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영화 ‘아수라’에 출연한 배우 정만식이 텐아시아와 인터뷰를 가졌다.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정만식은 선을 아는 배우다. 그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작품에 융화될 줄 안다. 악인들의 지옥도를 그린 영화 ‘아수라’(감독 김성수)에서도 검찰수사관 도창학 역을 맡아, 강렬한 눈빛을 바탕으로 알찬 존재감을 보여준다. 강해보이는 인상 때문에 그를 악역 전문 배우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만식의 얼굴에는 선과 악뿐만 아니라 한없이 가벼운 모습부터 세상 풍파 모두 겪은 인간까지 다양한 얼굴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다.

10. ‘아수라’를 본 주변 반응이 궁금하다.
정만식: 내 주변에서 많이 좋아한다. 고통스럽다, 답답하다, 힘들었다고 말하면서도 영화 속 얘기가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한 마디씩 해줬다. 영화란 게 원래 남들의 이야기를 엿보는 건데, 막상 내가 겪고 있는 얘기라고 생각하니 관객들이 힘들어 하는 것 같다. 꼭 남자들만 ‘아수라’처럼 사는 건 아니거든. 두 번 영화를 본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더라. 처음엔 폭력의 형태와 규모가 보이고, 두 번째는 그 폭력의 과정, 악마 같은 사람들의 관계·욕망·욕구가 보인다고.10. 남자 배우들은 부러워했을 것 같다. 내가 배우였더라도 ‘아수라’는 출연하고 싶은 영화였을 것 같다.
정만식: 박성웅 형이 ‘검사 외전’이 잘 돼서 해외로 여행 다녀온다고 하기에 부럽다고 말했더니 “넌 인마, ‘아수라’잖아”라면서 장난스럽게 욕한 적이 있었다. 그냥 조용히 인정했다.(웃음)

10. 그런데 관객들의 혹평이 생각보다 많다. 배우로서는 아쉬운 부분일 텐데?
정만식: 완성도가 떨어진다,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이 제일 섭섭하다. 무슨 얘기긴 사람 사는 얘기지.(웃음) ‘아수라’는 가상의 도시에 현실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을 극화시키고, 극대화시킨 얘기다. 물론, 장르 영화다보니 친절하지 않다. 특히 장면의 연계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들 한다. 그런데 장르 영화에서 그걸 다 일일이 친절하게 설명해줄 수 없다. ‘아수라’에서 그걸 다 설명해주면 아마 지금보다 더 답답하고 환장할지도 모른다.(웃음) 개인적으로는 조금만 신경 쓰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노력 없이 이 영화는 별로라고 말하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큰 상처를 받는다.

배우 정만식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아수라’는 처음부터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작정하고 찍었지만 그 안에서도 수위를 낮추기 위해 많은 분량을 편집한 걸로 안다. 본인이 찍은 장면 중에 편집돼 아쉬운 장면들은 없나?
정만식: 정우성의 얼굴을 담요로 덮고 때리는 장면이 있다. 한도경(정우성)의 시각에서 맞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에 틀을 만들고 담요를 덮어, 안전장치를 한 다음 내가 카메라를 향해 주먹을 날리는 장면을 찍었다. 이모개 촬영 감독이 찍으면서도 너무 무섭다고 정말 싫다고 말하더라. 그런데 역시나 그 장면이 한 컷만 나오고 편집됐다. 나름 손 다쳐가면서 찍은 장면이었고, 감독님도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내가 아쉽다고 우길 수 없는 부분이다. 배우들과 스태프 모두 우리 각자에게 감독이 가진 것 그 이상의 것이 나한테 있다고 생각 안했다. 우리는 감독님을 믿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 또한 정말 훌륭했고, 개인적으로 결과 또한 흡족하다.

10. 감독을 향한 신뢰와 애정이 느껴진다.
정만식: 한번은 아침부터 햇살을 쬐고 있는데, 감독님한테 내게 “만식아, 호랑이 한 마리가 누워있는 것 같다. 너 정말 멋있다”는 칭찬을 들었다. 난 그 말이 진짜인 줄 알고 굉장히 기분 좋았지.(웃음) 그런 칭찬에 자신감을 얻어서인지 연기할 땐 정말 편했다. 정우성에게 “뭘 봐, 잘 생겼냐?”고 말하는 그 대사도 난 굉장히 당당하게 했다. 지금도 파란을 일으키고 있긴 하지만.(웃음)

10. ‘아수라’엔 어떻게 캐스팅 됐나?
정만식: 감독님이 ‘대호’를 보고 제작사 대표님한테 나와 같이 작업해보고 싶다고 자주 말했다고 하더라. 내 눈이 마음에 든다며, 강해보이는 눈이지만 착한 눈이고, 인간미가 느껴지는 눈이라며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같이 해보자는 감독님의 전화를 받고 정말 기분 좋았다. 난 지금도 감독님 전화는 일어서서 두 손으로 받는다.(웃음) 그만큼 정말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이다.
배우 정만식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아수라’에서 도창학만 조금 결이 다르다. 나머지 네 사람은 어떻게 되고자하는 욕심이 있는데 도창학만 그런 욕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만식: 안 그래도 주변에서도 나만 착한 사람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연기를 잘못한 건가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좀 더 몰아붙였으면 박성배(황정민)나 김차인(곽도원)이 약해지니까 잘 한 것 같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그런 걸 왜 신경 쓰냐. 네가 더 돋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타박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러면 영화가 재미없어졌을 거다. 물론 곽도원 형이 절대 심심한 연기를 할 사람은 아니지만, 도창학이란 캐릭터가 설쳤다면 김차인(곽도원)이 밋밋했을 지도 모른다.

