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사진=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추행 논란에 대해 공개 사과한 연출가 이윤택 /

사과는 했지만 개운하지가 않다. 1986년 부산에서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만들고, ‘오구’ ‘산너머개똥아’ ‘햄릿’ ‘가인’ ‘바보각시’ ‘도솔가’ 등 다양한 작품으로 동아연극상과 대산문학상, 백상예술대상, 서울연극제에서 각종 상을 휩쓴 연출가 이윤택이 19일 오전 서울 명륜동 30스튜디오에서 ‘공개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진심으로 사죄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쏟아지는 성추행 폭로는 인정했지만, 성폭행 주장에 대해서는 “진위 여부는 법의 절차를 따르겠다”고 부인했다. 스스로 지난 18년간 극단 내부에서 못된 관습과 악행이 있었다고 밝혔고, 일부 단원들이 항의해 “앞으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도 했지만 자신의 더러운 욕망을 억제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깊이 있는 작품으로 존경받던 ‘거장’은 이렇게 한순간에 추락했다.

이윤택 연출가의 이번 공개사과는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의 고백에서 출발했다. 김 대표는 “과거 이윤택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고, 이 연출가는 곧바로 자신이 예술감독으로 있는 연희단거리패를 통해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근신하겠다고 밝혔다. 연희단거리패를 비롯해 30스튜디오, 밀양연극촌의 예술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의 ‘간접 사과’는 통하지 않았고, 이윤택 연출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배우의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특히 한 연극인은 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해 큰 충격을 줬다.‘공개 사과’ 이후 연극계는 이윤택 연출가를 영구 제명했다. 그는 서울연극협회, 사단법인 아시테지(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연극연출가협회, 한국극작가협회에서 제명됐다. 뿐만 아니라 창설된지 32년이 된 연희단거리패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해체하기로 했다. 극단의 김소희 대표는 “극단을 해체하고 관련 건물도 모두 처분하겠다”고 밝혔다.

이윤택 연출가의 ‘성추행 사태’를 키운 건 간과와 묵인이다. 피해자들이 극단에 항의하고 문제 제기를 했음에도 당사자는 번번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극단의 수장은 모르는 체 넘어갔다. 김소희 대표는 이윤택 연출가의 행동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성폭력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이후 피해자들을 만나는 등 자체 진상조사를 해서 그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책임을 통감했다.

이윤택 연출가는 이번 기자회견에서 “저로 인해 연극계 전체가 매도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다수의 관객들은 크게 실망한 상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연출가 이윤택의 성추행과 성폭행의 진상 규명과 수사를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30년을 키워온 극단은 해체됐고, 모두의 땀과 노력으로 완성된 작품도 빛이 바랬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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