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는 한 때 ‘한물갔다’는 평을 들었다. 20년간 몸담았던 MBC를 떠나야만 했고, 타 방송국에서의 성적도 신통치 않았다. 위기의 순간 그는 KBS2 , SBS 등을 통해 다시금 일어섰다. ‘버럭’과 ‘호통’은 물론 데뷔 30년차 개그맨의 ‘여유’와 ‘힐링’까지 품었다. 최근 에 출연했던 강우석 감독은 다시금 일어서는 이경규를 보면서 자신의 멘토로 생각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영화판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이경규의 오랜 꿈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오래전부터 영화를 향한 남다른 애착을 보여 왔던 그다. 1990년대 초반 등으로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이경규는 감독 각본 주연 기획 등을 도맡아 영화 (1992)을 세상에 내놨다. 섣부른 도전의 결과는 참패. 스스로도 ‘자뻑’으로 만든 것이라고.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2007년, 제작자로 영화 를 개봉시켰다. 가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게 되면서 이경규 역시 영화 제작자로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또 망하려고 영화하나’란 부정적인 시선도 어느 정도 이겨냈다. 그리고 개봉으로부터 6년이 지난 2013년 5월, 이경규는 영화 을 들고 다시 한번 대중의 심판대에 섰다. 때와 달리 전면에 나서 영화 알리기에 적극적인 이경규, 그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영화들’을 추천했다.



1. 사람의 아들
1980년 | 유현목이경규: 유현목 감독님은 대학시절 교수님이었다. 재학시절 감독님께서 이문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을 찍었는데 개봉 전 시사회를 통해 교수님과 함께 봤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등 종교 관련된 영화가 많았는데 을 보고 나서 유현목 감독님께 “지금까지 본 종교 영화 중 최고의 종교 영화”라고 말씀드리기도 했다. 그 말에 굉장히 즐거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개인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굉장히 좋은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설명: 지난 2009년 8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유현목 감독은 1955년 로 데뷔한 뒤 총 43편의 영화를 내놓은, 1960~70년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 중 한 명이다. 한국적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명작 (1961)으로 유명하며, 1976년부터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로 재직해 1990년 정년퇴임했다. (1981)은 정통적인 기독교 신을 부정하고, 구도자의 길을 찾아 나선 해방 신학 추종자의 고행과 파국을 그린 작품으로 하명중, 이순재, 강태기, 최불암 등이 주연을 맡았다. 제1회 영평상 작품상, 제19회 대종상 최우수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2. 그랜 토리노
2009년 |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경규: 아주 작은 이야기를 가지고, 소소하게 잘 풀어냈다. 굉장히 서민적인 이야기지만 굉장히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미국 사회의 문제점도 적절히 녹아나 있다. 무엇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기가 아주 돋보였다.

영화설명: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제작, 감독, 주연까지 도맡은 작품으로 ‘노장의 힘’, ‘연륜의 파워’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당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마지막 출연작이란 소식이 더해지면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이후 자신의 오랜 영화적 동지인 로버트 로렌조와의 인연으로 (2012)에 출연했다). 이전에도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았던 그는 한층 더 완숙하고, 농익은 연출력으로 진정한 ‘거장 감독’으로서 가치를 드높였다. 배우로서도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여 전미 비평가협회 선정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3. 파이란
2001년 | 송해성

이경규: 잘 알다시피 주연을 맡은 최민식 씨가 대학교 후배다. 그래서인지 최민식 씨가 출연한 영화를 다 좋아한다. 그 중 한 편이 바로 이 작품이다. 최민식 씨의 연기가 정말 돋보였고, 감동까지 더해졌다.영화설명: 일본 아사다 지로의 단편소설 를 각색한 작품. 위장 결혼으로 맺어진 삼류 건달인 강재(최민식)와 중국 처녀 파이란(장백지)의 엇갈린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회자되는 수작이다. 담담한 감정 처리가 인상적인 이 작품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생각하게 한다. 장백지의 풋풋했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지금으로선 색다르다. 또 (1999)로 연출데뷔 했던 송해성 감독은 두 번째 연출작인 을 통해 감독으로서 재능을 인정받게 됐다.



4.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2012년 | 윤종빈

이경규: 최민식 씨가 출연한 영화 중 과 함께 대표작으로 손꼽는 작품이다. 80년대를 관통한 아버지 세대가 자식들을 위해 몸부림치는, 그러면서 범죄에 휘말려 허세를 부리는 내용인데 정말 재밌게 봤다. 최민식 씨의 연기는 이번에도 역시 뛰어났다.

영화설명: 배우들의 앙상블이 뛰어났던 작품. ‘역시’란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 최민식과 하정우는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고, 곽도원, 김성균 등 숨겨진 보석들이 발견됐다. 조진웅, 마동석, 김혜은 등도 맛깔스런 연기로 영화의 맛을 더했다. 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전해준다. 또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1980년대 한국 사회를 관통한 영화 속 이야기는 지금의 대한민국과 묘하게 겹치면서 흥미를 더했다.



5. 건축학개론
2012년 | 이용주

이경규: 누구나 젊었을 때 한 여자를 좋아했고, 한 남자를 좋아했을 것 같다. 그 순수한 첫사랑의 이야기를 교차해 가면서 보여줄 때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아마 나이 드신 분들도, 또 지금 그 나이에 해당되는 친구들도 좋아할 것 같다. 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잘 빚어서 만들어놓은 영화라 가슴에 남는다.

영화설명: 2012년 ‘첫사랑 열풍’을 몰고 왔던 작품. 첫사랑과 건축이란 다소 이질적인 소재를 흥미롭게 엮어내는데 성공했다. 또 한가인-수지, 엄태웅-이제훈 등 2인 1역의 조합도 뛰어났다.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수지와 이제훈은 풋풋한 20대의 감정을 오롯이 표현해 냈고, 한가인과 엄태웅은 바통을 잘 이어받아 아련했던 첫사랑의 기억을 완성시켰다. ‘납득이’(조정석)란 최고의 캐릭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영화 속에 흐르는 전람회의 역시 다시금 인기곡 리스트에 올랐고, 영화 속 제주도에 지어진 서연의 집은 올해 으로 재탄생되기도 했다.





영화라는 꿈을 찾아가는, 이경규

이경규는 영화에 이어 다시 한 번 노래를 소재로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자신이 닮고 싶은 송해에게 바치는 영화기도 하다. 이경규가 30년 이상을 이어온 장수프로그램 KBS1 을 영화로 옮기게 된 이유다. 이경규는 실제 TV에 나왔던 사연을 모으고, 살을 붙여가며 ‘노래를 통해 뭔가 말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각자의 사연을 품은 노래들은 한층 진정성 있게 전해졌고, 눈물과 웃음 그리고 감동을 선사했다.

이제는 영화 제작자로서, 어엿한 ‘영화인’이라 불릴 만하다. 앞으로도 영화 제작자로서의 길을 꾸준히 걸을 각오다. 차근차근 한 걸음씩 걷는 그의 모습이 오랜 꿈을 향해 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더 나아가 ‘감독’ 이경규를 머지않아 볼 수 있길, 그의 꿈을 응원해 본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사진제공. 인앤인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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