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연극 ‘사랑해요 당신’에 출연 중인 배우 정영숙 / 사진제공=극단 사조

1968년 T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배우 정영숙(70)이 새삼 연기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올해로 배우 인생 50년을 맞았는데도 ‘친정엄마’ ‘고모를 찾습니다’에 이어 ‘사랑해요 당신’까지 연달아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다. “참 좋다”고 했다. 그간 줄곧 드라마와 영화에 매진하다 2011년 ‘친정엄마’를 통해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한 그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작업이 마냥 즐겁단다. 관객들의 빠른 반응도 그를 신나게 한다. 가까운 거리에서 관객들과 호흡하며 색다른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것. ‘사랑해요 당신’을 공연 중인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정영숙을 만났다.

10. 지난 4월에 이어 ‘사랑해요 당신’ 앙코르 공연을 하고 있는데,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정영숙 : 달라진 것보다 자칫 긴장감을 잃을 수 있으니 그렇지 않도록 조심하려고 해요. 사실 어떤 작품이나 임할 때의 마음은 똑같아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하죠. 다만 ‘사랑해요 당신’은 앙코르여서 행여나 똑같이 할까 봐 스스로 제동을 걸어요. 습관처럼 연기하면 안 되니까요.10. 최근에는 드라마보다 연극 무대에서 더 자주 뵙는 것 같습니다.
정영숙 : ‘친정엄마’ ‘고모를 찾습니다’에 이어 연달아 연극을 하고 있네요.(웃음) 사실 저는 연극이란 장르엔 바탕이 없고 TV를 통해 배우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걸 바쁘게 하다 보니까 연극은 하고 싶어도 못했죠. 지금 이렇게 하고 있어서 참 좋아요. 진작 이런 시간을 좀 더 가졌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10. 무대 연기는 어떻게 다른가요?
정영숙 : 관객들과의 직접 교감이죠. 호흡도 알아가고요. TV 화면과 달리 연극은 직접 관객을 보면서 연기할 수 있으니까 객석 반응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거든요. TV에서는 느끼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즐겁습니다. 몸과 정신도 더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우선 공연을 하면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 물도 평소보다 더 자주 마셔요.

10. ‘사랑해요 당신’에서 주윤애라는 인물은 어떻게 표현하셨나요?
정영숙 : 치매도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그중에서 어떤 류를 모델로 삼을까 생각하다가 마침 단짝 중에 여성 외과의사가 있었는데, 치매가 왔죠. 그런데 뭐랄까…증상이 좀 점잖았어요. 우선 그분이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그렇게 캐릭터를 만들어갔죠.10. 실생활에서도 치매에 대해 생각해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만.
정영숙 : 자꾸 깜빡거리니까 ‘혹시 치매인 거 아니야?’란 생각을 할 때도 있죠. 90세 어머니가 살아계셔서 어머니도 떠오르고요. 어머니는 아직 이 작품을 안 보셨어요. 남편은 와서 봤는데 “우리 얘기네”라고 하더군요.

10. 연극이 배우로서 또 한번의 전환점이라고 봐도 될까요?
정영숙 : 공연 중에는 무대 위와 밖을 넘나들며 정말 정신이 없어요. 그래도 ‘내가 아직 움직일 수 있구나’라고 느끼고, 관객들에게 큰 힘을 얻고요. 옛날 생각도 나요.(웃음) 그때만 해도 드라마를 생방송으로 했던 시절인데 배우가 모든 걸 다 준비했거든요. 의상부터 분장까지 말이죠. 사실 그것만 해도 반은 준비한 거예요. 그리고 나서야 대사를 외우죠.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후배들을 보면 참 잘해요. 시야가 넓어서 그런지 잠재돼 나오는 무언가가 있더라고요.

연극 ‘사랑해요 당신’에서 주윤애 역을 맡은 배우 정영숙 / 사진제공=극단 사조
10. 따님도 연극배우로 활동 중이니 후배들을 보는 마음이 더 애틋할 것 같습니다.
정영숙 : 딸이 연기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반대했는지 몰라요.(웃음) 요즘 연기자들의 경쟁이 치열해서 그런지 정말 열심히 하더라고요. 지난날을 떠올리니 부끄럽기도 했어요. ‘만약 내가 지금 배우를 하려고 했다면, 됐을까?’ 싶을 정도로요. 후배들도 정말 딸, 아들 같아서 다 예쁘죠.

10. 예전에 선생님은 어떠셨나요?
정영숙 : 방송국에 처음 들어와서는 워낙 말이 없어서 선배들이 저에게는 심부름을 안 시킬 정도였어요.(웃음) 후배들이 저에게 싹싹하게 구는 걸 보면서 지난날을 반성하죠.

10. 시대 흐름에 따라 작품, 등장인물 등이 달라지기 때문에 연기자는 그 변화도 잘 읽어야 하겠지요? 오래했다고 해서 안도할 수 없는 직업 같습니다.
정영숙 : 맞아요. 제가 처음에 어머니 역할을 할 때는 뼈를 깎아 희생하는 모습이었어요. 희생정신이 강한 어머니였죠. 이후 김수현 작가의 작품을 하면서는 현대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줬어요. 가부장적인 어머니부터 자신에게 투자하며 골프도 치러 다니는 어머니로 변한 거죠. 확 변하는 걸 보면서 시대의 흐름도 느껴요.10. 사람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겠죠?
정영숙 : 작품을 통해 많은 인간상을 대하고 변천사도 알게 되죠. 의상부터 어머니의 모습까지 그 변화가 눈에 보입니다. 그렇게 계속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에 희열을 느끼죠. 부잣집 딸, 대책 없는 며느리, 다방 마담, 순박한 여성, 김정일 부인, 선덕여왕, 청각장애인까지 안 해본 역할이 없이 다양하게 했어요.

10. 다시 할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작품을 하고 싶으신가요?
정영숙 : MBC 드라마 ‘아다다’예요. 청각장애인 역할이라 농아 학교에 직접 가서 보고 그랬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지금 한다면 다른 시선, 방식으로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작품을 마치고 나면 늘 아쉬움은 남죠.(웃음)

10.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정영숙 : 준비하고 있는 영화가 있어요. 그 작품을 잘 해보려고요. 지금까지 연기라는 한 길을 팠잖아요. 이 분야에서만큼은 가장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