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을 만나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다. 출연 중인 드라마 ‘갑동이’ 촬영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기에 그의 일정엔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조차 없어 보였다. 사흘마다 나오는 촬영 스케줄은 어느 날은 하루 이틀 전에 공지되기도 해 과연 5월이 지나기 전에 그를 볼 수 있을까 싶었다. 소속사 관계자에 의하면 이준이 대본을 외우는 시간조차 부족하다고 했으니, 혹 이번 촬영이 그의 몰입 과정을 방해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보통 때라면 이런 염려는 거의 하지 않지만, 일상적인 인물이 아닌 사이코패스 역할을 만들어 가고 있었기에 마음이 쓰였다. 그의 스케줄이 허락하는 극적인 타이밍이 생겼다 하면 이쪽에서 맞지 않았던 일이 수차례. 그러던 어느 토요일, 여름이 온 건가 싶을 정도로 뜨거운 햇살이 눈 부셨던 이른 아침에 그를 만났다.
멀리서 꾸벅 인사를 하며 다가오던 그는 예상보다 더 남자다웠다. 영상을 통해서 볼 땐 날렵하고 섬세한 이미지가 강했는데, 실제로는 듬직한 어깨와 굵직하고 터프한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어 보일 땐 해사한 소년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양한 매력을 지닌 묘한 느낌의 배우였다. 뛰어난 연기력에 더해 이런 외형적인 조건이 그가 어떤 역할을 하든 극의 인물에 잘 녹아들 수 있도록 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그는 일전에 사진기자와 몇 번 만난 적이 있었기에 보자마자 “엇!” 하는 외마디를 내뱉으며 반가워했다. 덕분에 촬영은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촬영이 시작되었을 때, 의자에 앉은 그는 “어떻게 (꽃을) 들어야 예쁠까요?” 질문하더니 이렇게 저렇게 꽃의 위치를 바꿔보았다. 그리고는 ‘갑동이’ 속 류태오의 모습은 말끔히 지우고 청량감 가득한 주변 환경과 자신을 일치시킨 듯한 표정을 보였다. 맑고, 밝고, 명랑한 모습이 때아닌 더위를 날려줄 만큼 시원했다.
그는 사진기자가 요청하는 대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계속되는 요구에도 시종일관 미소를 띠며 임해준 덕분에 기분 좋은 웃음을 입안 가득 머금고 지켜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우와 정말 배우는 배우네요!”라는 말을 하게 되었고, 촬영하던 사진기자도 “이준 씨, 진짜 잘해요, 굿!”이라며 말을 거들었다. 연이은 칭찬에 카메라 렌즈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그가 몸을 휘청거리며 ‘으하하하하’ 기운차게 웃더니만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장소를 옮겨 걷는 장면을 찍을 때, 그는 사진기자의 말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며 어떻게 움직여야 할 지 꼼꼼하게 체크했다. 사진 촬영이었지만 그가 드라마나 영화 촬영 현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연기에 임할지 그림이 그려졌다. 그의 분석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촬영을 다 마친 뒤, 사진기자는 “이준에겐 동물적인 감각이 있다. 아무리 공부해도 안 되는 것, 이건 타고나는 거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배우로서의 본능도 지닌 그였다.
글. 이정화 lee@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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