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

[텐아시아=장서윤 기자] 지난해 말, 캐스팅 논의가 오가던 MBC 수목드라마 ‘킬미, 힐미’는 불안과 우려를 안고 시작했던 작품이다. 복잡다단한 남자 주인공 캐릭터로 인해 거론됐던 배우들이 줄줄이 출연을 고사하면서, 방송 한 달을 채 못 남기고 부랴부랴 촬영에 나선 이 드라마에는 기대보다는 ‘잘 될까?’라는 걱정의 시선이 존재했다. 뚜껑을 연 ‘킬미, 힐미’는 특히 10~30대 젊은층 사이에서 초반부터 화제를 모으며 안방극장에 안착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배우 지성이 있었다. 무려 일곱 개의 인격을, 여고생부터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중년 남성까지 무리 없이 소화한 그는 ‘갓지성’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한 연기로 두 달간 시청자들을 사랑에 빠지게 했다.

Q. 캐스팅부터 마지막 방송까지 급박했던 여정을 무사히 마무리했고, 호평도 많이 얻었다.
지성: 늘 다른 배우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기사를 보면서 ‘아 나도 언젠가는 저런 찬사를 받을 수 있는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내 길이 조금 돌아가더라도 한참을 달려 와야 하는 길이었던 것 같다.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고 좋은 기억을 남긴 채 끝내 기쁘다. 잊지 않고 발전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다.Q. 무려 일곱 개의 인격을 연기했다. 많은 인격 연기 힘들었을텐데 어떤 인격이랑 이별할 때 가장 슬펐나?
지성: 여러 인격들이 있었는데 초반에도 이상하게 부담되지 않았다. 늦게 이 작품에 합류하게 돼 빠른 시간안에 준비했어야 했고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할지 어떤 메시지를 담을건지 확실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버릴건 버리고 욕심은 내려놓고 연기했었기 때문에 결과에 기대지 않고 연기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렇게 하니까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내 캐릭터를 사랑해주셨다. 내가 언제 안요나처럼 여자 교복을 입고, 신세기처럼 아이라인을 그리고, 페리박처럼 구수한 여수 사투리를 써가면서 연기를 할 수 있겠나. 나에게는 캐릭터가 하나하나 다 소중하게 남아 있고 정성들여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지성

Q. 경쟁 드라마(SBS ‘하이드 지킬, 나’)가 비슷한 소재였고, 표절의혹까지 나왔는데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어땠나?
지성: 상대 프로그램이 같은 소재 드라마다 보니 여러 얘기가 나온 것 같은데 부담되는건 전혀 없었다. 다른 드라마도 좋은 작품이 되기 위해 노력하시고 있고. 표절 의혹에 대해서는 내가 이렇다 저렇다 드릴 말씀은 없고 주어진 상황에서 진심을 다할 뿐이다. 나 또한 어떤 드라마의 경우 관심을 못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킬미, 힐미’에 이렇게 많은 공감해주시고 힘이 되는 말을 해 주셔서 정말 행복했다. 무엇보다 감독님이 내가 연기를 잘할 수 있게 제대로 열어주셨다. 나에게도 오래 남을 수 있는 작품이 된 것 같다.Q. 황정음과는 두 번의 연기가 모두 호평을 받는 등 범상치않은 만남이다.
지성: 둘이 ‘우린 무슨 인연이지?’란 얘길 자주 했다. 일하면서 두 작품 같이 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도 내 입장에서는 연달아서 말이다. 배우들끼리의 호흡은 중요한 것 같다. 정음이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하고 싶은 건, 연기할 때 상대방이 리액션을 받아주지 않으면 무의미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초반에 갑자기 신세기가 나타나 “기억해”라는 대사를 하면 사실 황당해서 리액션을 해 주기 어렵다. 그걸 재치있게 받아주고 성심성의껏 리액션해 준 부분 정말 감사하다. 또 다시 할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같이 하고 싶고, 정음씨가 결혼하고 다시 만나자고 하던데 내 생각에도 그럴 것 같다(웃음)

Q. 가장 마음에 남는 인물이나 명대사가 있나?
지성: 많이 나오진 않았지만 요섭이가 많이 떠오른다. 각 캐릭터마다 내 마음을 담다 보니 요섭이의 경우는 요즘 힘들게 살고있는 친구들에게 희망과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전하고 싶었다. 요섭이가 나에게는 가슴에 의미있는 케릭터인데, 마지막 불어 대사가 생각이 난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고 말하는. 그 대사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왜 그렇게 눈물이 났던지… 신세기를 떠올리면 가장 처음에 했던 ‘기억해 내가 너에게 반한 시간’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지금도 팬들이나 스태프들께 인사를 드릴 때 이 대사를 해 주면 정말 좋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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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애드리브도 있었나
지성: 요나와 페리박의 모습은 거의 다 애드리브였다. 작가님이 기본 틀을 써 주시면 재미있게 만드는 게 배우의 임무인 것 같다. 난 사실 애드리브를 잘 못하는 배우인데, 캐릭터에 집중하니 자연스럽게 생기더라.

