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원, 제프 슈뢰더, 손희남, 라이언 그로스테폰, 박계완(왼쪽부터)
작년 가을, 스매싱 펌킨스의 기타리스트 제프 슈뢰더가 홍대 근처 상수동에 머무르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너바나, 펄 잼 등과 함께 90년대 미국 얼터너티브 록의 영광을 함께 한 스매싱 펌킨스. 1988년에 데뷔해 결성 25주년을 훌쩍 넘긴 거물 록밴드다. 제임스 이하의 뒤를 이어 스매싱 펌킨스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제프 슈뢰더는 리더 빌리 코건과 함께 팀을 이끌고 있다. 슈뢰더가 참여한 근작 ‘오세아니아(Oceania)’는 스매싱 펌킨스가 여전히 뜨거운 에너지를 가진 밴드라는 것을 알려준 작품으로 호평 받았다.제프 슈뢰더는 스매싱 펌킨스의 월드투어를 마치고 작년 8월 한국에 들어와 지금까지 체류 중이다. 제프 슈뢰더는 어머니가 재미교포로 풀 네임을 쓸 때에는 어머니의 성씨인 김을 함께 사용해 제프 ‘김’ 슈뢰더라고 한다. 제프는 록페스티벌을 직접 관람하고 홍대에서 한국 밴드 뮤지션들과 어울리며 상수동 주민으로 몇 달째 살고 있다. 홍대에 놀러 가면 제프 슈뢰더를 종종 보곤 했다. 그에게서 미국 유명 록 스타의 무게감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 뮤지션들 사이에서 오래된 친구처럼 자리하고 있었다.제프 슈뢰더는 최근 한국 밴드 아시안체어샷의 첫 정규앨범 프로듀싱 작업을 막 마쳤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아시안체어샷의 공연을 보고 반했던 제프는 그들과 친하게 지내며 우정을 쌓았다. 이후 아시안체어샷의 새 앨범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선뜻 프로듀서까지 맡게 된 것이다. 2013년 최고의 신인으로 떠오른 아시안체어샷의 첫 정규앨범 작업에 제프가 참여하게 된 것은 희소식이었다. 더구나 이러한 작업이 우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졌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제프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기 위해 스매싱 펌킨스의 전속 엔지니어인 라이언 그로스테폰까지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지난달 2일 내한한 라이언 그로스테폰은 약 2주간 아시안체어샷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앨범을 녹음했다. 제프는 프로듀서를 맡음과 동시에 연습 및 곡 작업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한글을 읽을 줄 알기에 보컬 디렉팅에도 문제가 없었으며 기타리스트 손희남에게는 자신의 기타와 이펙터도 빌려줬다. 막 작업을 마친 제프 슈뢰더, 라이언 그로스테폰, 아시안체어샷의 박계완(드럼), 손희남(기타), 황영원(보컬, 베이스)를 지난달 21일 카페 커먼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제프 슈뢰더는 언제 한국에 왔나?
제프 슈뢰더: 작년 8월경에 왔다. 스매싱 펌킨스의 마지막 아시아투어 공연지인 말레이시아 공연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다.
Q. 한국에 꽤 오래 머무르고 있다. 아시안체어샷의 프로듀서를 맡기 전에 한국 뮤지션들과 어울리며 함께 공연도 했다.
제프 슈뢰더: 한국에 온 것은 이번이 여섯 번째다. 예전에도 오래 머무른 적이 있다. 2002년에는 여름에 와서 석 달 정도 머무르며 한국말을 배웠다. 지금은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침 한국에 왔을 때 록페스티벌 시즌이라서 정말 많은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좋은 뮤지션들을 많이 만났다. 홍대 신에 좋은 밴드가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Q. 아시안체어샷의 프로듀서는 어떻게 맡게 됐나?
