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김정태.
[텐아시아=황성운 기자] 김정태는 항상 유쾌했다. 현란하고 코믹한 애드리브와 말솜씨는 어디에서든 빛났다. 대중은 그런 그에게 명품 조연이란 타이틀을 건넸다. 하지만 3월 26일 개봉된 ‘세계일주’에서는 그의 유쾌함은 볼 수 없다. 코믹한 모습은 사라졌고, 그 자리를 부성애로 채웠다. 노숙자와 다름없는 겉모습은 물론 두 자녀와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이 매우 낯설고, 신선하다.김정태는 작품 밖에서도 유쾌했다. 제작발표회나 기자간담회, 인터뷰 등 언론을 상대하는 공식 자리에서도 그는 항상 웃음을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에 만난 그는 유쾌함이 다소 사라졌다. 김정태의 표현을 빌리자면, 굉장히 조심스러워졌다. 지난해 KBS2 육아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 출연 중에 지방 선거 유세 논란이 일었고, 이후 김정태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됐다. 그 상처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자리조차도 전과 달리 부담스러워했다.Q. ‘세계일주’가 뒤늦게 개봉하게 됐다. 그 소감이 궁금하다.
김정태 : 나보다는 제작하신 분들 입장에서 괴로웠을 거다. 출연한 배우지만, 축하하고 싶다. 최근 인터뷰를 자제했는데 얼마나 설레고, 힘들었을까 생각하니까 작은 힘이나마 보태야겠다고 생각했다.
Q. 개봉이 늦어지면 불안한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세계일주’는 전자가 아닐까 싶다.
김정태 : 간혹 물어보는 관계자들도 있고. 그마저도 3년 차 넘어가니까 다 기억 속에 잊히더라. 나 역시도 잠시 잊히기도 했다. 그러다 TV에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간혹 볼 때가 있다. 그럴 때 ‘언제 하나’ 이런 생각도 들고. 그러다 갑자기 연락 와서 좋은 소식 전해주니까 다행이다 싶다.
Q.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김정태 : 내가 선택한 건 아니다. 이런 영화를 찍는데 제작사 대표님이 아버지 역할로 나를 원했다고 해서 찾아왔더라. 그 당시 ‘야꿍이’가 돌 지났을 때인데, 아이들한테 보여줄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시간이 맞았다. 또 여러 가지 진정성도 있고, 배우를 생각해주는 느낌도 들었다. 사실 출연료를 조금 받는다고 대충 연기하는 게 아니다. 여느 영화와 똑같이 찍었다. 감정연기고, 아이들하고 호흡 맞추는 게 힘들었다. 아이들이 내 말을 잘 따라줬다. 내가 아이를 잘 다룬다. 들었다 놨다, 울렸다 웃겼다. 하하.Q. 감독은 왜 김정태를 아버지 역을 생각했을까.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궁금하지 않았을까 싶다.
김정태 : ‘야꿍이’ 사진이 올라오는 것을 봤을 때 아이를 좋아하는 배우 같고, 어렵게 생활했던 게 있으니까 적역이지 않나 싶었다더라. 어렵게 산 건 맞는데 아빠 역할을 잘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하하.
‘세계일주’ 김정태.
Q. 기존에 대중에게 각인됐던 김정태의 모습과 달라 나름대로 기대도 많이 했을 것 같다.김정태 :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런 것도 있었을 거다. 머리도 안 감고, 메이크업도 거의 하지 않았다. 인위적으로 보이지 않게 노력했다.Q. 촬영 당시 아들 ‘야꿍이’가 어릴 때였을 것 같은데, 촬영하면서 많이 생각났겠다.
김정태 : 아마 극 중 현배만큼 어려웠을 거다. 밥도 못 먹고 다닐 정도였다. 그런 것도 많이 떠오르기도 했고. 그런 상황에서 야꿍이가 태어났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기도 했다. 이제 막 먹을 수 있을 때라 그런 생활을 덜 하게 됐지만, 자연스럽게 대입되더라.
Q. 상황은 다르지만, 영화 속 박하영-구승현은 아빠가 있음에도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거의 없다. 실제 김정태도 자식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다.
김정태 : 촬영했을 때 나와 3년이 지난 나를 비교해볼 수 있는 영화일 것 같다. 그런 케이스가 드문데. 두 아이의 아빠가 돼서 떨어져서 생활하니까. 그런 영화를 한 편 더 찍어야 할 것 같다. 하하.
Q. 영화를 보면서 남다른 감상에 젖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정태 : 내 영화를 쑥스러워서 거의 잘 안 본다. 빨리 잊어버리려고 하지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음 영화를 찍어야 하니까.Q. 또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보면서 촬영 당시가 떠올랐을 것 같다.
김정태 : 아이들과 감정연기를 해야 하니까. 3명 호흡을 맞추는 게 힘들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합이 잘 맞는다고 할까. 겁도 주고, 혼도 내고. 우리끼리 집중할 때 주고받는 신호가 있었다. 또 장소로 인해 색다른 느낌이 드는 건 없다고 봐야 한다. 단지 처해 있는 상황이 낯설긴 했다.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렸으면 부렸지, 떼를 쓰고 울진 않으니까. 하하. 경찰서에서 눈물을 보인 적은 처음이지 않나 싶다.
