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은 썰전인데, ‘액션 썰전’이다.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중동 BIFF 빌리지에서 ‘김지운, 류승완의 액션 썰전(부제:악마를 본 김지운과 류승완의 주먹이 온다)’이라는 주제로 김지운 감독과 류승완 감독의 오픈토크가 진행됐다. 제목은 ‘액션 썰전’이지만, 그냥 ‘썰전’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혀 설(舌)자에 싸울 전(戰)자(혀들의 전쟁)라는 의미의 ‘썰전’말이다. 충무로 입담꾼으로 유명한 두 감독은 시종일관 상대에 대한 비방과 꼬투리 잡기와 빈틈 공략하기로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공격은 류승완 감독이 시작했다. “자타공인 액션키드 류승완 감독 옆에서 깍두기 같은 역할을 하려고 한다. 썰렁 개그와 추임새 정도를 넣어서 얘기하겠다”는 김지운 감독의 말에 류승완 감독은 “깍두기 진행자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며 선글라스를 쓰고 무대에 오른 김지운 감독을 ‘디스’ 했다. 당하고만 있을 김지운 감독이 아니다. 해운대의 토요일 저녁을 수놓은 이들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액션영화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은 가지 않는다 VS 액션영화, 매체로서 순기능을 한다
류승완: 영화를 찍을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면 가지 말자’는 주의다.(웃음) 액션에서 내가 매료되는 지점은 율동감과 리듬감이다. 취향이 자꾸 바뀌는데, 정두홍 무술감독은 항상 ‘액션은 감정’이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난 요즘 ‘액션은 액션’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것이 보는 사람의 감정을 움직여야 한다고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현재로써는 액션을 이루는 테크닉보다 정서에 더 고민하고 있다. ‘수백발의 기관총보다 따귀 한 번이 폭발력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나한테는 정서적인 것들이 숙제다.
김지운: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대리체험을 한다. 폭력이란 것이 인간의 본성은 아니지만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규율과 법률을 우선시하는 우리사회는 이를 억압하는 경향이 있다. 폭력적인 영화가 사회 폭력을 야기한다고 하는데, 폭력이 노출된 사회의 반응물로서 영화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영화가 매체로서 순기능을 하는 것이다. 액션 영화가 그런 억압된 본능을 해소할 수 있는 매개가 된다고 생각 한다.
? 험난한 로케이션 촬영
화장실 때문에 짜증났다 VS 스턴트맨의 낙마사고류승완: ‘베를린’ 촬영 당시 화장실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다.(웃음) 동유럽은 대부분 공중 화장실이 유료다. 늘 동전을 챙겨야 해서 짜증이 났는데, 화장실도 많지 않아 애를 먹었다. 의사소통은 오히려 쉬웠다. 해외 스태프들 대부분이 독일인들이어서 그 사람들도 영어를 사용해야 했고 우리도 영어를 써야 했다. 서로 자국 언어를 쓰지 못하고 현장 용어들을 대충 섞어 썼다. 사실 스태프들이 나를 무시할까봐 큰 소리를 좀 쳤다.
김지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때가 생각난다. 정말 무식하게 찍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끔찍하다. 말 타는 사람들 뒤를 자동차가 쫓아가는 장면이 있었는데 낙마한 스턴트맨이 말들이 일으킨 모래 먼지 때문에 보이질 않았다. 자동차는 계속 달리고 있는데 앞에 있어야할 스턴트맨은 보이지 않고. 정말 아찔하고 위험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스턴트맨이 달리는 차량의 속도를 잘 계산해 큰 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
?한국과 할리우드 시스템
돌아버릴 뻔 했다 VS 나는 누군가, 여긴 또 어딘가
류승완: 한국 스태프들과 외국 스태프들의 마인드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내가 동유럽에서 촬영을 시작했을 때는 이미 현지에도 미국식 방식이 많이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우리와 함께 했던 팀이 영화 ‘발키리’를 했던 팀이었는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롭게 일하더라. 우리는 급해 죽겠는데 그들은 시간을 채워 일하고 큰 펑크만 없이 하면 된다는 마인드였다. 그걸 보는 내 마음은 답답해 미치는 거지. 슬픈 얘기인데 외국은 조합이 잘 정착돼 있다. 시간이 넘어가면 추가수당을 받으면 되니 여유롭게 찍는 거다. 반면 한국 스태프들은 작품당 계약을 하기 때문에 촬영 중인 작품을 빨리 끝내야 다음 계약을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작품 속도에 차이가 날 수 밖에. 하지만 해외 스태프들이 우리가 현장 편집하는 것을 보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현장 편집은 현재 전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활발하다. 그래서 ‘우린 이정도야’ 거들먹거렸던 기억이 난다.
