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론적으로 말해서, 90년대를 소환한 김예림이 다시 한 번 통했다

“전 어릴 적부터 그 분들의 음악을 좋아했으니까. 제 목소리에 딱 맞는 곡을 받아 부르는 것만으로 그 분들의 에너지를 전할 수 있다면 영광이에요. 그 분들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뿐이에요.”(텐아시아 인터뷰 中)

김예림의 신곡 ‘Voice’를 처음 들었을 때 유희열의 토이가 떠올랐다. 유희열은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이거 내 편곡 스타일인데?”라고 말하며 웃었다고 한다. 90년대 가요를 향유한 이들의 귀에 익숙할만한 김예림의 노래는 현재 온라인 음원차트에서 지드래곤, 카라, 엑소 등 정상급 아이돌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김예림은 새 앨범 발매를 앞두고 쟁쟁한 가수들이 컴백하는 것에 대해 자신과는 다른 스타일의 음악들이라서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정말 그녀의 말대로 된 셈이다. 이러한 특별한 인기는 ‘슈퍼스타K’ 출신이라는 프랜차이즈 때문일까? 아니면 음악에 담긴 90년대 감성 때문일까? 아니면 제3의 무엇 때문일까? 결과론적으로 말하면, 김예림의 목소리와 90년대 가요 감성 사이의 화학작용 때문일 것이다.

김예림의 새 앨범 ‘Her Voice’를 채우고 있는 감성은 90년대 풍의 가요다. 참여한 작곡가들의 면면부터 그렇다. 총괄 프로듀서인 윤종신을 비롯해 김광진, 고찬용, 김창기, 이규호 등 90년대부터 활동한 중견 작곡가들이 참여했다. 고찬용은 가수 이소라가 몸담았던 ‘한국의 맨하탄 트랜스퍼’ 낯선 사람들의 리더 출신으로 작년에 솔로 2집 ‘Look Back’을 발표했다. 김예림은 ‘슈퍼스타K’ 경연 당시 낯선 사람들의 곡을 커버하기도 했다. 김창기는 故김광석이 함께 했던 80~90년대 대학생들의 감수성을 대변한 밴드 동물원 출신으로 올해 솔로 2집 ‘내 머리 속의 가시’를 발표한 바 있다. 한편 김광진이 더 클래식으로 ‘마법의 성’을 발표한 1994년은 김예림이 태어난 해다. 세월의 간극이 적지 않다. 오랜만에 현역으로 복귀한 90년대 대표 작곡가들이 김예림과 작업을 한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 더 놀라운 사실은 90년대의 옷을 입은 김예림이 낯설기는커녕 친숙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김예림은 지난 앨범 ‘A Voice’에서도 90년대부터 작곡가로 활약했던 윤종신, 이규호의 노래를 불렀다. ‘A Voice’에서는 조휴일(검정치마), 신재평(페퍼톤스), 정준일(메이트) 등 최신 트랜드의 비중이 컸다. 요즘 각광받는 스타일의 노래들은 김예림과 잘 어울렸고, 결과적으로 김예림의 목소리를 대중에게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투개월’이란 수식어를 떠올리지 않아도 됐으니 말이다. 때문에 새 앨범에서도 대중에게 익숙한 트렌디한 곡을 선보이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런데 웬걸? ‘Her Voice’에 담긴 ‘Voice’, ‘Drunken Shrimp’, ‘언제 진실이 중요했던 적 있었니’ 등은 전형적인 90년대 풍의 가요들이다. 처음 작곡가들의 이름을 봤을 때에는 이들이 김예림에게 맞춤형 노래를 만들지 않을까 예상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각각의 곡에는 작곡가들이 지닌 본래의 개성이 잘 나타난다. 가령 ‘언제 진실이 중요했던 적 있었니’에는 고찬용 특유의 재즈를 차용한 세련된 편곡이 잘 살아있다. 이러한 나름의 고집은 김예림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있다.


요즘의 어린 여가수가 90년대 대표적인 작곡가들과 함께 작업했던 사례는 전에도 있었다. 2011년에 나온 아이유의 ‘Last Fantasy’가 그것. 김광진, 윤상, 정재형, 이적, 김형석, 정석원, 김현철, 윤종신을 비롯해 영국 팝스타 코린 베일리 래까지 참여한 초유의 프로젝트였다. 당시로서는 ‘국민여동생’ 아이유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아이유는 그들의 곡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나름의 소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김예림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윤종신은 2010년부터 자신과 자신 주변 작곡가들의 곡을 매달 선보이는 ‘월간 윤종신’을 통해서 90년대 감수성(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또 잘 하는)의 음악을 꾸준히 선보이며 고군분투해왔다. 곡들은 좋았지만, 그 음악들이 ‘슈퍼스타K’ 등 외부적인 힘을 빌리지 않고 차트에서 아이돌가수와 인기를 나란히 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노래들이 ‘김예림의 목소리’를 통하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90년대를 소환한 김예림과 윤종신의 찰떡궁합. 김예림을 재발견해가고 있는 프로듀서 윤종신은 지금 얼마나 뿌듯할까?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미스틱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