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뮤지컬 ‘나폴레옹’에 출연한 배우 한지상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마을사람1’로 무대에 오른 청년은 차근차근 한 계단씩 밟아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2003년 연극 ‘세발자전거’부터 2017년 뮤지컬 ‘나폴레옹’에 이르기까지 약 14년간 쉬지 않고 달려왔다. 배우 한지상의 이야기다. 그가 지난 7월 15일 개막한 한국 초연작 ‘나폴레옹’을 선택한 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밑바닥 출신 황제’인 나폴레옹의 순탄하지 않은 삶을 들여다보니, 단역부터 커버·언더스터디(대역배우·메인 배우가 무대에 설 수 없을 때 투입되는 배우)를 거쳐온 지난날이 떠올랐다고 한다. “가슴 졸이고 애태우며 커왔다”는 한지상은 그렇게 범접할 수 없는 역량을 지닌 배우로 성장했다. 목표는 어렵게 얻은 영향력을 귀하게 쓰고 싶다는 것. 맡은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고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확실히 표현하는 한지상의 다음 행보가 늘 기대되는 이유다.

10. ‘나폴레옹’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한지상 : 역사가 갖고 있는 힘과 나폴레옹이란 인물에 대한 신뢰가 컸어요. 뮤지컬 ‘나폴레옹’의 브랜드보다 역사 속 실존하는 인물에 대한 믿음, 그 인물에 대한 관심이 컸죠.10. 나폴레옹의 어떤 점에 끌렸나요?
한지상 : 나폴레옹은 다양성을 지닌 인물이에요. 라이선스 작품이어서 넘버(뮤지컬 삽입곡)와 기본적인 틀은 있으나 그밖의 여백은 배우들이 채울 수 있었죠. 저에게 요하는 답안지, 숙제들이 많았어요. 그걸 채워 나가는 과정이 험난했고 창작 수준까지 갔죠. 라이선스의 수위가 높을수록 배우들이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줄고 디렉팅만을 따라가는 작품이 있는데, ‘나폴레옹’은 ‘라이선스가 맞나?’ 싶을 정도로 부담 혹은 숙제가 많았습니다. 징글징글 하면서도 애착이 가는 이유입니다.(웃음)

10. 나폴레옹이란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한지상 : 영웅을 소재로 한 뮤지컬이 많이 있지만 우린 한 인간을 그리고 싶었어요. 영웅도 사실 인간이니까요. 삶이란 긴 여정을 담으려고 했죠. 특히 다 가진 자가 모든 걸 잃었을 때 느끼는 인생무상이랄까, 허무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여러 관객들이 공감할 만한, ‘인간은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끔 말이죠. 그 결과를 말하고 싶었어요.

10. 연극의 단역부터 시작해 대작의 주인공까지, 배우 한지상의 삶도 나폴레옹과 비슷한 면이 있군요.
한지상 : 물론 역할의 크고 작음은 없지만 처음 저에게 주어진 건 ‘마을사람 1’이었어요. 심지어 그것조차 제대로 못해서 ‘마을사람 3’이 됐죠. 이후 뮤지컬 ‘그리스’란 작품에선 커버와 앙상블을 겸했어요. 이어 ‘알타보이즈’는 언더스터디 배우로 계약을 했고요. 모든 작품을 1차 서류 접수부터 시작했죠. ‘떨어지면 어쩌나’ 애태우며 오디션을 통해 커왔어요. 2012년까지도 사실 조연이었어요. 계속 조연만 할 줄 알았고요. 조금씩 주인공을 맡으며 커가는 스스로를 보며 내 안에 있는 나폴레옹을 느꼈습니다. ‘밑바닥’이란 표현이 좀 그렇지만 극 중 대사를 빌린다면 ‘밑바닥 출신이 황제’가 된 거죠. 다른 점이라면 저도 불가능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데 나폴레옹은 저보다 한 수 위 고수더라고요. 안 되는 걸 되도록 하는 불도저 같은 추진력이 남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나폴레옹은 극심한 컴플렉스 덩어리죠. 아마 그게 그를 키운 만든 원동력이었을 거예요.
한지상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한지상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한지상 : 나폴레옹이 지닌 열등감의 정서는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저의 원동력은 다양성을 가졌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욕구였어요.

