백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퉁퉁 부은 눈과 여윈 얼굴, 담담하면서도 떨리는 목소리가 수진의 고통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엔딩에서는 자신을 한 번 더 유괴해 달라는 혜나의 전화를 받고 “미안하다”며 오열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간 여러 작품 속의 엄마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이 과정에서 모성을 여성의 타고난 감정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마더’는 다르다. 혜나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수진을 통해서 ‘모성’보다 넓은 범위의 ‘공감’이 가족 관계를 지탱함을 시사했다. 수진 외에도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자영, 남편 없이 홀로 세 딸을 키운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영신 등 여러 유형의 엄마를 보여주며 ‘당연한 모성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처럼 ‘미스티’와 ‘마더’는 전에 없던 여성 캐릭터로 안방극장에 강력한 여풍(女風)을 몰고 왔다. ‘미스티’는 매주 금·토요일 오후 11시 JTBC에서, ‘마더’는 수·목요일 오후 9시 30분 tvN에서 각각 방송된다.
손예지 기자 yejie@tenasia.co.kr
김남주(왼쪽) 이보영 / 사진=텐아시아 DB
대중문화에서 여성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은 한정적이었다. 누군가에게 보호받아야 할 약한 존재로 그려지거나 희생을 전제로 한 모성을 강요받았다. 남자주인공의 뮤즈, 그를 돕는 조력자에 그치는 경우도 빈번했다.최근 이 같은 틀을 통쾌하게 깨부순 드라마들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극본 제인, 연출 모완일), tvN 수목드라마 ‘마더’(극본 정서경, 연출 김철규 윤현기)다. 여기에 각각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 김남주, 이보영의 호연이 더해져 여성 캐릭터의 신세계를 열었다는 평가다.◆ “여자는 뭐, 국장 되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어?”
‘미스티’ 고혜란 역의 김남주 / 사진제공=글앤그림
고혜란(김남주)은 JBC 말단 기자에서 출발해 간판뉴스 ‘뉴스9’의 앵커직을 7년이나 지키고 청와대 대변인 유력 후보까지 언급됐던 여자이다. 지금은 JBC의 보도국장 자리를 넘보고 있다. ‘미스티’는 여성들이 선망하는 대상이자 이름 석 자로 ‘신뢰’의 상징이었던 고혜란이 치정 살인극의 용의자로 지목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극 초반 고혜란은 선보다 악에 가깝게 그려졌다. 든든한 배경을 지닌 검사와 결혼하기 위해 동거까지 했던 연인을 버렸다. 결혼 후에는 앵커 오디션을 보기 위해 남편의 동의 없이 아이를 지웠다. 체면을 위해 남편에게 쇼윈도 부부 행세를 종용하는가 하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후배는 불륜 스캔들을 만들어 쫓아냈다. 고혜란의 곁은 적들로 가득했다.그러나 고혜란의 행동은 악행이라기보다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사이다’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재벌 2세를 ‘선택’하고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아니라 ‘나’로서의 존재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것. 그를 둘러싼 적들은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직업을 가진 여성이 부딪히게 되는 한계와 부당함이다. 고혜란은 언론인으로서의 철학과 소신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유리천장을 부수고 있다. 시청자들의 응원이 쏟아지는 이유다.
고혜란이 이토록 완벽한 여자로 그려진 데는 김남주의 공이 크다. 실제 뉴스를 보는 것 같은 완벽한 발음과 발성은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오직 눈빛과 목소리로만 감정을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고혜란의 예민함을 살리기 위해 살을 7kg이나 뺐다는 그는 의상에도 각별히 신경 쓴다. 세련되면서도 과하지 않은 스타일링으로 고혜란이라는 인물을 완성했다.고혜란은 지난 11회에서 JBC 부사장으로부터 보도국장 자리를 제안받았다. 앵커 7년 차인데도 여자라는 이유로 부장에 머물렀던 그는 고민 끝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그간 자신을 인정하고 지지해준 선배 장규석(이경영) 국장을 적으로 돌렸다. 보도국의 남자 동료들은 고혜란이 독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고혜란의 후임으로 ‘뉴스9’ 앵커를 맡게 된 한지원(진기주)이 이를 듣더니 한 마디 던졌다. “여자는 뭐, 국장 되면 안 되라는 법 있어?”
◆ “저는 엄마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습니다.”
‘마더’ 수진 역의 이보영 / 사진제공=tvN ‘마더’ 방송화면
‘마더’는 제목 그대로 엄마의 이야기다. 엄마 자영(고성희)과 그의 애인(손석구)으로부터 학대 받던 초등학생 혜나(허율)를 구하기 위해 ‘엄마’를 자처한 교사 수진(이보영)을 통해 모성의 의미를 돌아본다.앞서 ‘마더’ 제작진은 수진을 ‘엄마가 되기에는 차가운 선생님’이라고 소개했다. 여섯 살 수진은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친엄마(남기애)에게 버림받았다. 이후 유명 배우인 영신(이혜영)에게 입양됐다. 새엄마는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제공했지만, 정서적인 교감을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수진은 모성애가 결핍된 인물이었다.
그런 수진이 달라졌다. 어른들에게 버림받는 게 두려워 학대 사실을 밝히지 못하는 혜나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봤다. 이에 혜나를 데리고 도망치며 엄마가 되어갔다. 이 때문에 유괴범으로 몰린 수진은 경찰과 추격전을 벌인 끝에 붙잡혔다. 지난 14회에서 법정에 선 수진은 “내가 혜나였다”며 “시간을 되돌려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혜나의 손을 잡고 도망칠 것”이라고 말했다.법정 장면에선 특히 이보영의 열연이 돋보였다. “엄마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다”며 자신의 과거와 혜나에 대한 진심을 고백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퉁퉁 부은 눈과 여윈 얼굴, 담담하면서도 떨리는 목소리가 수진의 고통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엔딩에서는 자신을 한 번 더 유괴해 달라는 혜나의 전화를 받고 “미안하다”며 오열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간 여러 작품 속의 엄마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이 과정에서 모성을 여성의 타고난 감정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마더’는 다르다. 혜나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수진을 통해서 ‘모성’보다 넓은 범위의 ‘공감’이 가족 관계를 지탱함을 시사했다. 수진 외에도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자영, 남편 없이 홀로 세 딸을 키운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영신 등 여러 유형의 엄마를 보여주며 ‘당연한 모성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처럼 ‘미스티’와 ‘마더’는 전에 없던 여성 캐릭터로 안방극장에 강력한 여풍(女風)을 몰고 왔다. ‘미스티’는 매주 금·토요일 오후 11시 JTBC에서, ‘마더’는 수·목요일 오후 9시 30분 tvN에서 각각 방송된다.
손예지 기자 yeji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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