10. 정말 나쁜 놈들이 많이 나오는 ‘아수라’에서 개인적으로 누가 제일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나?
정만식: 박성배가 1등이다. 황정민 형도 언론시사 때 처음 영화 보고 “박성배는 진짜 나쁜 놈”이라고 말하더라. 너무 싫다고, 저런 사람 정말 싫다고.(웃음) 그런데 그런 사람을 밟으려고 한도경을 역이용하려는 김차인도 웃긴다. 뱀 같은 사람이다. 김차인도 나쁘지만 박성배한테 근소한 차이로 밀려서 2등. 2표차 2등.10. 함께 출연한 배우들과 함께 토론토 국제영화제도 다녀왔다. 외국 관객들과 만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다.
정만식: 영화 상영 중에도 헛헛하게 웃기도 하고, 크게 웃기도 하고 반응이 좋았다. 끝나고도 반응이 좋았다. 특히 한도경이 컵 씹는 장면은 누구 아이디어인지 물어봤다. 그래서 우린 다 감독님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장면 되게 좋았다고 하더라. 영화를 보면서 반응을 즉각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정우성한테 내가 “뭘 봐, 잘 생겼냐?”하고 말하는 그 장면에서도 빵 터지더라. 처음엔 인정할 수 없었는데, 두 번째 상영에서도 관객들이 터지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백인 아저씨는 박장대소를 하더라. 나중에 술자리에서 우리끼리 “세계는 역시 하나”라고.(웃음)

배우 정만식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아내는 ‘아수라’를 보고 뭐라고 말했나?
정만식: 와이프도 배우다. 연출도 하고, 통·번역도 하고 참 다재다능한 사람인데, 영화를 같이 보면 나보다 한 5수를 내다보는 사람이다. 이번 영화를 보고도 편집된 부분들이 아쉽지만, 내 결정들이 잘 영화와 잘 맞아 떨어졌다고 평했다. 또, 감독님이 모든 배우들을 사랑하고, 배우들도 영화를 사랑하는 것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특히, 그녀 눈엔 남편이 고생한 것이 보인다면서 촬영 끝나고 다쳐서 올 때마다 마음이 아팠는데 영화를 보니 더 힘들었다고, 폭력적이고 윽박지르는 영화였지만 정말 멋있다고 치켜세워주더라. 이 얘기를 감독님과 제작사 대표님한테 전하니까 훌륭한 분이라고 결혼 잘했다고, 그런 사람이랑 살아야 한다고 하시더라.(웃음)10. 배우라는 직업의 특수성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내라서 정말 좋을 것 같다.
정만식: 내편이 있다는 게 정말 좋다. 울고 싶을 정도로 답답하고,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을 때 그녀가 손잡아주고,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같이 술 한 잔 기울이면 그 감정을 토할 수 있으니까 정말 좋다.

10. 최근 JTBC 드라마 ‘맨투맨’에도 캐스팅됐다. 박해진과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됐는데.
정만식: 고민 많이 했다. 그래도 역할이 부드럽고 발랄하다. ‘딴따라’를 할 때만큼 가볍진 않지만 그나마 ‘대호’나 ‘아수라’에 비해선 말랑말랑한 감성을 가진 사람이다. ‘아수라’에선 검찰수사관이었는데 이번에는 국정원 비밀 요원이다. 직업은 이래도 원하는 캐릭터가 재기발랄하다. 제작사 측에서도 그런 캐릭터로 요구했고, 나 역시 이미지를 한 번 부드럽게 갈 때가 됐다고 생각해서 출연을 결정했다.

배우 정만식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왜 드라마 출연을 고민했나?
정만식: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시놉시스랑 초반 몇 부 분량만 보고 결정을 해야 한다. 내가 가진 능력으론 그것만 보고 판단을 잘 못하겠다. 글이 다 나오면 좋은데 그렇지 않아서 연기하기도 만만치 않고, 또 한 번 출연하면 꽤나 긴 시간 작업을 하는 거라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다. 영화 하나도 예정돼 있는 상황이라 스케줄을 병행해야 해서 고민이 좀 됐었다.

10. 그래도 정만식이란 배우는 새 캐릭터를 입을 때마다 마치 원래 자기의 옷처럼 소화하는 느낌이다. ‘맨투맨’ 전에 또 다른 작품에서 만날 수 있을까?
정만식: 감사한 칭찬이다. 이요원·이솜과 같이 찍은 ‘그래, 가족’이란 영화가 가까운 시일에 개봉한다. ‘맨투맨’은 사전제작이라 내년 봄에나 방영한다. 열심히 하겠다.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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