제프 슈뢰더: 아시안체어샷은 이번에 한국에 와서 가장 처음 본 밴드들 중 하나였다. 아시안체어샷은 다른 밴드들과는 다른 특별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친해지게 됐다. 일 관계로 아닌 친구로서 말이다. 이후 앨범을 작업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뜻 프로듀서로 참여하게 됐다. 내가 온전히 최선을 다 할 수 있다면 함께 작업해도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음악 작업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렇게 프로듀서까지 맞게 돼 정말 기쁘다.
Q. 스매싱 펌킨스의 전속 엔지니어 라이언 그로스테폰까지 불렀다.
제프 슈뢰더: 라이언과는 스매싱 펌킨스 앨범을 함께 작업하면서 손발이 잘 맞는 상태다. 음악에 대한 의사소통이 잘 되는 엔지니어다.
Q. 라이언 그로스테폰은 전에 한국에 온 적이 있나?
라이언 그로스테폰: 난 미국 밖으로 나온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 와 본 한국은 너무 좋은 곳이다. 특히 소주가 너무 좋다. 그리고 한국 여성들은 너무 아름답다. 한국음악은 싸이 정도밖에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시안체어샷의 음악은 기대 이상이었다. 함께 작업을 한 것이 자랑스럽다.Q. 제프는 아시안체어샷의 어떤 면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제프 슈뢰더: 아시안체어샷은 다양성(diversity) 가지고 있다. 헤비함, 사이키델릭, 서정성 등 각기 다른 감성들이 뒤섞여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로 뭉쳐져서 매우 강한 음악으로 다가온다. 좋은 밴드는 다양한 감성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아시안체었은 사운드, 액션, 모토 등 여러 가지가 다른 밴드들과 다르다. 트렌드를 따르기보다는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음악을 하는 것이 좋다.
Q. 아시안체어샷 멤버들은 프로듀서와 함께 일한 적 있나?
박계완: 프로듀서와 함께 일하는 것은 처음이다. 저번 EP ‘탈’은 우리가 직접 프로듀싱을 했다. 처음 제프가 프로듀서를 해준다고 했을 때 엄청 놀랐다. 진짜 해주는 거야?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정말 녹음 날짜가 나온 것이다. 정말 대박이었다.Q. 작업은 어땠나?
황영원: 제프 형과 라이언이 우리 음악에 대해 너무나 세세하게 알고 있어서 놀랐다. 너무 치밀하게 준비를 해 와서,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체크해줬다. 우리가 합주하던 곡을 녹음한 것을 듣는데 생각한 것보다 훨씬 좋아서 너무 신기했다.
손희남: 난 좀 놀랐다. 처음에는 의사소통이 잘 안 되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내가 연주를 하다가 어떤 부분이 조금 심심하거나, 뭔가 들어가면 멋지겠다고 생각을 하면 제프가 먼저 고치자고 이야기를 하더라. 언어가 안 통해도 음악은 통하더라. 정말 많이 배웠다.
Q. 라이언은 한국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것도 처음이다. 레드브릭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했는데 원하는 사운드가 나왔나?
라이언 그로스테폰: 스튜디오에서 우리가 원하는 장비들을 구해줘서 레코딩을 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한국 스태프들이 굉장히 열심히 도와줘서 무사히 녹음을 마칠 수 있었다.
Q. 2주 정도 작업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제프 슈뢰더: 기운이 떨어질 때에는 ‘봉봉’(음료)을 마셨다.
박계완: 제프가 봉봉 파인애플 맛을 정말 좋아한다. 스튜디오 옆 편의점에서 왜 봉봉이 잘 팔리는지 놀랄 정도로 많이 사다가 먹었다.
제프 슈뢰더: 땡스 투 봉봉!
아시안체어샷 공연 장면(사진제공 최규성)
Q. 총 9곡이 담긴 이번 앨범은 3월에 나온다. 아시안체어샷 멤버들은 어떤 결과물을 기대하는가?박계완: 사운드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이제 믹싱과 마스터링이 남아있다.
황영원: 다양한 스타일이 담겼다. EP에서 보여준 느낌도 있고, 록 외에 발라드도 있다.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앨범이 되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장르를 따로 가리려 하지 않았다. 힙합만 아니면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각각의 곡의 기승전결에도 큰 신경을 썼다.
