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수정 기자]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일본에는 일제강점기 우리가 겪은 슬픔이 있다. MBC ‘무한도전’과 서경덕 교수의 노력으로 하시마섬과 다카시 공양탑에 얽힌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의 비극이 최근 알려졌다. 일본이 하시마섬으로 산업화의 영광을 이야기할 때, 그 이면에는 우리의 슬픔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하시마섬과 다카시마 공양탑 외에도 나가사키에는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곳이 있다. 나가사키역 근처 도보 8~10분 거리에 위치한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이다. 나가사키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원자폭탄이 투하된 곳으로 전쟁의 비극을 알리기 위해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이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전쟁 속에서 더한 고통을 맛본 식민지 민족의 고통을 알리는 자료는 부족하다. 이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은 일본이 말하지 않는 가해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다카시마 공양탑을 방문한 뒤, 나가사키 평화자료관도 함께 찾았다.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은 1995년 시민들의 손으로 세워졌다. 일본의 무책임한 현실 고발에 생애를 바친 오카 마사하루의 유지를 이어받아 건립됐다. 이곳에는 마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일제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을 수탈했던 방식과 고통을 당했던 조선과 중국의 모습이 있다. 위안부 문제, 하시마섬 강제징용 문제, 인체실험이 자행됐던 731 부대 문제 그리고 중국의 난징대학살까지 일제의 만행이 자세히 소개됐다. 오카 마사하루를 중심으로 시민단체가 고이 모은 자료들이 전시됐다.

이곳에는 서경덕 교수가 네티즌들의 성금을 제작한 안내서도 비치돼 있다. 서경덕 교수는 지난 5월 평화자료관을 알게된 뒤, 취지에 공감해 한국어, 일본어, 영어 등 3개국어로 된 안내서 1만 5,000부를 제작해 기증했다. 안내서에는 자료관의 설립 취지, 조선인 강제징용의 역사, 하시마 탄광의 진실 등의 내용이 컬러 사진과 함께 담겨 있다.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내부 모습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인 일본인들이 진실을 알리기 위해 설립했다는 점에서 뜻 깊다.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설립에 발판이 된 인물, 오카 마사하루는 해군 출신으로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당시, 전쟁을 멈춰야겠다는 생각에 운동을 시작했다. 관련 자료를 수집하던 중 조선인들의 피해를 알게 됐고, 평화자료관을 구상하게 됐다. 이날 만난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의 사키야마 노보루 사무국장은 “일본이 과거 전쟁을 일으켜 가해한 사실을 일본 국민, 나아가 전세계 사람들에게 알리고 두 번 다시 일본이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오카 마사하루의 유지와 평화자료관 설립 취지를 전했다.

평화자료관을 방문했던 날은 마침 난징대학살 생존자 증언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평화자료관 측은 증언 행사를 개최해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를 생생하게 알리는 작업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올해 15회를 마지막으로 끝나게 된다. 전쟁의 피해자가 고령화로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키야마 노보루 사무국장은 “전쟁의 피해자가 고령화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며 “우리는 이곳의 자료관을 통해 이 같은 역사 사실을 시민에게 전달하고, 그런 것들을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쟁 피해자의 고령화 현상은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지난 5일에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최갑순 할머니가 별세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46명이다. 일본은 여전히 공식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고 있다. 또한, 가해의 역사를 숨기고 산업화를 찬양하는 일본에게서 국가가 하나의 시각으로 역사를 가르칠 때 생기는 부작용도 함께 느낄 수 있다.“두 번 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의 취지처럼, 끊임없이 역사를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 [‘무한도전’ 그 후, 다카시마①] 다카시마 공양탑 탐방기

⇒ [‘무한도전’ 그 후, 다카시마②] 공양탑 방문을 위한 아주 친절한 안내서

글, 사진. 박수정 기자 sove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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