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 작가의 머릿속엔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걸까. 14일 종영한 tvN 월화드라마 의 송재정 작가는 방송이 진행되는 10주간 시청자들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며 파란만장한 시간여행을 이끌어왔다. 비극적인 가족사를 지닌 방송사 기자 박선우(이진욱)가 우연히 20년 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향 9개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은 탄탄한 전개와 긴장감 넘치는 호흡으로 케이블 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최종회 대본을 모두 탈고한 후 만난 송 작가는 극중 박선우처럼 냉철하면서도 호기심어린 눈빛을 잃지 않은 모습이었다. “스스로도 처음으로 감정을 바닥 끝까지 밀어붙여봤다”는 그에게서 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들어보았다.Q. 20회 걸친 대장정이 끝났다. 결말은 마음에 드나.
송재정 : 처음 생각했던 대로 갔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많이 얘기하고 싶어질 만한 결론일 것 같다. 해피도 새드도 아닌 열린 결말인데, 개인적으로 난 해피엔딩이라고 여기고 썼다. 그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미래에 맡겼달까. 그런데 감독님과 이진욱 씨는 비극으로 보는 것 같더라.(웃음) 난 선우가 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신의 영역에 도전한 댓가는 당연히 받아야 하지만 인간인 이상 계속 희망을 갖는 게 의무인 것 같다. 충분히 인간의 의지가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Q.작품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연결시킨 구성이 인상적이다.
송재정 :사실 좀더 구체적인 내용의 엔딩 장면이 있었는데 시청자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주고 싶다는 생각에 여운을 주는 방향으로 결말을 맺었다. 내 의도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연결시키면서 마지막 장면에 형을 찾으러 온 50대의 선우의 모습을 통해 희망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말에 대한 해석은 여러모로 다양하게 나올 수 있겠다 싶다.

Q.작품에 대해 ‘작가가 천재다, 드디어 작두를 탔다’는 얘기가 많았다.
송재정 : 빨리 써야 천재지…사실 난 벽에 머리 부딪쳐가며 썼다(웃음). 14부까지는 방송 전 완성해놨는데 막상 시작한 후에는 집필 속도가 느려지더라.Q. 처음에 극 구상을 어떻게 했나
송재정 : 타임슬립물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3년 전쯤 아는 감독님이 “기욤 뮈소의 란 책의 판권을 사서 드라마화하는 게 어떻겠냐”는 얘길했었다. 그 작품을 보니 타임슬립물을 본격적으로 해 보면 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더라. 그간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대부분 헤어진 가족이나 연인을 찾는 등 목표점이 하나인 게 아쉬웠다. 목표점이 많은 타임슬립물을 하면 상당히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다 나온 작품이다.

Q. 기존에 나온 타임슬립물이 많아서 차별성을 주는 데 고민이 많았겠다.
송재정 :
2010년쯤에 첫 시놉시스를 구상했는데 묵히는 과정이 오래 걸렸다. 기존 작품과 겹치는 부분을 피해가자니 쉽지 않더라. 다만 예전 타임슬립물은 과거를 바꾸기 위해, 혹은 첫사랑을 지키기 위해 시간여행을 하는 설정이 많았는데 에서는 과거가 아닌 현재를 지키기 위해 바꾸는 쪽으로 가려고 했다. 또 작가가 이미 어떤 결론을 쥐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만들기보다 상황을 던져주고 그 안에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다.

Q. 주인공의 인생이 계속 바뀌어가면서 반전이 계속되는 데도 구성이 매우 완결성 있었다.
송재정 :
원칙이 크게 몇 가지 있었다. 초반에 주인공 선우(이진욱)와 민영(조윤희)의 관계가 연인에서 삼촌-조카 관계로 바뀌는 임팩트 있는 전환 후에는 많이 바꾸지 말자고 생각했다. 구성은 시트콤 작가를 했던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시트콤은 한 회마다 에피소드가 완결되기 때문에 엔딩점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연결되는 이야기지만 한 회당 이야기의 완결성을 주는 습관이 나도 모르게 몸에 밴 것 같다.

