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소녀시대가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1만여명의 팬들 앞에서 ’2013 GIRLS’ GENERATION WORLD TOUR. Girls & Peace’로 공연을 펼쳤다. 한국 대만 인도네시아에 이어 싱가포르를 거친 소녀시대는 이제 홍콩 투어를 앞두고 있다. 한류 걸그룹의 선봉에 선 소녀시대. 그들을 그저 아름다운 소녀들로만 볼 수 있을까.

소녀시대는 사실 K-Pop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의 분기점이 되는 그룹이라고 평할 만하다. SM엔터테인먼트는 소녀시대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것은 소녀시대가 세상에 나오기 전과 후의 SM의 음악, 퍼포먼스의 제작, 나아가 프로모션 방식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SM엔터테인먼트는 자신들의 음악 퍼포먼스를 SMP(SM Music Performance)라고 말한다. 다른 기획사가 보기에 다소 오글거릴 수도 있는 이 표현이 대중에게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은 바로 소녀시대 덕분이다. 2007년 데뷔했을 때 마치 ‘여자 슈퍼주니어’와 같은 외양으로 눈길을 끌었던 소녀시대는 매 앨범마다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걸그룹의 트렌드를 리드했고, 나아가 기존에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퍼포먼스, 음악 스타일까지 들려줬다. 특히 무대에서 빛을 발했다.SM의 음악은 무대를 지향해왔다. 단순히 음악을 들려주기보다는 음악과 함께 다양한 퍼포먼스가 어우러지는 ‘버라이어티 쇼’적인 것에 누구보다도 강한 의지를 보여 왔다. 이 부분을 현실로 구현하는데 큰 공을 세운 것이 바로 아홉 명의 소녀들로 구성된 소녀시대다. 단순히 머릿수가 많아서 가능했던 것일까? 아홉 명을 넘는 인원의 걸그룹은 이전에 일본에도 많았다. 소녀시대가 특별한 것은 바로 ‘성장’이라는 키워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녀시대 역시 걸그룹의 미덕인 귀여움, 발랄함을 무기로 삼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브로드웨이 쇼를 소화할 만큼 고난이도 퍼포먼스를 펼치는 ‘무대 위 배우’로 돌변해 있었다. 이것은 ‘Gee’ 이전과 이후로 설명해볼 수 있다.

소녀들의 집합으로 눈길을 끌던 시대
2007년 ‘다시 만난 세계’로 대중들 앞에 처음 선을 보인 소녀시대에 대한 첫인상은 ‘굉장히 격렬한 춤을 추면서 노래하는 아홉 명의 소녀’였다. 초장부터 온 몸을 힘차게 휘저으며 등장했고, 노래 파트 중에도 춤을 쉬는 법이 없었다. 소녀시대는 SM이 기존에 신화 등을 통해 보여준 ‘칼 군무’를 소화하면서도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초유의 걸그룹이었다. 이는 엄청난 노력의 산물이었을 터. 다행히도 데뷔 후 약 두 달 뒤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SM의 수많은 히트곡을 작곡한 켄지가 만든 ‘다시 만난 세계’는 기존 S.E.S.에서 SM이 보여준 스타일에서 이어지는 대중에게 친숙한 어법의 음악이었다. 하지만 데뷔싱글에는 해외 작곡가들이 만든 ‘Beginning’과 같이 대중적이지만은 않은, 다소 낯선 곡도 포함돼 있었다.

소녀시대가 10대 팬들을 넘어서 일반인에게까지 지명도를 넓힌 것은 이승철의 ‘소녀시대’를 리메이크한 ‘소녀시대’부터였다. 곡의 완성도에 대한 호불호는 나뉘지만(이것은 빅뱅의 ‘붉은 노을’도 마찬가지), 소녀시대를 알린 곡임에는 분명하다. 이 곡이 담긴 첫 정규앨범 ‘소녀시대(Girls’ Generation)’에는 ‘Kissing You’, ‘Baby Baby’와 같이 사랑스러운 멜로디의 전형적인 걸그룹 넘버로도 인기를 얻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소녀시대의 퍼포먼스는 아홉 명이 똑같은 안무를 추는 일차원적인 퍼포먼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과거의 팬들에게는 ‘S.E.S. 곱하기 3’을 보는 듯했고, 이때까지 소녀시대는 이름 그대로 소녀의 이미지를 가지면서 여타 걸그룹보다 ‘예쁘고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걸그룹으로 인식됐다. 소녀시대만이 할 수 있는 퍼포먼스, 쇼 적인 부분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Gee’부터다.

