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애비뉴 Q’

아무리 한국영화 1억 명 관객 시대라고 해도, 추석 같은 명절에 매번 똑같은 멀티플렉스(영화관)로 향하는 것은 정말 지루한 일이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좀비 행렬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만큼 가족이 명절에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놀이가 없다는 뜻도 된다. 비용에 조금 무리가 가더라도, 이번 추석에는 뮤지컬을 보는 것은 어떨까? 해외에서 찾아온 두 편의 뮤지컬을 여러분께 추천한다. 답답한 마음을 뻥 뚫리게 만드는 뮤지컬이니 마음껏 기대해도 좋다. 물론 소셜커머스를 살펴보면 할인 혜택이 있으니, ‘정보가 힘’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곤란하다.

뮤지컬 ‘아메리칸 이디엇’
놀랍게도, 이 두 편의 뮤지컬은 욕을 참 잘한다. 정말 당돌하고 뻔뻔하다. 하나는 ‘suck’, 또 하나는 ‘fuck’을 쉴 새 없이 노래한다. 전자는 ‘애비뉴 Q’(샤롯데씨어터)이고, 후자는 ‘아메리칸 이디엇’(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이다. ‘애비뉴 Q’에 힐링의 감성이 충만하다면 ‘아메리칸 이디엇’은 팍스 아메리카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미국식 너드들을 위한 찬가다. ‘애비뉴 Q’는 사회를 풍자하는 성인용 퍼펫(인형) 뮤지컬이다. ‘세서미 스트릿’의 퍼펫들이 커서 루저가 되면 바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 15세 관람가지만, 섹스, 포르노, 동성애, 청년실업, 인종차별 등의 이슈(뜨거운 감자!)를 건드린다. 웬만하면 18세 관람가를 권장한다는 홍보사 측의 권유가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야동예찬가 트레키 몬스터 같은 ‘19금’ 캐릭터는 ‘사우스파크’의 욕쟁이 소년처럼 투덜거리지만 꽤 귀엽다. 무엇보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퍼펫과 혼연일체가 되는 연기가 압권이다. 깜찍한 퍼펫들이 “엿 같은 내 인생”이라고 직설적으로 노래하는 것처럼 ‘아메리칸 이디엇’의 젊은이들은 “거짓말뿐인 나라가 나를 믿어주지 않아!”라고 외치며 뭉크의 그림처럼 절규한다. ‘아메리칸 이디엇’은 캘리포니아 출신의 록밴드 그린데이의 동명 앨범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이다. 2010년 4월,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이 뮤지컬은 암울한 교외 지역에 사는 세 청년이 각자 다른 운명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으며, 9.11 사태 이후 미국 젊은이들의 불안과 혼란을 냉철하게 반영했다. 미국 정부에 던지는 비판과 청춘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모두 담고 있다.

수병의 키스, Alfred Eisenstaedt, 1945, (c) The Picture Collection Inc.

저녁에 뮤지컬 관람을 예약했다면, 그 전에는 역사가 담긴 사진전을 들려보자.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중인 ‘라이프 사진전’이다. ‘라이프’지는 당대 최고의 사진가들이 활동했고, 주간 판매량이 1,300만 부에 이를 만큼 절대적인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잡지다. 이들 최고의 사진가들이 남긴 900만 장의 사진 중 최고의 사진 130여 장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다. 유진 스미스가 전쟁 중 부상으로 생사의 기로에 있을 때 자신의 아이들을 찍은 ‘낙원으로 가는 길’이나 트렌치코트 깃을 세우고 담배를 문 채 비 내리는 타임스퀘어를 거니는 제임스 딘을 찍은 데니스 스탁의 사진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입맞춤을 담은 알프레드 아이젠슈테트의 ‘수병의 키스’도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알리는 소식을 들은 미 해병이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길을 지나던 간호사에게 키스를 한 장면을 기록한 사진이다. 라이프의 대표작이며, 아직도 이 사진 속의 주인공을 찾기 위한 노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마를린 먼로, 찰리 채플린의 사진에 더 시선을 빼앗겼다. 특히 고든 파크스가 1949년에 찍은 잉그리드 버그만의 사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스트롬볼리’ 촬영지에서 마을의 여인들이 호기심을 갖고 잉그리드를 바라보는 사진이다. 반면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게끔,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있어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에서는 ‘로버트 카파 100주년’ 사진전도 하고 있으니, 함께 구경하면 더욱 좋다.
책 ‘상상박물관’ 표지

연휴에는 조금 무거운 책을 권하고 싶다. 이탈리아 예술평론가 필리페 다베리오의 ‘상상 박물관’이다. 컬러 그림에 하드커버인 관계로 좀 무겁고 가격(5만4,000원)도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상상의 힘으로 서양 미술사를 재구성한다’는 놀라운 주장에 속는 셈치고 구입했다. 사실 이 그림들을 체험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일단 책장을 몇 장 넘기면 손을 뗄 수 가 없을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만의 이상적인 박물관(반지하가 있는 3층짜리 건물)을 구축하고 있다. 각 공간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 놓고 미술에 대한 지적 유희를 즐긴다. 물론 이 모든 공간은 그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상상하는 그림들로 채워져 있다. 안티카메라(중앙 홀의 대기실)부터 도서관, 침실, 부엌, 예배당 등에 이르는 다양한 상상의 공간을 답사하면서, 그림을 보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적어도 이 박물관에서 그림은 아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 맞다. 생각하는 방에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서재에 있는 성 히에로니무스’를 배치하고, 도서관에 카를 슈피츠베크의 ‘책벌레’를 걸어놓은 감식안은 멋지다. 개인적으로는 침실(주인의 방)에서 등장하는 마네의 ‘올랭피아’나 벨라스케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 쯤에 이르면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 책을 넘기고 싶어졌다. 언젠가부터 이런 식의 박물관은 칸디다 회퍼의 사진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상상 박물관’은 자유를 추구하도록 상상력을 자극한다. 때로는 이런 자극제가 필요하다.

글. 전종혁 대중문화 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 기명균 kikiki@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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