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전도연은 전도연이다. 그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름자체가 일종의 브랜드가 돼 버린 전도연을, 아니 ‘무뢰한’의 김혜경을 만났다. ‘무뢰한’에서 전도연은 김혜경이란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껴안아 살아내는 듯 보인다. 조금만 더 오버하거나, 조금만 더 순수해도 설득력을 잃을 김혜경이 전도연은 만나 스크린에 스며들었다. 깊게, 깊게, 더 깊게…
Q. ‘무뢰한’ 시사회 이후 쏟아진 반응 중 하나가 “전도연 너무 예쁘다”였어요.
전도연: (특유의 콧소리로)어머~ 진짜요? 큰 일 났어요. 자꾸 예뻐져서.(일동 웃음)
Q. 여러 의미가 담긴 칭찬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번 영화에서 맨 얼굴을 여러 번 드러내잖아요? 화장으로 가리지 않은, 그러니까 입가 주름을 고스란히 드러낸 모습이 오히려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지 않았나 싶어요.
전도연: 외모가 김혜경(텐프로 출신)의 가장 큰 무기였던 시절이 분명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여성성으로 어필하는 캐릭터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김혜경이 예뻐 보여야 한다는 전제는 저도, 감독님도 없었어요. 단지 ‘그렇게 살아남은 여자의 무기는 뭘까?’를 생각했죠. 제가 찾은 건, 자존심이었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자존심. 그게 이 여자의 무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예뻐 보였다면, 전도연이 아닌 영화 속 김혜경의 그런 모습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Q. 여배우는 어떨까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20대 여배우가 지닌 매력 중 하나는 생기 넘치는 미모잖아요? 하지만 미모가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한 시간이 오죠.
전도연: 그렇네요. 20대 여배우의 무기가 미모라면, 40대는…연기력?(웃음) 그런데 저는 20대 때에도 외모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요즘은 개성을 많이 인정해 주는 분위기인데, 90년도에는 ‘여배우는 어떻게 생겨야한다’는 미(美)에 대한 전형적인 생각들이 있었어요. 그런 와중에 저는 빼어난 외모의 배우는 아니었죠. ‘예쁜 전도연 보다는 귀여운 옆집 여동생 같은 전도연’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아요.
Q. 만약 전도연이 20년 늦게 태어났다면 어땠을까요.
전도연: 다 죽었죠.(일동 웃음) 저는 요즘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요. 개개인의 개성과 매력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으니까요.
Q. 김혜경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요.
전도연: 시나리오를 보고 처음 느낀 김혜경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여자였어요. 남자보다 더 무뢰한 같은 여자.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강한 여자라면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김혜경은 반대로 선택 당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더라고요. 회장이든 박준길(박성웅)이든, 그들에게 선택 당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걸 또 사랑이라 믿고싶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끊임없이 묻죠. “진짜야?”라고. 그런 면에서 김혜경이 강한 여자냐고 묻는다면, 겉으로는 강해보이지만 내면은 부서지기 쉬운 여자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아요. 그녀가 처한 상황들 속에서 굉장히 처절하고 고통스럽게 그 상황을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Q. 언론시사회 때 오승욱 감독님에게 “여자를 잘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남자 감독님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여자를 오해하는 남자들이 적지 않잖아요?(웃음) 한편으로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그게 오히려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작 ‘집으로 가는 길’의 방은진 감독님의 경우, 여성의 감정을 너무나 잘 간파하고 있기에 연기하는 게 쉽지 만은 않았을 것 같거든요.
전도연: 맞아요. ‘집으로 가는 길’의 방은진 감독님은 본인이 연기도 하셨기 때문에 여성 캐릭터에 대한 자기 대입이 여타의 남자 감독님들보다 훨씬 많았어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여성 캐릭터와 제가 생각하는 캐릭터의 갭을 줄여가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없지 않았죠. 반면 ‘무뢰한’에서는 김혜경이라는 인물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어요. 그러니까 저도 어떤 확신을 가지고 김혜경을 연기한 건 아니었어요. 확신이 없으니까 감독님께 “어땠어요? 괜찮아요?” 라고 물었는데, 그때마다 감독님이 “김혜경 정말 멋있어요”라면서 제가 만들어가는 김혜경을 끊임없이 지지해 주셨던 것 같아요. 물론 지지해 주시는 것에서 오는 부담감도 없지는 않은 현장이었죠.