김지운: LA 도착 순간부터 한국이 그리웠다. ‘나는 누군가, 여긴 또 어딘가’했다.(웃음) 할리우드에서 강렬한 경험들을 많이 했는데, 그 중에서도 스턴트에 관한 기억들은 안 좋은 기억들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다리 위에서 아놀드와 젊은 보스가 싸우는 장면을 찍을때였다. 촬영 막바지에 달해 시간이 촉박했는데 스턴트 배우가 보호 장비를 착용하느라 준비가 한참 걸렸다. 그래서 스턴트 배우를 투입했는데, 스턴트 배우도 보호 장비를 차야 한다며 시간을 잡아먹는 게 아닌가. 답답한 마음에 ‘이 정도만 구르면 된다’며 내가 직접 구르기 시범을 보이자, 스턴트 배우가 ‘되게 잘 구르신다’고 말하더라.(좌중폭소) 한국에서 정두홍 감독이 그러고 있었으면 소리 지르고 빨리 하라고 했을 텐데, 그런 것들이 그리웠다. 안전 문제를 소홀히 하거나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닌데,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뽑아내는 데 있어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미국이 워낙 책임사회이다보니 안전사고에 대한 강박이 강한 것 같다.? 상대방보다 내가 이건 더 낫다!
속도감 VS 우아함
류승완: 내가 김지운 감독보다 빨리 찍는다!(일동웃음)
김지운: 액션뿐만 아니라 모든 영화를 나보다 빨리 찍지 않나.(다시폭소) 류승완 감독 촬영장을 놀러간 적이 있는데 밥 먹고 다 갔다고 하더라. 그때 ‘류승완 어떡하려고 하나. 쟤 심각하다. 영화 인생 망조가 들었구나’라고 생각했다. 한 장면 한 장면 열심히 찍어도 모자를 판에 평균 촬영시간도 안채우고 밥 먹고 갔다는 이야길 듣고 놀랐다. 그런데 ‘부당거래’라는 멋진 영화를 만든 걸 보고 나도 빨리 찍어야하나, 생각했다.(웃음) 나만의 강점은 액션을 우아하게 찍는 게 아닌가 싶다. 내 액션이 더 우아하다.(웃음)
? 최근 인상 깊게 본 액션영화!
‘일대종사’ vs ‘와호장룡’류승완: ‘일대종사’ 액션을 폭력의 환상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 좋았다. 너무 매력적이었다.
김지운: ‘와호장룡’ 최근 작품은 아니지만 정말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액션영화는 화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와호장룡’이 그러한 편견을 깨줬다. 소리를 죽이고 스피드를 늦추는 등 시청각적 요소를 걷어내고도 훌륭한 액션 영화가 가능하다는 점이 놀라웠다.
? 액션 스타일!
뜨거운 액션 VS 차가운 액션
류승완: 김지운 감독에게서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유머다. ‘짝패’를 보면 주인공이 피를 흘리며 삐걱대는 지점이 있는데, 이는 김지운 감독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내게 액션은 결국 투쟁이다. ‘난 왜 이렇게 액션 장면을 길게 찍을까’ 생각하는데, 스스로 통제가 안 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폭력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아니면 액션 현장을 구경하고 싶은 욕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짧게 훅 지나쳐지지 않는다. 인간 류승완과 감독 류승완을 확실히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폭력이 난무했던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탓에, 온전하게 액션 감독으로서 일을 즐기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웃음) 그래서 그런가. 정두홍 무술감독이 나와 작업하는 것을 가장 힘들어하고 김지운 감독과 작업하는 것을 좋아한다.
김지운: 내 액션을 차가운 액션이고, 류승완 감독의 액션은 뜨거운 액션이다. 나는 액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거리를 유지하지만 류승완은 그렇지 않다. 다만 한 번도 관객들이 보지 못했던 액션 장면에 대한 욕심이 내게도 있다.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촬영 당시 플라잉캠을 쓰고 싶었는데 제작비가 모자라서 카메라맨이 플라잉맨이 됐다. 정두홍 감독이 카메라를 맨 채 와이어를 탄 거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매끄럽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런 터프함이 훨씬 더 현실적인 박진감을 보여준 것 같다. 이번 ‘더 엑스’ 역시 영화관 3면을 활용하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 기존 영화에서는 프레임을 벗어나면 사라지던 피사체들의 움직임을 담아낼 수 있었다? 김지운의 차기작
김지운: 원래 일본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인랑’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 촬영이 연기되면서 자연스럽게 할리우드 작품을 하게 됐다. 제안 받은 작품은 ‘카워드’다. 내가 잘하는 느와르 풍의 영화다. 시나리오를 보니 악인열전 같은 느낌이 든다. ‘블루 발렌타인’과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를 했던 프로듀서가 이 영화가 ‘달콤한 인생’과 ‘악마를 보았다’의 중간 성질의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내 개성과 스타일을 조금 더 반영할 수 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부산=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제공.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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