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프트베르크, 텔레비전, 큐어,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가 한국에 오다니.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한 공연 기획자의 말이다. 올해 들어 음악페스티벌과 내한공연이 폭발하다시피 늘어나고 있다. 페스티벌은 4월부터 6월까지 무려 10개 이상의 페스티벌이 열린다. 석가탄신일부터 주말로 이어지는 연휴에만 ‘서울 재즈 페스티벌’, ‘자라섬 리듬 앤 바비큐 페스티벌’, ‘그린플러그드 서울 2013’ 무려 세 개의 페스티벌과 제이슨 므라즈의 내한공연이 몰려 있다. 이 정도면 가히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올해 페스티벌과 내한공연이 작년과 다른 특징이 있다면 마니악한 뮤지션들이 대거 눈에 띈다는 점이다. 올 초부터 비치 하우스, 더티 프로젝터스, 디 오 시스 등 해외 인디밴드들이 한국을 꾸준히 찾고 있다. 본래 페스티벌과 내한공연은 국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뮤지션을 위주로 라인업을 짜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앞으로 크라프트베르크, 텔레비전, 큐어,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 등 해외에서는 최고의 아티스트들로 각광받지만,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다소 낮은 뮤지션들이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소수의 마니아들은 쌍수를 들고 반기고 있지만, 다수의 일반인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만하다. 하지만 이들 내한 아티스트들은 나름대로 관객 유치를 위한 ‘비기’를 가지고 있다.
크라프트베르크는 4월 27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서문주차장 돔 스테이지에서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1970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결성된 크라프트베르크는 일렉트로니카 음악계에서 전설적인 존재로 추앙받고 있다. 이들은 70년대부터 일찍이 실험적인 전자음악을 선보이며 이후 등장하는 신스팝, 일렉트로니카 테크노 계열의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최근에도 세계적인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 ‘코첼라 페스티벌’에 서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현대카드가 주최하는 크라프트베르크의 내한공연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이지만 국내에서 인지도가 낮은 탓에 애초에 집객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뚜껑을 여니 결과는 반대였다. 주최 측 관계자는 “크라프트베르크는 국내 음반 판매량을 본다면 절대 섭외해서는 안 되는 아티스트이지만 현재 티켓 판매량이 우리의 기대치를 넘어서서 매진에 가까운 성적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크라프트베르크의 공연은 3D 테크놀로지를 공연에 도입해 음악과 함께 환상적인 영상을 동시에 선사하는 첨단의 무대로 꾸며진다. 관계자는“사실 이제 어떤 유명 아티스트가 와도 신기하지 않은 분위기다. 크라프트베르크의 선전은 단순히 음악을 넘어서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고 싶은 대중의 욕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뉴욕 펑크록의 전설 ‘텔레비전’은 5월 12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한국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과 함께 합동공연을 갖는다. 텔레비전이 한국을 찾는 것은 이번이 처음. 70년대 초반 이제는 전설이 된 뉴욕의 라이브클럽 CBGB에 텔레비전, 라몬스, 패티 스미스 등 개성 있는 뮤지션들이 모여들었다. 그 중에서도 텔레비전의 리더 톰 벌레인은 당시 뉴욕 펑크록의 열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텔레비전은 단순한 펑크록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흔히 ‘아트 펑크록’으로 평가된다.
텔레비전의 한국 공연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러브콜로 성사됐다. 톰 벌레인은 지난 2009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 패티 스미스의 밴드로 내한했을 때 무대 뒤에서 장기하와 얼굴들과 마주쳤다. 장기하는 “당시 톰 벌레인이 우리의 공연을 보고 ‘록시 뮤직을 떠올리게 한다(Sound like Roxy Music)’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텔레비전은 국내에서 소수의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는 밴드이지만 장기하와 얼굴들과 합동공연을 통해 더 많은 일반 팬들을 만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기하는 “텔레비전이 국내에 인지도는 낮지만 굉장히 훌륭한 음악을 하는 밴드다. 우리를 좋아하는 팬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텔레비전의 음악을 알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5월 17일과 18일 경기도 가평 자라섬에서 열리는 ‘자라섬 리듬 앤 바비큐 페스티벌’에는 베니 골슨, 로버트 글래스퍼 등 최고의 재즈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오른다. ‘자라섬 리듬 앤 바비큐 페스티벌’(이하 자라섬 R&B)을 찾는다.
가을에 열리는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의 봄 버전인 ‘자라섬 리듬 앤 바비큐 페스티벌’은 잔디밭에서 바비큐를 구우며 재즈 공연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축제다. 눈길을 끄는 것은 훌륭한 라인업이다. 재즈의 역사를 관통하는 거장 베니 골슨, 올해 그래미상을 수상한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 등 정상급 아티스트들이 오기 때문이다. 올해로 84세인 베니 골슨은 아트 블레이키 재즈 메신저스, 디지 길레스피 등과 함께 활동하며 비밥, 하드밥의 융성기를 다진 인물.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는 제55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앨범 로 ‘최우수 R&B 앨범 상’을 수상했다.
자라섬사무국의 계명국 사무국장은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는 현재 미국 재즈계에서 손꼽히는 라이징 스타다. 바비큐와 함께 재즈를 만나는 페스티벌이지만 당연히 음악에 힘을 실어야하기 때문에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를 헤드라이너로 세우게 됐다”고 말했다. 로버트 글래스퍼의 음악은 일반인들에게 낯설지만 바비큐가 완충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계명국 국장은 “자라섬에 오면 모르는 아티스트를 알고 가는 즐거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적이기보다는 음악적으로 훌륭한 아티스트를 데려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7월 26일부터 28일까지 안산시 대부도 바다향기테마파크에서 열리는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는 현재 큐어, 나인 인치 네일스 등이 해외 아티스트가 라인업으로 확정된 상태다. 첫 내한공연을 갖는 큐어는 1979년 정규 1집 발매 후 지금까지 10장이 넘는 앨범을 발표하며 영국 고딕 록의 살아 있는 전설로 군림하고 있다. 큐어는 특유의 어둡고 섹시한 음악으로 영국 후배 록밴드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이외에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는 나인 인치 네일스, 펀, 더 엑스엑스, 코히드 앤 캠브리아, 포올즈, 헐츠 등 마니악한 뮤지션을 섭외해 눈길을 끈다. 이 밴드들 역시 실력을 검증받은 팀들이지만 국내에서 인지도는 높지 않다. 이에 대해 CJ E&M 관계자는 “‘밸리 록 페스티벌’은 이미 대중들에게 친숙한 페스티벌로 자리 잡았다”며 “올해 라인업이 다소 대중들에게 낯설 수 있지만 음악성 있는 뮤지션들을 국내에 소개한다는 차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사진제공. 현대카드, 김밥레코즈, 자라섬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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