Q. 허진호 감독(‘8월의 크리스마스’ ‘행복’) 영화를 보면 ‘여자를 진짜 잘 아는 감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해요. 함께 작업했던 감독님 중에 여자를 잘 꿰뚫고 있다고 생각되는 분이 있나요?
전도연: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이재용 감독님이 그랬던 것 같아요. 한번은 감독님이 촬영 세트에 숙부인 자태로 앉아계시는 거예요. ‘뭐 하시는 거지?’ 알고 보니까, 저에게 포즈를 알려주려고 그렇게 계셨던 거예요.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고 하시는데, 사실 저는 그게 되게 싫었어요.(일동 웃음) 똑같이 따라하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그만큼 여성 캐릭터에 대한 확고한 이해가 있다는 의미잖아요? 이미숙 선배님도 “보면서 똑같이 따라하면 돼”라고 하시더라고요. 하하.
Q 배우 중에는요? 출연한 작품으로 보면, ‘멋진 하루’에서 하정우 배우가 연기한 조병운은 여자를 굉장히 잘 아는 듯한 느낌으로 대하는 남자였어요. 실제의 하정우는 어떤가요.
전도연: 하정우 씨는 여자를 잘 리드하는 남자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드러내지는 않는? 그런 느낌이었죠.Q ‘무뢰한’의 김남길 배우는요?
전도연: 오승욱 감독님이 언젠가 남길 씨에게 그러시더라고요. “참 나랑 닮았어!” 남길 씨가 당황하면서 “내가 어딜 봐서요?” 따졌던 게 기억이 나요.(웃음) 저는 김남길이라는 사람보다 정재곤이라는 인물에 집중했기 때문에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여자를) 알만큼은 알지 않을까 싶어요.
Q. 전도연은 남자배우를 긴장시킬 수 있는 드문 여배우입니다.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게 사실이죠. 지금껏 굉장히 많은 남자배우들과 작업을 하셨는데요, 최민식-송강호 같은 선배들과 연기하는 것과 고수-김남길-공유 같은 후배들과 작업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전도연: ‘협녀, 칼의 기억’(이하 ‘협녀’) 촬영 때 낯선 경험을 했어요. ‘협녀’가 사극이다 보니 촬영 준비 시간이 빨랐어요. 하루는 제가 4시 반 스탠바이여서 일찍 나가는데, 배우들 차가 숙소에 그대로 있는 거예요. ‘내가 제일 먼저 가는 거야?’ 했는데, 알고 보니 그날 제가 현장에서 가장 막내였던 거예요. 이경영 선배님, 김태우 오빠 등이 있는 현장이어서 제가 가장 먼저 스탠바이를 한 거죠.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어요. ‘내가 여기서 막내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으쓱해지는 게 있더라고요.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막내니까 이래도 되지?’ 하는 편안함이 들었어요. 예쁨 받는 느낌이랄까요.
Q. 선배들 앞에서는 애교 있는 전도연인가요?
전도연: 아니요~ 저, 되게 시크해요.(일동 웃음) 최민식 선배님도 “난, 도연이가 제일 무서워” 그러세요.(웃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어리광은 부릴 수 있잖아요? 선배들과 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확실하게 있어요. 반면 ‘무뢰한’도 그렇고 후배들과 연기할 때는 편안함 보다는 긴장을 더 하게 되죠. 그 친구들도 처음에는 저를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을 테고요.Q. 이정재 배우가 ‘무뢰한’에서 하차했을 때, 중심을 잡으셨다고 들었어요. 보통 상대배우가 하차하면 불안해지기 마련인데요.
