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시나리오작가]
영화 ‘덩케르크’ 포스터 / 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흡사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서로 다른 인물이 다른 시간 혹은 공간 축에서 끌어가는 구조라는 점에서. ‘덩케르크’는 잔교에서 1주일, 바다에서 하루, 하늘에서 한 시간이라는 시간 축을 토미, 도슨, 파리어라는 인물이 각각 이끌어간다. 공간 축만 공유했건만 그들은 하나의 감정선으로 이어진다. 길이가 다른 시간을 정교하게 직조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연출이 그의 이름처럼 놀랍기 그지없었다.

전쟁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필자가 ‘덩케르크’에 매료된 것은 전쟁영화의 익숙한 문법이 아니라는 점에서다. 실재보다 과잉된 총알과 포탄을 뿜어대고, 전의를 다지며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누군가는 영웅처럼 신처럼 총알을 비껴가며 전장을 누비는 등의 장면들이 이 영화에는 없다.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전쟁을 향한 젊은이의 로망이 아니라 그저 집안의 가난을 이겨보려고 월남전에 참전했던 아버지 말이다. 20대 초반의 앳된 병사였던 아버지는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이 진 70대가 되어서도, 뜨문뜨문 꿈속에서 가혹한 그곳으로 간다고 했다. 아마 오래 전 그날도, 요즈음 꿈속에서도 아버지의 바람은 (주인공 토미의 입버릇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덩케르크’는 전쟁의 승패가 아니라 병사들의 생존(귀환)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더 세밀하고 뭉클한 감정들이 화면을 넘어 관객에게 밀려온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아이맥스(IMAX)로 볼 것을 추천한다. 2D로 영화를 보고, 바로 그 다음날 아이맥스로 간 필자는 그들 곁으로 더 바짝 다가갈 수 있었다. 한걸음만 내딛으면 그들의 귀에 대고 속삭일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눈앞에서 굉음의 폭탄을 느끼며 온몸이 떨리기도, 기름으로 칠갑한 병사가 불구덩이 속에 휩싸일 때 필자의 목줄이 타들어가는 듯 했다. 병사들의 죽음은 그 어떤 순간에도 눈물겨웠다.

깁슨, 도슨, 조지, 콜린스, 파리어…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이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잔교에서 1주일의 주인공은 끝내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자 토미라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명민한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혹독하고 메마른 전쟁은 이름 없는 무명씨들이 내린 뿌리 위에 세워졌기에.

[작가 박미영은 영화 ‘하루’ ‘빙우’ ‘허브’의 시나리오, 연극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의 극본,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의 동화를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입문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박미영 시나리오 작가 press@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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