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황후’의 타환으로 살았던 지창욱이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왔다
지창욱은 비로소 자신을 증명해내었다.MBC 사극 ‘기황후’ 전후 그는 달라진 것이 없을지라도 그의 주변은 많이 달라져있을 것이다. 신인시절부터 “언젠가는 보여주고 말테다”라는 마음을 품었었다는 그는 이제 그 자신을 믿어주는 세상에 벅차올랐다. 지창욱은 ‘기황후’ 속 타환을 포함해 지금까지 연기했던 모든 배역과의 만남을 앞두고 늘 찬반양론에 휩싸였었다고 고백했다. 그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해주는 이들도 있었으나, 팽팽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도 존재했기에 자신을 증명해내려고 이를 악물어야 했다. 하지만 배우가 된 이후 처음으로 단 한 번에 ‘OK, 같이 해보자’라는 말을 영화 ‘두포졸’ 강우석 감독을 통해 듣게 되었다는 지창욱. 이제 그는 책임과 사명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 표정에는 전에 없던 비장한 여유가 담겼다.
지창욱은 기민한 배우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상대의 응답 사이 호흡에까지 반응한다
Q. ‘기황후’로 인해 신뢰를 얻게 되었다. 개인에게 유독 특별한 캐릭터였을 것이다. 지창욱 : 사실은 유독이라기 보다, 할 때마다 모든 캐릭터에게 애정은 다 있다. 다만 그런 차이는 있다. 타환은 내가 했던 캐릭터 중에 유독 사랑를 받았고 주목받았던 캐릭터다. 기분이 좋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너무나 재미있게 촬영했던 역할이다. 보여줄 것도 많았고.
Q. 사실 타환 역에 다른 배우들의 이름이 거론이 됐었고, 처음에는 대중 뿐 아니라 드라마 내부에서도 지창욱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었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는 일종의 지창욱의 역전승이다. 어떤가. 현장에서 당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거나 그런 것을 느끼나.
지창욱 : 캐스팅 1순위가 아니었고 다른 배우가 하려고 하다가 시간적인 여건이 안 되어서 못했다고 들었다. 또 내가 캐스팅 된 것은 다른 배우들에 비해 굉장히 늦었던 때였는데, 그래서 타환의 행렬 장면까지 이미 촬영이 끝나 있었다. 배우가 없으니 바스타만 빼고 대역으로 찍은 거지. 모든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이 ‘과연 타환은 누가 될까 보자’하는 상황에 내가 들어간 거다. 어쩔 수 없이 눈치도 보이고 부담도 되고 그랬다. 처음부터 믿음을 얻지도 못했던 것 같다. 작가님이나 감독님이나 ‘과연 지창욱이라는 배우가 타환이라는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도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것을 떠나 타환이라는 캐릭터가 좋았다. 거기에만 집중 많이 했다. 물론 ‘내가 하는 것이 맞나’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주변 선배님들도 많이 도와주셨고 방송 이후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작가님께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촬영하다가 받았는데 ‘방송 재미있게 잘 봤고 캐릭터 잘 만들어준 것 같아 고맙다. 걱정 우려 많이 하기도 했고 반대도 했는데 해준 것에 대해 고맙다’라고 말씀해주시더라. 기분이 좋았다. 그 이후로 작가님도 감독님도 많이 믿어주셨다. 덕분에 마음껏 연기해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Q. 많은 이들이 믿어주지 않았던 상황에서 연기한 타환치고는 꽤 과감한 시도였다. 발성도 기존 사극과 완전히 달랐고, 이것은 다시 말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컸다는 의미로도 생각된다.
지창욱 : 처음에는 ‘과연 맞을까’ 의심하긴 했지만,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나를 믿고 갔다. 발성을 예로 들자면, 왕이고 사극이지만 실제 그 시대 사람들이 목소리 깔고 했을까라고 생각했다. 많은 군중들 앞에서야 마이크도 없었기 때문에 발성을 크게 냈어야 했겠지만, 승냥이(하지원)랑 토닥거릴 때는 아이처럼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방송은 보기 싫어서 안 본적도 있다. 스트레스 받을 바엔 안봐야겠다 할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누구나 다 열심히 하고 나 역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지만 대본 많이 보고 이번에는 유독 계산도 많이 필요했던 작품이기도 했다. 그런 것을 다 떠나서 재미있게 연기했다.