전도연: ‘무뢰한’이 상당히 오래 시간 떠돌아다닌 작품이에요. 이정재 씨가 출연을 확정한 후에도 여배우 캐스팅이 안 돼서 제작까지 시간이 또 걸렸죠.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출연 결정이 쉽지는 않았어요. ‘협녀’를 찍고, ‘남과 여’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 사이에 찍는다는 게 부담이었거든요. 작품 자체가 무겁고 캐릭터들도 어두워서 망설여지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적으로 매력이 있었어요. 시나리오도 너무 좋았고요. 그래서 선택을 했는데, 출연 결정을 하자마자 정재 씨가 어깨 부상으로 하차를 하게 된 거예요.
Q. 여러 생각이 드셨겠네요.
전도연: 네. 사실 그 순간 든 생각은 ‘내가 중심을 잡고 지켜야지’가 아니라 ‘이 핑계 삼아, 나도 빠져?’였어요.(일동 웃음) 너무 부담이 되니까요. 캐스팅 문제로 촬영이 지연되면 다음 영화 ‘남과 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고요. 그런데 핑계 삼아 빠지고 싶은 마음보다 오승욱 감독님께 힘이 돼 드리고 싶다는 기특한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무뢰한’은 오승욱 감독님의 15년 만의 작품이에요. ‘이제 영화를 찍을 수 있어!’ 하셨을 텐데, 또 좌절의 상황 앞에 놓이신 거잖아요. 차마 뿌리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비상대책소집위원 비슷한 걸 열어서 새벽 5시까지 회의를 했어요.
Q 그렇게 해서 김남길 배우가 새롭게 합류했어요. 이정재 배우와의 연기 합을 어느 정도 생각해 두셨을 텐데, 새로운 배우를 맞는 입장은 어땠나요?
전도연: 정재 씨랑은 ‘하녀’때 호흡을 맞췄었어요. 이후 정재 씨가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줬기에 다시 만났을 때의 호흡에 대한 기대가 있었죠. 그런데 사실 제가 출연 결정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재 씨가 하차를 했기에, ‘어떤 합을 보여줄까’ 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기 전이었어요. 반면 남길 씨의 경우 궁금했어요. 같은 필드에 있다 보면 시상식이라든지, 영화 뒤풀이라든지 우연이라도 잠깐 보게 되는데 남길 씨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요. 제 기억 속에 남길 씨는 조각 같은 외모에 스타일리시하고, 나쁜 남자 같은 이미지의 배우였어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만났는데… 깜짝 놀랐다니까요.(웃음) 내가 아는 김남길이 이 사람이 맞나? 싶더라고요. 남길 씨에게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나요. “화면 빨, 정말 잘 받는 얼굴이네요~”라고.(일동 폭소)
Q 그 말에 대한 김남길 씨 반응은요?
전도연: 그냥 바보처럼 웃더라고요.(웃음) 남길 씨에게 또 하나 놀란 건 성격이에요. 굉장히 발랄해요. 처음에는 제가 선배이기도 하고, ‘전도연 까다롭고 무섭다’는 소문이 있어서 그 갭을 줄이기 위해 일부로 노력하는 걸로 알았어요. 그 노력이 내심 부담스러웠죠. 그리고 제가 리액션을 잘 못해줘요. 누가 재미있는 얘기를 해도 안 웃기면 반응을 안 하는 스타일인데, 이 친구는 쉴 틈 없이 리액션을 해야 하는 상황을 주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웃음) 그래서 남길 씨와 친분이 있는 분장 친구에게 “노력 안 해도 된다고, 얘기 좀 전해 줘요” 했는데, 원래 밝은 친구라고 하더라고요.
Q. 현장에서 유쾌하기로 소문난 배우잖아요?
전도연: 그걸 뒤늦게 안 거예요. 스태프와 감독님 뿐 아니라, 남자 선배들에게도 애교 있는 성격이라는 걸 안 후로는 편해졌어요. 이후부터는 남길 씨가 방방 뜨면 제가 “기다려!” 하면서 누르곤 했어요.(웃음) 처음에는 발랄한 성격 때문에, 그 친구가 연기해야 할 정재곤이 걱정되기도 했어요. ‘정재곤은 상처받은 짐승, 거칠고 마초 같은 남자인데 과연 잘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거죠. 그런데 결과적으로 김남길이라는 친구로 인해 정재곤이 조금 더 다양해진 것 같아요. 마초 같은 면모 안에 아이 같은 모습도 있고 소년 같은 모습도 있고. 김남길이어서 그런 캐릭터가 나올 수 있었던 거죠.