Q. 여러 인격을 연기하면서 오는 혼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지성: 이 작품이 끝나면서 사실 가장 걱정됐던 건 나다. 내가 일상으로 잘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 시간이 좀 흘러 ‘킬미 힐미’ 여파로 내게 좀 힘듦이 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겁나기도 하한다. 사실 인터뷰 자리도 내게는 이런 얘기를 하면서 나를 보호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Q. 다중인격 연기에 색다른 묘미도 많이 느겼을 것 같다.
지성: 도현 속의 여러 모습은 일단 각기 다른 캐릭터이지만 한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 연관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나약한 마음의 요섭이, 항상 뛰어놀고싶은 요나가 있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서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페리박이 있고, 분노가 치밀어오를 때 나타나는 신세기가 있고. 인격체 중 마지막에 등장했던 나나와 아버지 미스터엑스가 있다. 이 캐릭터들이 차도현의 어린시절부터 인생을 통해서 나타나면서 한 사람의 차도현을 얘기해주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요나를 찍어도 나에게는 웃기지 않았다. 이런 인물들이 다 지금의 도현을 이뤘다는 마음을 머릿속에 갖고 촬영하다보니 연기하면서 어렵다는 생각은 없었다.Q. 실제 중년 남성을 무색케하는 사투리 연기도 화제가 됐다.
지성: 고등학교를 여수에서 나왔는데 그때 전라도 사투리를 써본적이 단한번도 없다.(웃음) 억양이 살짝 바뀔 뿐이지. 그럼에도 몰입이 되는 건 어릴 때 듣고 봤던 기억이 몸에 배어서 그런 것 같아 신기했다. 요나의 경우, 내 몸 속에 여자의 기운이 있는지 교복 입은 아이들을 보면 막 눈을 흘기게 되고 그러는데 나도 신기했다. 모든 게 분명한 주제의식 속에서 나와서 어렵지 않았다. 요즘 힘들고 어려운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에게 치유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 캐릭터의 진심을 담았다. 그런 마음을 통해서 연기를 해나가니까 감정에 몰입할 수 있었다. 나 또한 이번 작품 통해서 많이 배웠고 스스로에게도 치료가 됐다. 더 나아가서 40대가 되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할지도. 나 또한 이제 태어날 아이가 있으니 현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물론 내 연기를 안 좋게 봐주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스스로에게는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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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킬미 힐미’ 팬들이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에도 나서는 등 이례적인 행보도 있었다.
지성: 그 얘기를 듣고 정말 뿌듯했다. 나 또한 좋은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참여하고 싶다. 단 몇사람이라도 작품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줬다면 다행이다.Q. 연말 연기 대상을 노려볼 수도 있겠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성: 촬영하면서 아프고 힘들고 계속 울컥 눈물이 나고…. 그냥 좋았다. 연기대상감이라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내가 배우로 계속 존재해가고있구나라는 데 고마움을 느낀다. ‘킬미, 힐미’처럼 내가 진심을 담을 수 있는 작품을 계속 해 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Q. 극중 안요나가 사용했던 틴트가 완판 사례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성: 처음엔 어이가 없었다.(웃음) 물론 좋긴 한데, 난 여자가 아니니까…. 그런데 틴트는 내게 굉장히 중요한 무기였다. 뛰면서도 입술에 발라가면서 뛰었다. 입술 바르는 행위 자체가 나중엔 너무 자연스러워지더라. 업체에서 내게 틴트도 선물해주셔서 와이프에게 가져다줬다.

Q. 초반엔 캐스팅을 두고 여러 배우들이 거론됐었는데 무엇에 가장 끌렸나
지성: 이 작품이 나한테 제안되지 않았을 때 시놉시스와 대본을 우연히 보고 ‘나 시켜주면 잘할텐데’란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나한테 왔을땐 정말 뜬금없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감독님이 딱 10년전에 MBC ‘떨리는 가슴’ 한 회를 같이 촬영했는데 그 때 정말 좋은 기억이 있었고 가슴 따뜻하게 촬영한 기억이 있다. 감독님 덕분에 하게 됐다. OST 중 ‘제비꽃’이란 노래를 불렀는데 이 곡은 10년 전 감독님께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이 노래를 부르면 어떨까요?;하고 준비했던 곡이다. 그런 인연으로 이번에 부르게 되서 기쁘다.