10. 같은 역을 맡은 배우(마이클 리·임태경)와 다른 매력은 무엇입니까?
한지상 : 인간은 인생을 여행하고 그 긴 여정 속에는 굴곡과 험난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나폴레옹의 여정을 그리고 싶었어요. 어떨 땐 희생하고 내려놓고, 또 혁명하고 실패하기도 하고요.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란 가사도 있듯 다양한 자아를 보여주려고 했습니다다.10. 창작 작품이기 때문에 반응도 제각각입니다.
한지상 : 관객들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좋은 작품을 위해 제작진과 배우들이 정말 노력했죠. 이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로서는 나폴레옹이 남긴 ‘불가능은 없다’는 말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슴을 울리는 한마디죠. 불가능에 도전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나폴레옹’과 같은 작품이 꾸준히 공연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10. 아무래도 주인공이란 무게감도 컸겠죠?
한지상 : 무엇이든 그 이상의 책임감을 느끼는 자리인 것 같아요. 혼자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작품 전체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하니 눈과 귀, 마음을 열어야죠.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걸 더 느끼고 있습니다. 과감하게 이끌어야 하는 부분도 있어야 하고 또 수용하는 면도 가져야 하고요.

10. 소속사를 씨제스엔터테인먼트(이하 씨제스)도 옮긴 이유가 궁금합니다.
한지상 : 돌아보니 나폴레옹이 저에게 준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서른여섯, 저에게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말로 표현할 순 없지만 이 시기에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변화에 맞는 둥지랄까, 좀 더 좋은 변화를 위해서 이사를 한 거죠. 여러 회사 중 씨제스를 택한 건 동료 배우들의 영향이에요. 강홍석, 박혜나, 정선아와 작품으로 호흡을 맞추며 그들에게 매력을 느꼈어요. 동료로서 느낀 인간적 호감을 쫓아간 것 같기도 하고요. 한 배를 타고 싶은 욕구도 있었죠. 그들이 몸담고 의지하는 회사라면 긴 생각이 필요 없을 것 같았고, 제가 먼저 씨제스 관계자에게 “씨제스의 입사 오디션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웃음) 그렇게 시작됐어요.10. 드라마와 영화 등 다른 장르에서도 자주 볼 수 있을까요?
한지상 : 배우의 꿈을 꾸고 뮤지컬이란 장르에 도전한 거지, 뮤지컬 배우만을 꿈꾼 건 아닙니다. 공연계에서도 선택 행위를 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많지 않지만 공연을 오래 해와서인지 선택을 할 수 있게 됐죠. 아직 드라마는 그렇지 않아요. 기회를 열심히 만들어야 하는 입장입니다. 다른 장르는 제가 하고 싶은 계획에 따라 행보가 정해지는 게 아니라 저의 준비 상태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10. 차기작은 오는 12월 막을 올리는 뮤지컬 ‘모래시계’를 택했어요. 드라마에서는 최민수가 연기한 태수 역을 맡았죠?
한지상 : 그 드라마를 보고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싶어요. 중학교 1학년 때 봤어요. ‘모래시계’를 택한 건 권력 앞에 인간이 겪는 내적 갈등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계속 그 부분에 연관 있는 작품을 해왔는데 ‘모래시계’ 속 태수도 꼭 그렇죠. 힘이란 무엇이고, 우리가 좇는 가치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라고 해야 할까요? 이 작품을 선택한 건 그런 맥락입니다.

10. 기대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지상 : ‘모래시계’ 속 최민수가 만든 태수의 모습은 엄청났어요. 존경하고 저 역시 팬이지만, 그가 택한 방식을 좇지 않고 저만의 스타일로 새롭게 디자인하고 싶어요. 의외성을 보여주고 싶죠. 어떻게 ‘한지상만의 태수를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설렙니다.

10. 어떤 영향을 끼치는 배우가 되고 싶은가요?
한지상 : 후배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방관하지 않아야 하고 때론 채찍질도 필요하죠. 무엇보다 무대 위에서는 평등하다는 걸 잊지 않고요. 무대는 선배와 후배로 뛰는 게 아니에요. 어떤 위계질서와 논리가 아닌, 평등하게 호흡하는 자리예요. 기본적인 예의와 개념만 지킨다면 무대 위에서는 마음껏 놀고,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도록 장을 열어주는 선배가 되고 싶습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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