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9인조 스윙재즈 걸밴드 블루 리본 멤버사진, 좌측 세번째는 신중현의 부인인 드러머 명정강
록(ROCK)음악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대중적 인식이 지배적이다. 장르 자체의 강력하고 저항적인 이미지 때문이다. 여성들이 구사하는 록 음악은 흔히들 ‘걸스락(Girl’s Rock)’ 혹은 ‘레이디 락(Lady Rock)’이라 말한다. 하나의 음악장르로 정착된 외국과는 달리 국내에서 걸스락은 예로부터 폭넓은 대중의 관심권에서 늘 벗어나 있다. 걸 밴드를 탁월한 음악성과 에너지 넘치는 무대를 펼쳐내는 아티스트로 평가하기보다는 남성들의 야릇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섹시한 비주얼을 앞세운 오락적 대상으로만 치부하는 왜곡되고 해묵은 대중적 시각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엔 몇 팀의 걸 밴드들이 활동을 하고 있을까?1960년대 이후 전 세계가 전설적인 영국밴드 비틀즈의 영향력에 놓이게 되었을 때, 한국도 자유스럽지 못했다. 이에 국내에도 록밴드들이 하나 둘 탄생되기 시작했다. 미8군 하우스밴드 코끼리 브라더스를 시작으로 키보이스와 신중현이 리드한 에드훠를 필두로 수많은 밴드들이 명멸을 거듭해 왔다. 사실 한국대중음악사에 기록된 록밴드는 남성밴드가 주류를 이룬다. 걸 밴드 역시 보이 밴드와 더불어 무수하게 등장했지만 대부분 잠깐 이슈화되고 사라졌을 뿐 한국 록 음악사에 기록된 걸 밴드는 거의 전무하다. 대중은 여성이 전자기타를 들고 있는 것조차 대단하게 여겼기에 진정한 뮤지션의 존재가치보다는 뮤지션 이미지를 흉내 내는 섹시한 모습을 강요당했던 구석도 없지 않았다. 걸스락 음악에 대한 이 같은 뿌리 깊은 대중적 편견은 그동안 한국 사회가 남성적 시각으로 정체성이 재단된 폐해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땅에서 걸 밴드를 만들어 활동한다는 것은 그 어느 장르보다 험난했던 선구적인 작업이었을 것으로 보인다.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지며 남녀의 사회적 위치는 동등해 졌고 최근 여성들의 파워는 오히려 남성들을 능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남성 밴드 못지않은 음악 실력을 담보했음에도 상대적으로 부당하게 평가절하 받아온 걸 밴드들에 대한 왜곡된 시각도 이제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 걸 밴드들의 독특한 활동반경도 대중화에 걸림돌이 된 부분이 부인하기는 힘들다. 자신들만이 유니크하다는 인식을 가진 걸 밴드들은 대중 앞에 나서기보단 숨어서 작은 행사만 뛰었던 폐쇄적인 활동으로 일관했던 경향이 분명 있었다. 실제로 여러 걸 밴드 멤버들은 지상파 TV에서 진행했던 톱밴드 경연대회에 출전했을 때 처음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합동공연을 갖는 러버더키와 스윙즈
2013년 현재, 활동하고 있는 걸 밴드는 대략 10여 팀 정도로 확인되었다. 그동안 독립군처럼 각기 다른 길을 외롭게 걸어온 이들이 작은 변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2012년 6월부터 ‘걸스락 페스티발’이란 이름으로 뭉쳐 두 달에 한 번씩 벌써 여섯 번의 공연을 치러냈다. 현재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걸스팩토리 공연을 마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3인조 러버더키와 2인조 스윙즈는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워킹 애프터 유-수요일엔 빨간 장미를(가제)’를 진행 중이다. 제 6회 걸스락 페스티발 이후 시작한 이 공연은 이번 주에 5회 공연까지 마쳤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 홍대 앞 라이브 클럽 디딤홀에서 정기적인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공연을 통해 탄생된 곡들로 창작앨범 발표까지 꿈꾸고 있다. 현재 창작곡 2곡을 편곡하며 살을 붙여가고 있는데 이모코어 스타일의 4~5곡을 완성해 늦가을 쯤 EP음반을 발표할 목표라 한다.공연 전 매력적인 멤버들과 인터뷰와 피쳐 사진촬영을 진행한 시간을 가지며 즐거웠다. 함께 음악을 하면서 행복해하는 걸 밴드 멤버들의 모습에서 이들은 아무리 현실이 녹녹치 않다 해도 결코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큰 무대건 작은 무대건 최선을 다해 연주하고 땀 흘리는 뮤지션의 모습은 아름답다. 사실 걸 밴드의 공연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것이란 기대도 상상도 하지 않았다. 비록 작은 무대였지만 최선을 다하며 땀을 흘리는 걸 밴드 멤버들의 모습은 감동이었다.일단 칼럼을 쓰기위해 활동하고 있는 걸 밴드 중 한 팀을 선택해야 했다. 스윙즈도 훌륭했지만 평단의 추천을 받았고 실제로 공연을 보면서 상당한 내공을 담보했음을 확인한 3인조 러버더키 멤버들과 홍대 앞 한 커피숍에서 한 번 더 만나 새벽 2시 심야까지 인터뷰를 했다. 이번 텐아시아 골든 인디 컬렉션 걸 밴드 러버더키 편은 한국 대중음악계에 등장했던 중요 걸밴드들의 역사까지 야심차게 짚어 보는 거대 프로젝트로 꾸며질 예정이다. 한국 걸 밴드 역사를 바로 세우기를 위해 스페셜하게 마련된 이번 칼럼은 PART1, 2는 한국 걸스락 역사를 수놓은 전설적 밴드들을 소환해 귀한 사진과 함께 소개할 예정이고 다음 주 PART3, 4는 2010년 첫 앨범을 발표한 러버더키를 중심으로 현재 활동하고 있는 걸 밴드들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한국 걸 밴드 역사를 이렇게 디테일하게 정리하는 작업은 처음이기에 방치되고 훼손된 한국 걸 밴드의 역사를 복원하는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대략 1960년대 한국 걸 밴드 시생대부터 2013년 현재까지 30여개의 국내 걸 밴드들을 소개하는 뜻 깊은 시간이 될 것 같다.