Q. 6월이면 처음으로 아이 아빠가 된다.
지성: 빨리 되고 싶은데 시간이 안 간다.(웃음) 아기가 커가는게 눈으로 보이니 신기하다. 예정일이 6월말인데 그때 되면 또 한번의 눈물을 펑펑 쏟아낼것같은 기분이 든다.

Q. 아내 이보영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지성: 한번은 (이)보영씨가 요나가 나오는 장면을 직접 보고싶어해서 홍대에서 길거리 뛰는 장면을 보러 몰래 왔다. 한 세 시간 기다렸다가 촬영 들어가는데 그때 또 많은 분들이 오셔서 길위에서 구경하고 계셔서 좀 창피했었다.(웃음)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뛰나란 생각을 하다 ‘이건 연기야, 캐릭터에 집중해’란 생각으로 뛰었다. 나중에 그 모습을 본 보영씨가 ‘되게 즐거울줄 알았는데 눈물이 났다’고 하더라. 우리 가장이 여자 교복입고 저 길거리를 뛰어가는 모습을 보니 뭉클했다고. 그 다음부터 대우가 되게 좋아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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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30대 후반임에도 불구, 극중 스물 여덟 살 캐릭터를 무리 없이 해 냈다. 특히 10~20대 팬들도 많이 생긴 것으로 안다.
지성: 이번 드라마를 통해서 특이하게 아이돌이 아닌데도 아이돌급 대우를 받고 있다. 오리진 아역을 했던 친구가 저에게 ‘지성 오빠가 나아요 삼촌이 나아요?’ 라고 물어봐서 나도 모르게 “오빠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내가 또 언제 아이돌급 대우를 받아보겠나.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보내는 박수와 찬사니 두팔벌려서 감사하다.

Q. 작품에서 아동학대와 관련한 메시지가 진하게 묻어났다.
지성: 아동학대에 대한 부분은 아픈 마음으로 연기했다. 도현이 뭔가 잘못하면 옆에 있는 아이가 대신 맞았던 것이 마음을 울렸다. 아빠 앞에서 다른 아이가 맞는 걸 막아보려고 애쓰고 가슴아파했던 아이의 모습은 실제 같았다. 특히 아역 연기자들이 너무나 실제처럼 엉엉 울면서 ‘때리지 마세요’라고 하는데 보면서 눈물이 많이 났다. 아이들이 너무 실제처럼 연기하는 부분을 보며 ‘저런 기억을 안고 있으면 성인이 돼서도 잊혀지지 않을텐데’하는 생각에 그 장면 찍으면서 하염없이 울어 실신할 정도였다.

요즘 기사들 보면 안 좋은 일들도 많이 벌어지고, 어린이집 아동학대같은 사건도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가 아낌없이 사랑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 또한 어릴 때 아낌없이 사랑받고 자랐기 때문에 그 사랑을 전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드라마가 단순한 막장이 아닌 사람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주제를 다루다 보니 나 또한 우리 드라마에 자부심을 느낀다. 앞으로 드라마가 단순한 재미 위주가 아닌 이야기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으면 더 좋겠다.

Q. 여러모로 잘 된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면도 있을 것 같다.
지성: 한 가지 죄송한 마음이 드는 건 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어우러지는 드라마에서 이 작품의 경우 도현의 인격이 주가 되다 보니 다른 장면이 편집된 지점은 아쉽다. 동료분들이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작품에서 잘 놀 수 없었을 거다. 또 ‘지금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지?’란 생각에 무서운 마음도 든다. 시간이 지나서 너무 아플 수도 있고, 우울증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마음 느끼기엔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해야할 일이 많아 정신 똑바로 차리자고 생각하고 있다.

Q. 극중 오리진을 배려하는 차도현의 ‘매너손’도 커다란 화제였다. 어떻게 나왔나?
지성: 얘기하기 민망한 부분인데, 나에게는 당연한 거다. 어릴 적부터 길거리를 걸어도 어머니는 항상 안쪽에서 걸으시고 내가 차도쪽으로 걸었다. 어머니가 ‘여자는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가야한다’는 걸 가르쳐주셔서 내 기준에는 행동 하나하나가 몸에 배어 있었다. 근데 보영씨는 그런 걸 잘 모르더라. 방송화면을 보고 ‘나한테도 저렇게 해?’라고 묻기에 어이가 없었다.

Q. 촬영 중 몸이 아팠다고 들었는데
지성: 일단 강행군했었기 때문에 몸이 안 좋아졌었다. 17회에서 괴성 지르는 장면은 감정에 몰입하다 보니 목이 아예 잠겨 소리가 안 나오기도 했었다. 병원에 가서 약 먹고 주사 치료하고 긴급 조치를 받았다. 목이 돌아오기까지 하루가 걸리더라. 나 때문에 방송 펑크나는 건 아닌지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돌아와서 마감할 수 있었다.

텐아시아=장서윤 ciel@
사진제공. 나무액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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