Q. 극중 향이 큰 역할을 하는데 특별한 의미를 둔 설정인가.
송재정 :
여러 판타지물에서 가장 걸렸던 건, 지나치게 할리우드 영화같다는 느낌이었다. 현실적인 밀착감을 주고 싶어서 생각하다 나온 물건이 향이다. 영적인 느낌도 있고 한국 사람들의 정서를 자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 네팔이 나온 것도 한국 사람들이 높은 산에 대한 동경이 있다는 점 때문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준 것 같다.

Q.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같이 흐른다는 설정은 평행우주이론 등 여러 과학이론들도 참고한 건가
송재정 :
과학적인 이론은 사실 무지하다. 평행우주이론이란 것도 드라마 관련 기사의 댓글에서 처음 봤다.(웃음) 그저 시각적으로 이해할 만한 구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와 과거의 시간이 같이 흘러가는 설정도 화면 구성을 생각하다 나온 아이디어다.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작품도 논리적인 측면에서는 구멍이 굉장히 많다. 하지만 과학적 증명을 위한 작품이 아닌 만큼, 관건은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내 역할은 그저 여러 질문을 던져주는 것 같다.Q. 극의 전반부는 판타지와 팩트 사이에서 고민하는 선우의 모습, 중반부는 두 세계가 혼돈되면서 하나의 세계로 나가는 과정, 후반부는 이 세계를 공유한 인물들의 의지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해석해도 될까.
송재정 :
그렇다. 선우는 향을 통해 자신이 모든 걸 관장하면서 전지전능하다고 여겼다가 벽에 부딪친 거다. 주변 인물들이 향에 대해 자각한 후에는 스스로 의지를 갖고 움직이면서 상황이 예측불허의 상태로 흘러갔다.

Q. 타임슬립물인데도 주위에 실제 존재할 것 같은 인물과 상황이 펼쳐지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송재정 :
허황되지 않은 현실적인 이야기가 판타지물에서 오히려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야기가 극적인데 주변 인물들도 강렬하면 시청자들에게 피로감을 줄 것 같았다. 굉장히 평범한 환경에서 판타지가 연결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Q. 극을 이끌고 간 남자주인공 선우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었나.
송재정 :
크게 보면 이 작품은 선우의 인생 이야기다. 그 속에 가족도 연인도 악당도 있는. 20회 동안 멜로가 부각되기도, 악당과의 대결이 강조되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현실감을 갖춘 인물을 그리려고 했다 적당히 냉철하고 의지도, 감성도 있으며 너무 특별하게 멋있지도 않은. 사실 나의 내면이 적지 않은 부분 투영된 인물이기도 하다.

Q. 남녀주인공의 로맨스도 꽤 화제를 모았다
송재정 :
민영이는 선우에게 이상향같은 존재다. 선우가 추구하는 행복을 상징하는 인물이랄까. 그래서 극중 가장 아이처럼 순수한 느낌으로 그리려고 했다. 이야기가 판타지라 붕 뜰 확률이 높아서 연애담은 최대한 현실 직장에서 있을 만한 이야기로 그리자는 생각이었다. 민영이가 각성하는 부분은 사실 논리에 맞지 않는다. 연인이라는 특별한 관계상 그럴 수 있다는 걸 시청자들에게 암묵적으로 공감을 구한 거다.

Q. 극중 최진철 역을 맡은 정동환의 악역 연기도 새로운 캐릭터 창출이라는 평이 많았다.
송재정 :
처음엔 깜짝 놀랐다. 내가 생각한 톤은 좀더 현실적인 느낌이었는데 정동환 씨의 약간 오버스러운 연기가 창의적으로 다가와 보는 재미를 살려줬다. 오히려 내가 상투적으로 건조하게 묘사했구나,란 생각을 했다.