Q. 타환은 다양한 감정을 가진 인물이다. 연기하기 쉬운 캐릭터는 아니었을텐데, 무엇에 집중했나.
지창욱 : 타환을 연기하면서 큰 목적은 딱 하나, 승냥이에 대한 사랑이었다. 초반에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승냥이에 대한 사랑이 큰 것이라 후반부에는 그것만 생각했다. 뒤로 가면 갈수록 더 많이 생각했었다. 물론 캐릭터야 초반부에 확실하게 만들어놓고 들어가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 와중에도 목적은 짙어지는 승냥이에 대한 사랑이었고. 또 그런 생각도 했다. 타환은 등장부터가 유배였다. 쫓겨왔다는 것이다. 초반부터 수많은 암살시도를 당한다.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제대로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을까. 절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외로웠던 아이고 버려진 아이이고 고독했던 아이고 사랑을 받지 못했던 아이가 승냥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이 옳다고 믿고 행동을 하지만 그게 잘못된 방식인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무너진다. 하지만 죽기 전까지 정말 승냥이의 사랑만을 원했던 그런 캐릭터였다.
Q. 타환 뿐 아니라 승냥이나 왕유(주진모) 역시 자신의 사랑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모두가 불운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최후의 승자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지창욱 : 현장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결국은 모두의 비극이다. 타환이도 안쓰럽고 승냥이를 위해 죽어간 왕유마저도 안쓰럽고 두 남자의 사랑을 받았지만 혼자 남은 승냥이마저도 안쓰러웠다. 모두가 행복을 위해 누군가에게 해를 주고 빼았지만 결국 누가 행복해졌나. 결국에는 다 죽었다. 모두가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두고 걸어가는데 그 안에서 얼마나 더 가지기 위해 누구에게 피해를 주고 빼앗았는 것일까 생각했다. 결국에 죽는 것인데 그런 삶이 과연 행복할까라는 생각도 굉장히 많이 해봤다. 안타까웠다. 나라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창욱은 하지원을 어떤 순간에도 밝은 선배라고 기억한다고 말했다
Q. 비주얼이 이국적이다. 사극에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되다가도 타환이 원나라 사람이라서 오히려 이국적 느낌에는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교차하고. 이런 외모에 대해 캐스팅 단계에서 제작진이 이야기한 것은 없었나.지창욱 : 타환이가 외국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하지는 않았고, 제작진도 굳이 그쪽으로 생각하진 않은 것 같다.
Q. ‘기황후’는 역사왜곡 논란으로도 진통을 겪었다. 합류한 배우로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을텐데.
지창욱 : 그런 경험은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걱정도 많이 되었다. 제작발표회 할 때가 아직도 생각난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역사왜곡논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봤다. 과연 내가 이런 상황에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할까. 역사왜곡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져야하나 싶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당시에 ‘역사왜곡논란에 대해서 공인으로서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책임을 물으신다면 사실 할 말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기획부터가 기황후에서 모티브를 따 기황후를 둘러싼 두 남자, 세 명의 사랑이야기로 기획이 되어진 드라마고 픽션인터라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진짜 그 마음이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역사왜곡에 대해서 할 말이 없었다. 아닙니다라고 부정할 수 없고 죄송합니다라는 말 외에 변명하기가 싫었다. 분명한 것은 드라마였고 재미를 위해서 만든 것이었다는 것, 그래서 역할에만 더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타환을 더 재미있고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로 사실 현장에서는 걱정도 있지만 더 으?으?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첫 방송을 하고 시청자들이 굉장히 재미있게 봐주셔 다행이었다.Q. 하지원과 함께 작품을 했는데, 어떤 선배였고 어떤 영향을 받았나.
지창욱 : 밝고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원 누나는 내 기억 속에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으로 남아있다. 연기를 잘하는 것을 떠나서 항상 밝은 점이 와닿았다. 타이틀롤이라 촬영분량도 굉장히 많고 3~4일 밤새고 그래야 했는데, 여배우가 얼마나 피곤할까. 그런데도 진짜 참 밝았다. 현장에서 항상 웃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도 스태프들도 편하게 해줬다. 후배로서 너무 좋아보였나보다. 저건 참 배워야겠다 싶었지.
Q. 라이벌로 등장한 주진모와는.
지창욱 : 아쉽다. 정말 극중 왕유하고의 관계와 비슷하다. 타환과 왕유가 많이 붙지 않는다. 삼각관계인데 그러기 쉽지 않은데 거의 붙는 장면이 없어서 계속 엇갈렸다. 심지어 촬영을 같이 한 적도 많이 없었다. 가끔 현장에서 만나면, ‘드라마 잘 찍고 있냐’리고 할 정도였다. 주진모라는 선배와 많이 호흡 해보고 싶었는데 너무나 아쉬웠다.
지창욱을 신뢰한 두 연출가가 있다 이현직 PD와 강우석 감독이다
Q. ‘무사 백동수’ 당시 이현직 PD의 열렬한 지지로 캐스팅 된 것으로 안다. 누군가에게 그만큼의 신뢰를 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텐데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지창욱 : 이현직 감독님은 내게 스승같은 분이다. 이현직 감독님의 고집 때문에 캐스팅이 된 것이다. ‘지창욱이어야만 한다’고 하셨다. 너무나 감사하다. 누군가한테 믿음을 받는다는 것. 특히 배우가 연출에게 믿음을 얻는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였나.’백동수’ 때는 정말 뭣도 모르고 막 뛰어다니고 위험한지도 모르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좋아해주신 것 아닐까. 또 사실 그 당시 내가 열심히 안했으면 굉장히 눈치를 많이 보시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Q. 영화 ‘두포졸’에도 연이어 캐스팅된 상태다. 영화계의 절대남자, 강우석 감독과의 만남은 어땠나.