Q. 방금 ‘전도연 까다롭고 무섭다’는 소문이 있다고 하셨는데, 관련해서 조금 더 들을 수 있을까요?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웃음)
전도연: (코 찡긋 웃음) 모르겠어요. 왜 저를 무섭고 까다롭다고 하는지~ 가끔 조심스럽게 와서 “선배님, 무섭다는 소문이 있는데 실제로는 안 그러세요”라고 하는 친구들도 있다니까요. 그럼 제가 “왜 그런 소문이 났대니?”하죠.(일동 웃음)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굉장히 철두철미해요. 저로 인해서 현장에 문제가 생기는 게 싫고, 현장으로 인해서 제 연기가 지장을 받는 게 싫어요. 그래서 스태프들과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해요. 긴장을 하면 실수를 줄이게 되니까요. 그런 면에서 ‘전도연, 일하는 게 까칠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건 남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나에게도 적용되는 거예요.
Q. 스스로에게도 엄격하시군요.
전도연: 그럼요. 긴장감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긍정적인 에너지라고 생각해요. 80-90명의 스태프들이 어떤 작품을 두고, 한 가지 생각으로 현장에 집중하고 있다는 게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아무리 비슷한 사람들을 데려다놔도 다른 생각들을 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80-90명이 한 가지 생각으로 현장에 집중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면 존경스럽기도 하고, 그 현장에 속해있다는 게 뿌듯하기도 하고 그래요. 저는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의 과정도 굉장히 중요해요.
Q. 개봉을 앞두고 있는 ‘협녀’의 박흥식 감독님과, ‘남과 여’의 이윤기 감독님은 이전에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는 연출가입니다.
전도연: 네. 박흥식 감독님과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 ‘인어 공주’(2004)에 이어 세 번째고, 이윤기 감독님과는 ‘멋진 하루’(2009)에 이어 다시 만났죠.
Q. 다시 만났을 땐, 어떤 기대하는 지점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전도연: 박흥식 감독님과 이윤기 감독님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분들이세요. 당연히 재회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되죠. 그런데 다시 만난다고 해서 나빴던 부분들까지 좋아지는 건 아니더라고요.(웃음) 서로의 단점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고, 현장에서 불편하거나 싫었던 것은 여전히 싫고 그랬어요. 그럼에도 제가 믿는 감독님들이니, 현장이 즐거웠죠.
Q. 심사위원자격으로 칸국제영화제에 참석하기도 하셨는데, 당시의 경험이 연기를 하는데 있어 어떤 영향을 주나요?
전도연: 어떤 연기를 좋다고 하는 것은 결국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인 것 같아요. 정극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편한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정말 각양각색이죠. 그걸 모여서 심사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그렇다고 그것이 제 연기에 큰 영향을 준 건 아니에요. 대신 ‘영화를 더 집요하게 찍어야 겠다’는 자극은 받았어요. 전 세계에 내로라하는 감독님들이 고민을 하며 좋은 작품들을 쏟아내는 걸 보니 ‘더 많이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Q. 데뷔 25년 차라니, 믿기지 않아요. 쉬지 않고 달리는 원동력은 뭔가요.
전도연: 저는 욕심으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에요. 어떤 꿈이 있어서 여기까지 온 것도 아니고요. 칸에서 상을 받고 심사를 하고 영예를 안는 것들이 힘이 되긴 했지만, 그것이 목표는 아니었어요. 사람들이 저에게 많은 걸 이뤘다고 하시는데, 사실 저는 스스로를 아래로 자주 끌어내리는 편이에요. 들뜨지 않으려고요. 그건 어쩌면 큰 기대에서 오는 실망이나 좌절에 상처 받기 싫어서 일수도 있어요. 어쨌든 지금까지의 저는 어떤 목표나 목적이 없었어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다만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은 욕심은 있어요. 배우로서 끊임없이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원동력이라면 원동력이죠.
정시우 siwoorain@
사진. 구혜정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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