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드레스 때문이다. 올해 청룡영화제는 영화보다 드레스가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천우희와 조여정이 같은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 위에 서는 사상 초유의 아찔한 순간으로. 청룡 안방마님 김혜수는 지난해 입었던 망사 드레스 발언으로. 그리고 초대받지 못한, 한 여배우가 ‘헐벗은 듯 헐벗지 않은 헐벗은’ 드레스로. 그렇게 그들 각자가 드레스가 영하 8도의 날씨를 후끈 데웠다.

언제부터인가 시상식/영화제 드레스는 ‘철지난 인기도 되살리는 신통방통한 묘약’이 됐다. 오랜 시간 인지도가 뜨뜻미지근했던 김소연이 섹시한 이미지의 배우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입은 파격 드레스 덕이었다. 김소연 스스로도 ‘내 인생은 바꾼 고마운 드레스’라고 밝힌 이 날의 ‘신의 한 수’로 김소연은 드라마 ‘아이리스’에 캐스팅 되는 등 배우로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올해 마마(MAMA) 무대에서 강소라는 39,000원 짜리 드레스를 입고 등장, ‘개념 배우’라는 환호를 받았다. ‘잘 고른 드레스’ 하나가 ‘잘 고른 작품’에 맞먹는 파급효과를 낸 셈이다.그렇다면 대중의 관심이 목마른 신인 여배우들은? 신예들에게 레드카펫 드레스는 자신의 이름 석자를 알리는 초고속 급행열차다. 호들갑스러운 플래시 세례는 신데렐라의 구두인 냥 효과를 발휘한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이 걸리는 순간, 무명 여배우는 화제의 인물로 급부상한다.

오인해, SBS ‘강심장’ 출연 당시

이 분야 원조는 오인혜다.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오인혜는 가슴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붉은색 원피스로 영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그해 영화제에서 오인혜는 언론의 인터뷰 러브콜을 가장 많이 받는 배우였다. 영화제가 끝난 후에도 크고 작은 행사에 초대받으며 꾸준히 TV에 노출됐고, SBS 인기예능 ‘강심장’에도 출연했다. ‘강심장’ 출연당시 오인혜는 “신인이다 보니 사진 하나라도 찍히고 싶었다”고 노출 드레스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악평에 시달리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독했지만 잘 했다. 고생했다”고 위로한 오인혜 아버지의 사연은 몇몇 ‘안티 팬’을 ‘팬’으로 돌려놓기도 했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랬을까’ ‘열정이 보인다’ 등의 격려가 뒤따랐다.이후 레드카펫에는 제2의 오인혜들이 속출했다. 가슴과 배 부분만 살짝 가리거나(배소은), 엉덩이 골을 드러낸(강한나) 여배우들이 등장했고 어김없이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다. 자극에 무뎌지는 대중을 눈높이에 맞춰 진화된 방법들도 등장했다. 여민정이 ‘낚시줄’ 드레스로, 한세아는 ‘밧줄’ 드레스로 시선을 끌었다. 왼쪽 어깨 끈이 흘러내리는 아찔한 상황을 맞은 여민정과 아슬아슬한 의상을 입고 포토월에서 ‘꽈당’ 넘어진 하나경의 경우, 퍼포먼스가 아니라 (부디) ‘사고’라 믿고 싶다.

올해 청룡영화제 논란의 중심에 선 노수람 역시 ‘신데렐라’ 되길 희망하며 등장했을 것이다. ‘노수람을 초청한 바 없다’는 청룡영화제의 공식 입장 속에, 그녀의 소속사는 “시상식에 초대받지 않고 레드카펫만 밟고 퇴장했다는 기사는 사실무근이다. 실제로 당사와 청룡영화상 측과 접촉한 바는 없다. 하지만 방송 업계 지인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가게 됐다”는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으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연예계의 비정한 현실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녀가 진짜 드러낸 것은 자신의 속살이 아니라,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의 속살인 셈이다. 무엇보다 씁쓸한 것은, 소속사가 ‘노출’을 자사 연예계 띄우기로 이용하려 하는 한, 신인여배우가 그것을 ‘열정’이란 이름으로 착각하는 한, 이러한 ‘살색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으리란 사실이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is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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