Q. 이번에는 김정태의 장기인 애드리브를 할 여지도 없었겠다.
김정태 : 그런 생각 전혀 안 했다. 영화 성격에 따라서 하는 거지 자기 개성화된 연기를 하게 되면 위험하다. 자기화할 줄도 알아야 하고, 개성화할지도 알아야 한다. 배역의 감정에만 따라서 하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야 하는 역할이다. 그런 거에 대해 아쉬움은 전혀 없다. 애드리브도 상황에 맞게 하는 거다.
‘세계일주’ 김정태.
Q.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중에는 비슷한 이미지도 많았다. 이처럼 잦은 출연과 비슷한 이미지에서 오는 피로도가 있을 것 같다. 대중은 물론 본인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그런 고민은 없나.김정태 : 그런 고민이 없으면 배우가 아니다. 왜 없겠나. 외줄 타기를 잘해야 할 것 같다. 좋은 영화를 내가 선택할 수 없다. 선택받는 직업이고, 선택을 받는 데 어려움도 있다. 누구나 좋은 선택을 하고 싶지만. 시나리오를 고를 수 있는 배우가 몇 명이나 되겠나. 그게 아니고선 그 안에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하는 거다. 악역을 몇 년 했다. 그 안에서 변별력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고민한다. 그래도 어쨌든 계속해야 한다. 아니면 더 큰 배우가 돼 시나리오를 고르든지. 그리고 운도 좀 있어야 한다.
Q. 하다 보면 자신도 헷갈리겠다. 촬영이 겹치기도 하고.
김정태 : 그런 건 없다. 삼청동에 카페가 많다고 해서 헷갈리는 건 아니다. 영화지만 사람 자체가 달라서 곧바로 몰입하고 빠진다. 길은 좀 헷갈릴 수 있어도 연기가 헷갈리는 건 엄살이다. 그 정도 헷갈리면 그만해야지. 하하.
Q. 무명 시기가 있어서 있을 때 바짝 하자, 뭐 이런 생각도 있는 건가.
김정태 : 당연한 거 아닌가. 열심히 찾을 때 열심히 해야 한다. 특수성이 있는 직업이라 일반 잣대로 평가하는 건 무리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이 아니니까. 당장 지금 오랫동안 놀고 있다. 하하. 인기는 언제 내려올지 모르고, 정년은 보장 안 되고. 그런 것을 마냥 요구만 할 수 없다.
Q. 어떤 연기를 할 때가 더 편한가. ‘세계일주’ 속 모습은 그동안 김정태가 보여줬던 것과 달라 낯설었을 것 같은데.
김정태 : 솔직히 말하면 현장이 편한 곳이 연기하기에도 편하다. 희극이든 정극이든. 장르가 주는 어려움보다 주위 사람들의 조합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런 데서 오는 편안함을 더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연기는 오래 해왔고, 나만 잘하면 되는 거다. 그런데 현장은 나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지 않나. 그런 것들 더 신경을 많이 쓰려고 한다.
Q. 주위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가 보다.
김정태 : 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세계일주’ 김정태.
Q. 분명 연기지만, 그 모습이 실제 김정태라고 생각한다. 예능에서도 유쾌한 모습이었고.김정태 : 그래서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지방선거 이후로 고통을 받아서 굉장히 조심스럽다. 이사도 했고, 대인기피증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그걸 알게 됐다. 다 설명할 수 없고, 좀 더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다. 원래 대중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는 성격이다. 이제는 대중이 요구하는 게 높다는 걸 알았고, 그 니즈에 부합하기 위해 조금 더 정제되고 조심스럽게 행동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배우 이외의 모습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이름이 없었을 때 김정태하고, 대중적으로 알려진 김정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그에 부합하는 애티튜드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Q.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논란은 결국 김정태가 극복해야 할 지점이다.
김정태 : 타이밍인 것 같다. 급하게는 안 하려고 한다. 여러 가지 답답함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번에 다가오는 봄은 더 새로운 봄이 될 것 같다. 봄에 개봉하는 ‘세계일주’가 의미를 줄 수 있는 사랑을 받고, 그로 인해 잃어버렸던 사랑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Q. 그 이후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겠다. 특히나 가족이 많은 힘이 됐겠다.
김정태 : 가족밖에 더 있겠느냐. 집사람이 대학 강단에 나갔는데 이후 옷 장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고생시켰는데 옷가게를 한다고 해서 듣는 순간 얼마나 짜증 나는지. 10년, 20년 후에 물어보면 인생의 전환점이 이 시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영화계에 오래 했다면 오래 했다고 할 수 있는 데 나 자신을 돌아보는 충분한 계기가 됐다.
Q. 좋은 기억과 안 좋은 기억이 공존하는 예능인데, 앞으로 어떻게 대할 예정인가.
김정태 : 회사에 맡겨야지. 예능은 당분간 어렵지 않을까 싶다. 용기가 안 난다. ‘인간시대’ 같은 다큐면 모를까. 나 혼자 나가는 건 못한다. 겁난다. 그 사랑이 독화살이 될 수 있다는 걸 몸소 느꼈다.
Q. 마지막으로 김정태에게 ‘세계일주’는 어떤 의미인가.
김정태 : 추억이다. 다시 추억을 더듬을 수 있게 하는 영화다. 음…. 새로운 영화가 오픈했는데 추억이라고 하면 안 되겠다. 하하. 배우 김정태가 아닌 가장으로서 김정태를 다시 보고 싶게끔 하는 영화다.
황성운 기자 jabongdo@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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