지창욱 : 캐스팅 당시 처음 만나뵀다. 시네마서비스 사무실에서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 했다. 같이 담배도 폈다. 이야기하다가 한 마디 하시더라. ‘커피 다 마시기 전에 너를 캐스팅할지 안 할지 결정할 것이다’라고. 30분도 채 안되어 하자고 하셨다. ‘내일 기사 뿌려!’ 이러시는데, 진짜 깜짝 놀랐다. 신인 때 그 사무실에서 오디션을 봤고 떨어진 기억도 있어 더 특별했다. 그때는 강우석 감독님은 뵙지도 못햇데 말이지. 믿음이라? 진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인데, 너무나도 행복한 일 아닌가.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신뢰를 받는 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일까. 그래서 물론 부담도 된다. 책임감 사명이 그렇게 생기는 것 같다.
Q. 자, 이제 신뢰받는 배우 지창욱, 캐릭터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욕심은 없나.
지창욱 : 극이 생긴 이후로 아예 새로운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새롭게 만드는 것이 더 관건이다. 이번에도 머릿속 황제에 대한 이미지를 아예 지웠다. 위엄있고 근엄하고 카리스마 있고 점잖게 이야기할 것 같은 그런 이미지를 지웠다. 다른 한 편 나약한 황제에 대한 이미지도 있는데 그조차 다 버렸다. 그래서 타환이 하면서 촐싹거리고 뛰어보고 용상에 앉아 다리도 꼬아보고 많은 것을 시도해보고 그런 것들이 또 재미로 다가왔다. 일탈 같은 느낌이었다. 학교로 가는데 버스를 타고 가다가 다른 것으로 새롭게 갈아타는 그런 느낌이었다.
지창욱이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개인적인 이야기를조금 털어놓았다
Q. 비뚤어진 사랑의 대명사, 타환을 통해 혹시 애정관에 변화는 생기지 않았을까. 지창욱 : ‘이러면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다. 사랑을 잘 모르는 타환이다. 표현할 줄도 모르고 쿨하지 못하다. 물론 자기 감정에 쿨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지원 누나하고도 그런 이야기 많이 했다. 정말 아이같은 남자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좋아해주시는 것을 보면 드라마 속 사랑은 역시 판타지인 것 같다. 기본적으로 극적이고 간절하고 애절하고. 과연 현실에서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판타지다. 그래서 시청자들이 더 재미있게 느끼고 열광하는 것 같다.
Q. 실제로 연애할 때는 어떤 남자인가.
지창욱 : 물론 나 역시 그렇게 쿨하지는 않지만, 집착을 하지도 않는다.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것을 좋아해서 항상 재미있으려고 하고 이야기하는 것 좋아해서 이야기하고 그런다. 무엇보다 말 통하는 사람이 너무 좋다. 하, 일만 하자니 나중에 나이 먹어서 후회할 것 같다. 어렸을 때 많이 놀고 즐기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처럼 연애와 일 중에 일을 선택하고 연애를 아예 안해야지 하면 과연 내가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을까, 내 젊은 시간에 배우로서도 많이 느낄 수 있게 연애를 좀 해야하지 않나 싶다. 그래야 나중에 나이 먹어서 행복한 삶을 살았어라는 생각이 들텐데 말이다. 물론 일을 하면서 연애를 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시간도 없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어렵다. 어려워.
Q. 실제 지창욱에 대해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평소의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지창욱 : 쉴 때는 그냥 친구들과 만나서 동네에서 커피 마시고 축구도 하고 평범한 사람이다. 단지 가끔 TV에 나오는 또 더 가끔 영화에 나오는 그런 사람일 뿐. 나도 일 걱정하고 여자도 만나고 싶고 돈 걱정도 하는 그런 남자다. 친구들도 다 평범하다. 회사 다니는 애들도 있고 취직 못해서 죽을려고 하는 애들, 밥먹고 과제 걱정하는 애들도 있고, 뭐할지 고민하는 애들도 있다. 주변이 다 평범한 것 같다.
Q. 군대 가기 전 목표는.
지창욱 : 이뤄놓고 가고 싶은 것을 생각하다보면 오히려 더 가기 싫어진다. 군대 가기 전에 무조건 이렇게 해야돼 누구처럼 어디 이상 위치에 있어야 돼라는 생각에 오히려 더 힘들었다. 지금은 즐겁게 작업하다가 군대를 계기로 쉬었다가 끝나면 와서 즐겁게 여유롭게 해야지하는 마음이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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