Q. EP ‘탈’에 담긴 ‘소녀’, ‘반지하제왕’과 같은 곡을 이번 앨범에 넣고 싶은 생각 없었나?
황영원: 정규앨범은 EP와는 별개의 앨범으로 만들고 싶었다. EP에 담긴 곡들을 우리들이 너무나 좋아한다. EP ‘탈’은 독립된 하나의 작품으로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제프 슈뢰더: 기존 앨범에 실린 곡을 새 앨범에 다시 넣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 곡들은 그 나름대로의 느낌이 있다. 그것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시안체어샷은 이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Q. 작업을 할 때 제프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아시안체어샷 일동: (크게 웃으며)‘돈 퍽 잇 업!(Don’t fuck it up!(망치지 마!))’
Q. 일정이 촉박해서 작업이 타이트했을 것 같다.
제프 슈뢰더: 정말 쉬지 않고 했다. 스매싱 펌킨스의 경우 앨범 하나 당 보통 3~4개월을 녹음한다. 하지만 우리는 2주 안에 녹음을 다 끝내야 했으니까 정말 기진맥진할 정도로 작업했다.
손희남: 2주간 쉬지 않고 오전 12시부터 밤 9시까지 녹음을 했다. 스튜디오에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사실 우리에게 조금 이른 시간대였지만,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지 않았다. 매 순간이 설레고 즐거웠다.
황영원: 4곡은 이미 완성된 상황이었고 5곡은 합주를 통해 새로 다듬어나갔다. 제프가 합류하면서 곡들이 훨씬 좋아졌다.
박계완: 이번 녹음은 작업이라는 것을 떠나서 우리에게 정말 최고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Q. 라이언은 한국에 오자마자 작업실에만 들어가 있었을 텐데 힘들었겠다.
라이언 그로스테폰: 힘들진 않았다. 스매싱 펌킨스와 작업을 할 때에도 보통 하루에 10~14시간 정도 쉬지 않고 레코딩을 한다. 단련이 됐다.(웃음)
Q. 의도한 사운드가 나와 줬나?
제프 슈뢰더: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에 어떤 사운드를 의도하기보다는 순간순간 좋은 부분을 캐치하려 했다. 아시안체어샷 멤버들이 매 순간마다 창의력을 보여줘서 좋은 작업을 할 수 있었다.
Q. 아시안체어샷의 음악이 영미 권에서도 경쟁력이 있을까?
제프 슈뢰더: 미국, 유럽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놀라움을 줄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다. 아시안체어샷의 연주 스타일, 노래하는 창법 등이 유니크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록을 하지만 한국 밴드이기 때문에 사운드 면에서 특별한 점이 있다.
Q. 그렇다면 혹시 아시안체어샷이 스매싱펌킨스 월드투어에 오프닝 밴드로 서는 것을 기대해 봐도 될까?
제프 슈뢰더: 그렇게만 되면 난 정말 행복할거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 아시안체어샷은 나에겐 정말 특별한 팀이니까. 나의 친구, 형제와 같은 이들이다. 투어를 함께 가면 매일매일 재밌게 놀 수 있으니 좋겠다. 또 나도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 밴드를 소개하고 싶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음악 비즈니스라는 게 매우 복잡하다.(웃음)
Q. 제프 슈뢰더는 한국에 언제까지 머무르나?
제프 슈뢰더: 이제 곧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2~3월 정도에 스매싱 펌킨스의 새 앨범을 작업할 예정이다. 이번에 한국에 있으면서 너무 행복했다. 이 아름다운 추억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에 더 오래 있고 싶다.
Q. 한국의 무엇이 그렇게 좋던가?
제프 슈뢰더: 한국은 어머니의 나라다. 한국에 있으면 2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가까이 있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혼자 거리를 걸어 다니다 보면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 상수동에 머물고 있는데 이 동네에 뮤지션, 소설가 등 창조적인 아티스트들이 많다. 그들과도 좋은 만남을 가졌다. 소중한 경험이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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