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스틸

단언컨대, 훗날 2010년대 할리우드는 제니퍼 로렌스의 시대로 회자될 것이다. 물론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호흡을 맞춘 열다섯 살 연상남 브래들리 쿠퍼와의 ‘커플 놀이’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회사 사람, 전부와 잤어!”아주 태연하게 티파니는 팻에게 고백을 한다. 외로워서 11명과 잤고, 심지어 그 안에 여자도 있었단다. 다소 놀란 팻이 “기분이 어땠냐?”고 묻자, 아주 명쾌하게 “핫!”이라고 답한다. 신물이 날 정도로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를 봤지만, 이런 충격적인 장면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1989)이후로 처음이었다. 샐리(맥 라이언)가 해리(빌리 크리스탈)에게 가짜 오르가즘을 레스토랑에서 선사한 지, 23년 만의 일이었다.

상황을 다시 복기하면 이렇다. 팻에게 마음이 있는 티파니는 레스토랑에서의 만남을 일종의 데이트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데이트 현장에서, 지나칠 정도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자신의 남성편력을 모두 고백한다. 단 1초도 내숭을 떨지 않는다. 가운데 손가락을 뻣뻣하게 펴는 것은 기본이고, 스스로를 ‘미친 창녀 미망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이토록 솔직한 여성 캐릭터는 아마도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킴 캐트럴) 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티파니는 사만다처럼 느끼하지도 부담스럽지도 않다. “남자와 닥치는 대로 자는 바람에 쫓겨났다”고 외치는 여자가 어쩌면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분명 티파니가 그런 성적인 대사를 스크린에 마구 쏟아낼 때, 놀라운 전율이 일어났다. 생각해 보면 티파니는 능청스럽게 들이대는 캐릭터지만, 진정한 연애의 고수이기도 하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자신의 약점을 모두 밝히면서 은근히 주도권을 장악하고, 남자가 그 사실을 모조리 수용하게 만든다. 그건 바로 제니퍼 로렌스의 마법이었다.

영화 ‘윈터스 본’ 스틸
많은 이들이 제니퍼의 떡잎을 본 것은 ‘윈터스 본’(2010)이었다. 산골 마을의 소녀 리로 등장해 어린 동생을 돌보면서 사라진 아빠를 찾아나선다. 좀 뚱뚱하고 미운 오리처럼 생긴 그녀는 영화 내내 놀라운 뚝심을 발휘하면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상에 맞선 소녀의 사투가 무엇인지를 생생히 보여줬다. 그 놀라운 에너지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로 이어졌고, 아카데미 레드카펫도 처음 밟았다. 당시 여우주연상은 폭스의 물량공세를 내세운 나탈리 포트만(‘블랙 스완’)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2년 만에 두 번째 도전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으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도대체 예상이 불가능한 티파니 캐릭터의 매력과 1990년생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제니퍼의 완숙한 연기가 이끌어 낸 결과였지만, 아카데미 수상 제조기인 와인스타인 컴퍼니의 든든한 후원이 있었다.

기자 시사회에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를 보는 순간, 제니퍼의 수상 확률은 99%라고 장담했다. 할리우드에서 하비 와인스타인처럼 스타 만들기에 능한 인물도 없다. 그런데 그의 마음을 훔쳤다면 이미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물론 그녀는 그저 연기만 잘 하는 배우가 아니었다. 이미 ‘엑스 맨: 퍼스트 클래스’(2011)와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2012) 같은 블록버스터(프랜차이즈 무비)를 거치면서 스타로 한 뼘 성장했다. 십 대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던 그녀는 연기력과 흥행력(스타성)을 전부 갖추면서, 동갑내기 배우인 엠마 왓슨이나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아메리칸 허슬’,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스틸 이미지 (위 왼쪽부터 시계반향)
현재 2013년에 개봉한 제니퍼의 영화는 두 편이다. 미국에서 7월에 개봉한 ‘더 데블 유 노’는 레나 올린과 로자먼드 파이크의 영화다. 제니퍼는 로자먼드의 아역(어린 조이)을 맡았지만, 이 영화에서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완전 포기 상태에 이르면, 갑자기 슬쩍 나타났다가 유령처럼 사라진다. 아주 앳된 모습이다. 붉은 루즈를 바르고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롤리타다. 무척 도발적인 모습이었다. 이건 2007년에 촬영된 영화가 6년 만에 빛을 보는 특이한 경우라서 그렇다. 그러니 풋내기 제니퍼의 반항적인 모습(오, 10대!)이 담겨 있다. 또 한편은 미국과 달리 인기가 높지 않은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다. 그나마 속편이 국내에서 94만 명을 넘은 것은, 제니퍼의 팬이 좀 생겨난 덕분이었다.

주가가 계속 상승 중인 그녀는 화살 쏘는 캣니스로 ‘모킹제이’ 두 편을 더 선보이고,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미스틱으로 다시 돌아올 예정이다. 사실 서바이벌 게임의 최강자(혹은 혁명의 기수) 캣니스나 자유자재로 외형을 바꾸는 미스틱도 매력적이지만, 더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이미 후반 작업을 마친 ‘아메리칸 허슬’과 ‘세레나’다. 특히 주목할 사항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이어 2편이나 브래들리 쿠퍼와 호흡을 맞춘다는 점이다. 아직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제니퍼가 각각 연기할 로잘린과 세레나 캐릭터는 무척 흥미롭다. 전자는 금융사기꾼 어빙(크리스찬 베일)의 예측불가능한 아내고, 후자는 대공황기를 무대로 사업가 조지(브래들리 쿠퍼)의 아내로 등장한다. 국내 개봉은 아직 미정이지만, 극장에서 만날 기회가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대세녀 제니퍼는 기대도, 또한 기다림도 결코 저버리지 않으리라.

글. 전종혁 대중문화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 이은아 domino@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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