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적과의 동침’ 기자간담회 현장 여운혁 CP, 유정현, 김영환, 김성태, 김구라(왼쪽부터)
정치와 예능. 종합편성채널 JTBC ‘적과의 동침’은 서로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두 단어의 기묘한 조합을 꿈꾼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김구라와 전 국회의원을 지낸 유정현이 MC를 맡는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새누리당 김무성, 남경필, 김성태 등의 의원과 민주당의 박지원, 우윤근, 김영환 의원 등 여·야 간판 의원들이 출연한다는 사실이 더욱 눈길을 끈다.오는 16일 오후 11시 첫 방송을 앞둔 ‘적과의 동침’은 퀴즈와 토크를 통해 그동안 공개된 적이 없었던 정치인들의 인간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정치인’이 아닌 ‘인간’으로서 그들을 바라보며 대중과 정치의 간극을 좁히겠다는 의도다. 이를 반영하듯 프로그램은 ‘민심 퀴즈쇼 왕정치’, ‘정치 백치 스피드 퀴즈’, ‘여의도 먹방-권력의 맛’ 등의 코너를 통해 웃음과 의미라는 두 마리 토끼의 동시 포획을 노린다.정치와 예능의 기묘한 균형 잡기는 민심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9일 오후 서울 중구 순화동 JTBC 호암아트홀에서 ‘적과의 동침’의 두 MC와 여운혁 CP, 방현영 PD, 그리고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과 민주당 김영환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그 가능성을 점쳐봤다.
Q. ‘적과의 동침’에 현 국회의원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점이 새롭다. 프로그램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가.
여운혁 CP: ‘썰전’의 강용석, 전 국회의원인 유정현을 보면서 ‘정치인이라고 해도 일반인과 별다른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적과의 동침’을 통해서 갑옷을 벗고 무장해제된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이 일하고 생각하는 일상적인 모습을 통해 그들이 시민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보여주려는 의도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김구라: 최근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으면서 정치계 인사들을 많이 접했고, 그들의 외면에 드러나는 근엄함 뒤에 유머러스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정치인을 떠나 그들의 인간 본연의 모습을 ‘적과의 동침’을 통해 끄집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JTBC ‘적과의 동침’ 기자간담회 현장의 김구라
Q. 전직 국회의원 출신의 유정현은 ‘적과의 동침’을 통해 오랜만에 시청자를 만나게 됐다.유정현: 국회의원 낙선 이후 일 년만 쉬자 마음먹었는데 결과적으로 좀 더 쉬게 됐다. 국회의원 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데 열심히 하려고 한다 해도 욕을 많이 먹게 된다(웃음). ‘적과의 동침’으로 국회의원들의 생활을 좀 더 보여주는데 일조하고 싶다.
Q. 정치계가 대중과 접점을 찾는 방법으로 예능 출연을 택한 것은 위험부담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출연 결정이 쉽지는 않았을 듯한데.
김영환 의원: 솔직히 방송에 출연하면 인지도가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녹화하고 보니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기존의 이미지를 버리고 삼류가 될 필요가 있겠더라(웃음). ‘적과의 동침’에 출연하는 것에는 가능성과 위험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김성태 의원: 프로그램을 보시면 알겠지만, 정치권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출연했다. 방송이라는 점에서 부담도 됐지만, 정치계가 어느 영역이든 가리지 않고 대중과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연을 결정했다.
Q. 예능프로그램의 특성상 일정 부분 출연진을 미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정치인이 된다면 위험하지 않나.
여운혁 CP: 물론 미화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예능프로그램의 특성상 단점은 감출 수 있더라도 장점이 없으면 당사자가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출연진들이 열심히 해주리라 믿고 있다(웃음).
김구라: 사실 정치인들이 출연진의 대부분이지만, 정작 방송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거의 안 한다. 출연진은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을 즐기러 나온 것이라 보시면 된다.
JTBC ‘적과의 동침’ 기자간담회 현장의 여운혁 CP
Q.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방송에 출연하는 게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여운혁 CP: 연예인들과 달리 정치인들은 살아온 과정이 험난해서인지 게임을 할 때도 승부욕이 대단하다. 또 보통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하면서 쉬는 시간을 주면 연예인들은 삼십 분씩 쉬는데 정치인들은 7분 안에 착석하더라(웃음). 그만큼 방송에 임하는 자세가 의욕적이다. 굳이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생각하고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 정치인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던 이미지가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실 거다.
Q. 최근 ‘썰전’을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처럼 정치를 예능으로 풀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여운혁 CP: 프로그램을 할 때는 내가 일식집 사장이 됐다고 생각한다. 연예인이 광어라면 정치인은 도다리다(웃음). 하지만 도다리도 제철에는 맛이 좋고, 값도 더 비싸다. 광어 없이 도다리로도 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방현영 PD: 분명 요즘처럼 어려운 시국에 정치인들을 희화화하거나 그들이 웃고 즐기는 것을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부터 갖고 있던 생각은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재미가 있고 유머가 있어야 그 말을 더 듣게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예능 PD의 입장에서 ‘적과의 동침’에 출연한 정치인들은 일반인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들의 유머러스함을 드러난다면 그들의 말도 이전보다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거다.Q. 김구라는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에서 MC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를 섭외한 이유가 있는가.
여운혁 CP: 김구라의 재능은 게스트를 발가벗기는 거다. 하지만 중요한 부분은 가려주고 보호해준다. 예능프로그램을 통해서 60년 이상 계속되어온 여·야 간의 싸움을 중재하겠다는 것은 건방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여·야 의원들이 총은 든 모습이 아니라 서로 소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서는 김구라가 탁월한 능력이 있다.
JTBC ‘적과의 동침’ 기자간담회 현장의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왼쪽), 민주당 김영환 의원
Q. ‘적과의 동침’에 출연하는 국회의원들에게는 또 프로그램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겠다.김성태 의원: ‘적과의 동침’이 정치적인 느낌으로만 표현된다면 이 프로그램은 곧 문을 닫게 될 거다(웃음). ‘죽어야 산다, 망가져야 산다’는 마음으로 ‘적과의 동침’에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 나 스스로 새누리당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던져버리고 사람 냄새나는 순수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알고 보면 정치인들만큼 순진한 사람들이 없다(웃음). 우리는 여기에 출연하면서 결과를 따지지 않고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있다.
김영환: 정치인들은 한창 싸우고 있는데 ‘왜 국민들은 예능프로그램, 류현진, 추신수를 보러 갈까’하는 고민이 깊었다. 국민들이 정치인의 참모습을 몰라봐 주신다고 생각한다. 물론 국민이 정치를 볼 때 느끼는 괴리감이 있기에 정치를 싫어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정치가 무너지고 국민이 정치와 유리되면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 ‘적과의 동침’이 왜 국민과 정치가 멀어졌는지를 고민하고, 정치인이 자세를 낮춰서 국민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듣는 소통의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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