Q. 캐스팅 과정에서는 어떤 점을 고려했나
송재정 :
작품을 쓸 때 사실 배우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쓴다. 조윤희 씨는 토크쇼를 보다 이미지가 내가 생각하는 민영과 딱 맞아 보여 제안했고 이진욱 씨는 극중 서른 아홉인 선우에 비해 실제 나이가 훨씬 어려서 생각을 못했었는데 만나보니 굉장히 잘 맞더라.

Q. 최근 지상파 드라마의 흐름과 달리 작품이 초반부터 달려가지 않아 세련된 느낌이었다.
송재정 :
난 사실 격정적인 이야기를 못 참는 성격이다.(웃음) 반면 감독은 나보다 더 감성적이고 열정적이다. 내가 차갑게 써도 감독이 뜨겁게 연출을 해서 나름대로 조화를 잘 이룬 것 같다.

Q. 결국 작품을 통해 담고 싶었던 메시지는 반복되는 절망 속에서도 다시 스스로의 힘으로 행복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이야기인가.
송재정 :
신에게 반기를 들어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같은 인물을 생각하며 만든 이야기다.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그래야하지 않나란 생각을 했다. 누가 선이고 악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각자 의지의 충돌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그것을 해결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Q. 같은 송 작가의 예전 시트콤을 즐겨보던 시청자들은 달라진 작품 분위기에 놀랐을 것 같다.
송재정 :
이전 작품 속 인물들도 사실 알고 보면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오히려 밥값을 누가 낼지를 두고 벌벌 떠는 처절한 인물들이었지(웃음). 난 만원 내기할 때도 그런 처절함을 갖고 내기하는 사람들이 좋다. 그게 진정성 있지 않나. 단지 이번엔 생사를 건 문제가 드라마의 이슈로 떠올라 더 강렬하게 보였을 뿐이다.

Q. 막장 코드나 자극적인 전개 등 지상파 드라마의 뻔한 답습에 새로움을 원하는 20~30대 시청자들이 에 열광한 것 같다.
송재정 :
시청자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스피디한 전개나 반전을 즐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쓰면서 ‘이야기를 너무 꼬지 않았나’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히려 다음 반전을 궁금해하는 시청소감을 보며 놀라곤 했다.

Q. 작가로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데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다.
송재정 :
상투적이 될까봐 겁난다. 그래서 이제 타임슬립물이나 스릴러는 그만해야겠다는 강박 같은 게 있다.

Q. 또다른 시도는 어떤 걸 하고 싶나.
송재정 :
웹툰을 각색하거나 본격적인 직장 드라마를 해 보고 싶은 생각이 항상 있다. 예전에 같은 좋은 드라마가 있었는데 그 뒤로는 직장생활을 전면적으로 다룬 작품이 안 나온 것 같다. 시츄에이션 직장드라마를 해 보고 싶은 게 예전부터 꿈이었다.

Q. 계속 창의적인 감성을 유지하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나.
송재정 :
어릴 때는 여행을 떠나야 새로운 감각이 생기는 건 줄 알았다. 그래서 20대 때는 작품이 끝나면 두 달씩 해외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지금은 굉장히 직장인같은 마음으로 일한다. 아침에 와서 점심시간까지 일하고 점심먹고 또 일하고 하는 식으로. 경험해보니 창의력은 성실함에서 나오는 것 같다. 두 달 동안 여행하면서 얻은 아이템보다 계속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쓰면서 얻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Q.이번 작품이 작가에게도 특별한가.
송재정 :
오래도록 여운이 남을 것 같다. 사실 전반적으로 우울한 톤의 얘기라 1년 내내 쓰면서도 힘들었다. 특히 주인공의 상황을 최악까지 몰아붙이는 데서는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란 생각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끝까지 가 본’ 경험도 새로웠고 나 스스로도 많이 성장하고 배운 기분이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