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한혜리 기자] 2015년 상반기의 드라마들은 유독 비범한 주인공들이 많았다. 다중인격, 뱀파이어, 초능력자 등 일상에선 찾아 볼 수 없는 인물들이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됐다. 엉뚱하고 생뚱맞은 설정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지겨운 일상을 벗어나 환상 속 인물들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 1. 홀로 다수의 캐릭터를 소화해야 했던 다중인격
(시계방향으로) MBC '킬미, 힐미', SBS '하이드 지킬, 나', KBS2 '후아유', SBS '가면'
(시계방향으로) MBC '킬미, 힐미', SBS '하이드 지킬, 나', KBS2 '후아유', SBS '가면'
상반기 안방극장은 다수의 인격을 연기해야했던 배우들의 고군분투가 돋보였다. 올해 초 방송됐던 MBC ‘킬미, 힐미’에서 주연을 맡은 지성은 1인 7인격이라는 최다 인격을 연기해야 했다. 지성의 능청스런 연기 덕분에 7개의 인격은 각기 다른 매력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냉소적이지만 자기 여자에게 올인하는 신세기, 바다 사나이 페리박, 시도때도 없이 자살을 시도하는 고등학생 안요섭과 쌍둥이 여동생 안요나, 곰인형을 안고 다니는 7살 나나, 마법사 같은 의문의 인격 X까지. 지성이 연기한 7개의 인격은 마치 아이돌 그룹처럼 인기를 끌었다.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SBS ‘하이드 지킬, 나’도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다. 현빈의 제대 후 첫 드라마 복귀작으로 관심을 모았다. ‘하이드 지킬, 나’는 해리성 정체장해를 가진 한 남자의 전혀 다른 두 인격과 사랑의 빠진 여자의 삼각관계를 그린 드라마다. 냉철한 구서진 역과 다정한 로빈 역을 함께 소화한 현빈은 외형적 모습 뿐만 아니라 목소리, 감정 등의 차별을 두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다중인격을 연기한 남배우들의 활약에 이어 여배우들의 1인 2역 열연이 펼쳐졌다. 수애는 SBS ‘가면’에서 밝고 긍정적이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변지숙과 국회의원의 딸 서은하 역을 동시에 소화했다. 전작 SBS ‘야왕’ 속 주다해 역을 연기한 수애의 악녀 이미지가 꽤나 파급력이 컸기에 연기 변신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그런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수애는 1인 2역을 완벽히 소화해며 또 한 번 연기력으로 호평을 얻고 있다. 이화 함께 ‘가면’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아역 배우 출신 김소현도 1인2역 연기로 호평을 얻었다. 여섯 번째 학교 시리즈인 KBS2 ‘후아유-학교2015’에선 쌍둥이 자매 고은별, 이은비 역할을 연기했다. 실제 고등학생인 김소현은 아역시절부터 다져진 연기실력으로 상반된 매력의 고은별, 이은비 자매를 완벽히 표현했다. 드라마 후반엔 사라졌던 고은별이 등장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김수현의 1인2역 연기에 힘입어 드라마도 뒷심을 발휘했다.

# 2. 언제나 매력적인 주인공, 뱀파이어
KBS2 '블러드', '오렌지 마말레이드'
KBS2 '블러드', '오렌지 마말레이드'
사람을 홀리는 수려한 외모를 가진 뱀파이어는 언제나 매력적인 소재다. 이미 여러차례 뱀파이어를 소재로한 영화, 드라마 등의 작품들이 쏟아져나왔다. 이 인기에 힘입어 2015년 상반기 역시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봇물을 이뤘다.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것은 안재현, 구혜선, 지진희 주연의 KBS2 ‘블러드’. ‘블러드’는 뱀파이어 의사라는 신선한 설정으로 판타지 의학드라마를 표방했다. 방송 전부터 뱀파이어와 싱크로율이 높은 모델 출신 신인 연기자 안재현이 주연으로 발탁돼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방송 전 기대에 비해 주연인 안재현과 구혜선이 연기력 논란에 휩쓸리며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청춘로맨스를 표방하는 KBS2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뱀파이어와 인간의 공존을 통해 ‘차별’과 ‘차이’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여진구, 설현, 이종현이란 젊은 배우와 아이돌 출신 배우들의 출연으로 낮은 연령대의 시청자들을 공략했다. 이중 설현과 이종현은 매력적인 외모와 더불어 뛰어난 액션 능력으로 뱀파이어 역할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시즌 2가 펼쳐지는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뱀파이어와 인간 종족 차이와 더불어 조선시대 신분제의 차별까지 더해져 한층 더 깊어진 애절한 멜로를 펼치고 있다.

상반기 방송된 뱀파이어 드라마들은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하지만 미국 드라마나 케이블채널에서만 다뤄졌던 뱀파이어 소재가 공중파 진출을 꾀했다는 점에서 대중에게 다가가는 시도를 했다는 의미가 있다. 올 하반기에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뱀파이어 소재 사극 MBC ‘밤을 걷는 선비’가 대기하고 있다. 배우 이준기와 이유비가 주연을 맡은 가운데, 상반기 드라마와는 다른 결과를 얻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3. 각양각색의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들
SBS '냄새를 보는 소녀', tvN '초인시대'
SBS '냄새를 보는 소녀', tvN '초인시대'
현대인에게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을 꼽자면 단연 초능력.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기라도 하는 듯 엉뚱한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들의 이야기도 펼쳐졌다. 하지만 하늘 아래 완벽한 것은 없듯, 기이한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들은 어딘가 부족해보이는 허당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극의 리얼리티를 살리며 시청자들에게 친근함을 느끼게 했다.
SBS ‘냄새를 보는 소녀’는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둔 작품으로, 신세경이 냄새를 시각으로 보는 오초림 역할을 맡았다. 불의의 사고로 비범한 능력을 가지게 된 초림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형사 최무각(박유천)을 도와 연쇄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등 영웅적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극 중 초림의 장래희망은 개그우먼. 급기야 최무각과 함께 콤비 개그를 선보이며 웃음을 자아냈다. 신세경은 ‘냄새를 보는 소녀’를 통해 비범한 능력을 가졌지만 평범한 일상을 사는 초림을 능청스럽게 소화해내 성공적인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초능력자라고 하면 영웅이라 생각하기 쉽다. 보편적인 영웅은 진중하고 멋진 모습을 하고 있지만 케이블채널 tvN ‘초인시대’가 보여준 초능력자 영웅은 그렇지 않다. 말도 안되는 우연으로 주인공 유병재는 초능력자가 됐고, 그는 세상을 구하기 보단 자신의 취업과 사랑을 쟁취하려 했다. 영웅의 모습을 유쾌하게 풀어가던 ‘초인시대’는 점점 특유의 ‘병맛’ 코드를 잃고 러브라인에 치중했다. 결국 산으로 가는 스토리에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다.

두 작품은 초능력을 가진 영웅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앞서 나열된 환상 속 인물들은 지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로부터 만들어진 공상이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주인공들을 바라보며 희망을 얻는다. 단순히 재미를 위한 캐릭터가 아닌, 현실을 벗어나고픈 마음에서 비롯된 캐릭터의 출연은 지루한 일상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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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리 기자 hyeri@
사진. 드라마 공식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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