러버더키 스윙즈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워킹 애프터 유’ 공연사진
사실 한국 걸 밴드의 역사는 장구하다. 남성 록밴드의 역사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앞선다. 1962년에 블루리본이 등장한 이래 수많은 걸 밴드들이 미8군과 다운타운 클럽무대에서 활약했고 당대의 한국 청춘영화에도 무수하게 출연했었다. 심지어 동남아로 진출해 음반까지 발표했던 미지의 코리언 걸 밴드도 있었다. 한동안 개체수가 멸종상태였지만 1980-90년대에는 걸출한 음악성을 담보했던 밴드와 대중적으로 사랑받았던 밴드까지 뒤를 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개체수를 헤아려야 할 정도가 숫자가 증가했지만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명멸을 거듭하며 대중의 기억 저편에 봉인되었다.국내 최초의 9인조 스윙 재즈 걸 밴드 블루리본(Blue Ribbon)은 1962년에 결성되어 1964년까지 3년 정도 활동했다. 밴드 결성시기가 1962년이면 한국 최초의 밴드로 회자되는 키보이스, 에드훠보다 앞서 결성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또한 ‘9인조 걸 그룹은 소녀시대가 최초’라는 잘못된 대중적 인식도 이 역사적 걸 밴드로 인해 수정되어야 한다. 이미 소녀시대보다 45년 앞서 결성된 블루리본의 멤버는 9인조였고 댄서 1인을 포함 총 10명의 멤버가 미8군 쇼 무대에서 활동을 했다. 드러머는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부인 명정강 선생이다. 이들은 미8군 쇼 대행업체 중 가장 규모가 컸던 (주)한국흥행 즉 ‘화양’ 소속이었다. 밴드 구성은 모두 서울의 명문 여대 음대생들로 바이올린 2명, 클라리넷 2명, 플루트 1명, 피아노와 기타 그리고 콘트라베이스, 드럼까지 9인조 밴드로 이뤄졌고 고전무용 1명까지 모두 10인의 청순한 외모의 미인들로 구성되었다.
5개월 동안 각고의 연습 끝에 45분 쇼를 구성하여 미8군 오디션에 통과한 이들은 서울의 용산, 의정부, 동두천, 춘천, 원주 등 미군부대가 있는 곳은 거의 다 섭렵했다. 하얀 원피스에 파란 리본을 맨 의상을 착용했던 이들은 제법 인기도 높아 배우 최은희가 제작 주연한 ‘검은 상처의 블루스’란 영화에도 출연을 했었다. 2년여의 세월이 지나 음대에 재작 중이던 대다수 멤버들은 졸업과 더불어 결혼문제가 현실로 다가와 해체했다. 아쉬운 점은 공식 음반 발표 없이 사라진 점이다. 명정강 선생이 보관해온 빛바래고 구겨진 멤버들의 흑백사진 한 장이 이들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유일한 기록이다.
걸밴드 서울패밀리 1964년
블루리본에 이어 1964년에 결성되어 탁월한 댄스, 연주, 노래실력으로 미8군 무대는 물론 동남아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서울패밀리가 등장했다. 1980년대에 등장한 위일청이 리드했던 동명의 혼성밴드와는 다른 걸 밴드다. 멤버들은 친자매 지간으로 리드기타를 친 큰 언니 김백희를 리더로 김태영, 김영경, 김태옥, 김태리나 그리고 이종사촌 정창원까지 6인조로 구성되었다. 700여곡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보유한 이들은 1972년 당시, 파격적인 월 2만 달러의 개런티를 받고 미국 라스베가스로 진출했었다. 한국 최초의 걸그룹이 김시스터즈가 1959년에 진출한 이래 한국 걸 밴드로는 최초의 일이다. 탁월한 연주와 보컬능력을 담보했던 이들은 70년대까지 활동을 계속했지만 아쉽게도 블루리본과 마찬가지로 서울패밀리 역시 가장 중요한 음반을 남기지는 못했다.(part2로 계속)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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