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용, 한두수, 박상도(왼쪽부터)
록밴드 써드스톤의 멤버들은 모두 인천 출신이다. 리더 박상도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인천에서 성장했고 베이스 한두수는 인천 주안, 드럼 안성용은 인천 강화도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인천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성장했지만 전혀 다른 환경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오다 한 배를 탄 이들의 음악여정을 자세하게 따라가 보자.리더 박상도는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에서 머슴까지 있었던 밀양박씨 양반가의 2남 중 장손으로 1981년 12월 19일 태어났다. 아버지는 음악과 상관없지만 귀티가 나는 멋쟁이였던 어머니는 결혼 전부터 라이브 카페의 통기타 가수로 활동했었다. 기골이 장대한 그의 외모은 외탁을 했다. “어린 시절 노래자랑대회에 나가시고 집에서도 변진섭 노래와 샹송, 해뜨는 집 같은 팝송을 듣고 전축 앞에서 노래를 녹음을 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저는 세상 모든 엄마들은 다 기타치고 노래하는 줄 알았습니다.”(박상도)
박상도 한샘유치원 웅변대회 출전 모습
서울 마장동에서 월계동으로 이사를 간 그는 유치원생 시절 웅변대회에서 수상을 했을 정도로 목소리가 크고 우렁찼다. 당시 그는 울보였단다. “어머니가 유치원에 저를 맡기고 가고나면 하루 종일 울었습니다. 친구랑 싸워 이겨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울음을 참지 못했던 생각이 납니다.”(박상도) 맞벌이를 했던 부모님은 일을 나가면서 준 500원으로 조립식 장난감을 사서 종일 만드는 놀이를 좋아했다. 부유했던 가정은 유치원 때 외가 쪽 친척의 가계수표 보증을 잘못 섰다 부도가 나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집에 경매스티커가 붙여지고 장롱에 딱지가 붙던 생각이 납니다. 그 후 아버지는 택시운전, 공사판 감독 같은 별별 일을 다 했지만 큰 고모, 작은 고모와 병원을 2개나 소유하신 자산가인 작은아버지의 도움으로 고생을 하지는 않았습니다.”(박상도)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아파트 단지 내에 있던 피아노와 미술학원에 2~3달 정도 다녔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해 중도에 그만두었다. “집안형편이 나빠지면서 어머니가 더 이상 500원을 주지 않아 조립장난감을 사지 못해 종이에다 직접 그린 로봇이 자동차로 변신하는 종이인형을 만들고 놀면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박상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인천 만수동으로 이사한 그는 드래곤볼 만화가 대유행할 때 친구들이 그의 그림을 500원에 사 코팅을 해 책받침으로 사용했을 정도로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박상도 성장기
그림 실력으로 획득한 우월감은 부진한 학업성적 탓에 열등감으로 변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시험을 보는 저에게 와서 답을 알려주더군요. 그래서 전교 4등을 했는데 학교에 자주 오셨던 어머니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친가에 가면 제가 평균 98점을 받아 전교 2등을 했다고 자랑하셨거든요. 근데 5학년이 되면서 선생님이 답을 가르쳐주지 않아 반에서 원래 제 자리인 67명 중 40등으로 추락했죠(웃음).”(박상도) 1994년 초등학교 6학년 때 동네에 있던 천냥 백화점에서 만원짜리 카세트 플레이어 ‘마이마이’를 동생이 사왔다. 리어카에서 팔았던 신승훈, 김건모, 노이즈, 김장훈 등 길보드 짬뽕 가요들을 이어폰 끼고 들으면서 난생 처음 자극을 주는 색다른 세계를 느꼈다.중학교 2학년 때 작은아버지의 도움으로 아버지는 인천 구월동에 치킨 집을 어머니는 만수동에서 라이브 카페를 운영했지만 다 망했다. 부모님이 돈 문제로 심하게 다투는 모습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그는 카페에서 장발의 통기타 가수나 트로트 가수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담배를 피우고 공연 후 기타 케이스를 들고 가는 뒷모습을 보며 측은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보다 그림을 잘 그리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과 어울렸지만 친구들은 우등반, 자신은 열등반으로 갈리면서 심한 열등감을 키웠다.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그래미상 후보들의 팝송과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가 수록된 카세트테이프를 빌려줬다. 그는 데스메탈 밴드 사혼의 드러머로 예명 크리스로 활동했다. 전교 1등 우등생 황원철은 넥스트 신해철, 전람회 김동률, 윤상, 토이, 유재하 같은 국내 가수들의 음악을 소개해 주면서 디지털 피아노로 김건모, 유희열, 김동률의 노래를 연주해 박상도는 기타보다 건반을 먼저 배웠다. “그 친구가 노래를 참 잘했어요. 그래서 저도 노래를 처음 불러봤는데 고음이 나오질 않아 힘들어 친구가 피아노치고 노래하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구경 만 했습니다.”(박상도) 노래방이 생겨났던 당시, 고음역대 부분에서 악을 썼던 그는 마이크를 번번이 친구들에게 넘겼고 멋있게 소화했던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중2때 노래를 만들어볼 생각으로 나우누리 PC통신 작곡 사이트에 들어가 모듈 포맷으로 작곡을 시작해 첫 창작곡 ‘헬로’를 만들었다. ‘헬로’, ‘드리머’ 같은 자작곡을 사이트에 올려봤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그러면서 테크노 음악과 카시오피아, 디스퀘어 같은 일본 밴드 음악을 접하면서 세상엔 참 다양한 음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것 같아 기분전환이 되었다. 친구가 “공부는 못해도 그림은 잘 그리니 예고에 가자”고 제안해 예고 진학 준비했지만 중3때 담임선생님이 “예고가 가면 날라리가 된다.”고 말려 인문고인 인천 학익고로 진학을 했다.(part3로 계속)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 박상도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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