‘Gee’는 노래 시작할 때 나오는 ‘My First Love Story’라는 내레이션처럼 소녀시대라는 고유의 브랜드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는데 크게 일조했다. ‘무엇이 그렇게 특별했는가’라고 묻는다면 ‘전부’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이트라이브가 만든 노래는 매 순간 펀치가 있을 만큼 강렬했다. 멤버들은 단순히 각자의 파트를 번갈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극을 하듯이 각자의 캐릭터를 발산하면서 노래했다. 이것이 안무로까지 이어지며 일차원적이었던 퍼포먼스는 곡에 내재된 상황을 보여주는 ‘쇼’적인 느낌을 내포하게 된다. 이러니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 이것은 기존의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걸그룹’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유의 이미지를 획득하게 되는 성과였다. 어떻게 이렇게 발랄하면서 드라마틱한 노래가 나올 수 있었을까? 소녀시대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일본의 걸그룹들과 차별화를 가져가게 된 것도 바로 ‘Gee’부터다.

새로운 시대를 보여준 소녀시대
SM은 사실 S.E.S 시절부터 퍼포먼스에 뮤지컬적인 요소를 접붙이기하려 시도했었다. 가령 S.E.S.가 컴백 스페셜에서 ‘달리기’를 노래할 때 커다란 봉지인형 속에 있다가 그것을 벗고 춤을 추는 퍼포먼스는 꽤 획기적인 무대였다.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기에는 보이밴드보다 걸그룹이 더 용이했다. 하지만 3인조라는 숫자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 세 배수인 9인조 소녀시대는 잘 만들기만 하면 못 할 것이 없는 조합. H.O.T.와 신화를 통해 칼군무의 개념을 정립하고 S.E.S를 통해 다각적인 무대 연출적인 실험을 했던 SM의 그 모든 노하우들은 소녀시대를 통해 하나로 만개하기에 이른다.‘Gee’ 이전까지 ‘소녀’였던 소녀시대는 이후 발표되는 ‘소원을 말해봐’부터 슬슬 소녀의 티를 벗게 된다. 여성 그룹으로써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소원을 말해봐’는 그때까지의 소녀시대의 콘셉트 중에 가장 섹시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단순히 야하다기보다는 멋지게 보일 수 있었다. 소녀시대의 무대 연출에 대한 기본기 덕분이었다. 정규 2집 ‘Oh’와 리패키지앨범 ‘Run Devil Run’부터는 슬슬 음악이 안드로메다로 가기 시작한다. 기존의 ‘귀여움 발랄함, 섹시함, 여전사’ 등의 걸그룹 공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닌, 고유의 패션을 선보였고, 이것이 파급력을 갖게 되면서 문화적인 영향력까지 행사하게 된 것. 이때부터 사람들은 소녀시대의 음악이 좋아서 듣는다기보다는, 어떤 새로운 것을 보여줄지 궁금해서 듣는 성향이 강해진다.

세 번째 미니앨범의 타이틀곡 ‘훗(Hoot)’은 3분대였던 기존 타이틀곡보다 조금 긴 4분을 넘어간 노래다. 스타일이 다른 두 개 이상의 곡을 접붙이기한 시도였고, 그에 따라 군무도 더욱 견고해졌다. 어쩌면 이 곡이 ‘I Got A Boy’의 프로토타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테디 라이리가 만든 ‘The Boys’는 미국 진출을 향한 일종의 선언문과 같은 노래. 이 노래는 기존에 비해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기보다는 소녀시대의 미국 버전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소녀시대는 미국, 일본의 트렌드와는 동떨어진 음악을 선보일 때 오히려 더 빛났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The Boys’를 대표작이라 할 수는 없다. 소녀시대의 결정체는 바로 올해 나온 정규 4집 타이틀곡 ‘I Got A Boy’였다.

‘I Got A Boy’는 소녀들의 수다로 시작해 여러 가지의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뮤지컬을 보는 듯한 곡이다. 이런 복잡하고 극적인 구성의 악곡은 기존에 서구의 프로그레시브 록에서나 시도되던 것이다. (물론 성격은 다르지만) 이러한 실험을 걸그룹의 음악에서 시도한다는 것은 정말 놀랠 노자였다. 더구나 소녀시대는 마니아를 대상으로 한 팀이 아닌 대중에게 널리 소비되던 팀이 아닌가? 이미지를 널리 확산시켜 소비돼야 하는 아이돌그룹으로써 ‘I Got A Boy’는 다분히 파격이었고 많은 논란을 낳기도 했다.

걸그룹의 신세계를 연 소녀시대는 이제 SM의 새로운 지향점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통로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소녀시대를 통해 선보인 SMP의 실험은 샤이니의 ‘Why So Serious? – The Misconceptions of Me’로 이어졌고 아크로바트를 연상케 하는 대담한 무대 연출은 엑소를 통해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노선이 계속해서 엄청난 팬덤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녀시대가 SM에게 준 선물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소녀시대의 다음은 어디일까?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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