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은 확실히 2014년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 유행어다. 10대는 물론, 20~30대에 이제는 중장년층까지도 ‘썸탄다’라는 말의 의미를 가늠하고 인기를 체감하고 있다.

썸의 어원은 ‘정확하지 않은 어떤 것’과 ‘중요한 것’이라는 뜻을 동시에 가진 영어 ‘썸씽(Something)’이다. 그리고 21세기 한반도의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에는 ‘관심 가는 이성과 잘 돼가는 감정’이라고 썸을 정의내린다. 국어사전보다 더 정확히 이 단어의 분위기를 설명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노래 가사다. 바로 정기고와 소유의 ‘썸’에 등장한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너’,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가 그 것.

정리하자면 무슨 사이인 것인지 헷갈린다는 연애의 전초전, 혹은 연애에 이르기엔 애매모호한 모든 불확실한 관계들에 대한 정의다. 그러니 썸은 2014년 별ㅡ안간 등장한 관계가 아니라 인간사의 케미스트리가 흐르기 시작하며 생긴 모든 흐릿한 감정에 마침내 부여된 선명한 이름인 셈이다. ‘모호하나 긴장감 있는, 불확실하나 짜릿한’ 재미난 미덕을 가진 썸을 그렇게 존재가치를 인정받으며 대중매체로까지 진출한다. TV, 가요, 영화 등은 ‘썸’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을까.

사실, 영화는 ‘썸남썸녀’들의 산물이다. 로맨스 영화는 물론이거니와, 액션과 스릴러와 같은 타 장르에도 ‘썸남썸녀’들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영화를 통해 연애를 배울 수 있는 이유다. 스크린 속 ‘썸남썸녀’들이 건네는 ‘썸타기’의 교훈을 살펴봤다.

# ‘봄날은 간다’ -은수(이영애)
“라면 먹고 갈래요?” 세상엔 수 천 가지 종류의 ‘작업용 멘트’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라면 먹고 갈래요?”가 여전이 희대의 유혹 멘트인 이유는 행간에 숨겨진 썸녀의 에로틱한 사상 때문이다. 그러니까 “라면 먹고 갈래요?”는 “라면 먹은 후 ( )하고 갈래요?”로 읽어야 정확한 본디의 뜻을 가늠할 수 있다는 사실. 괄호 안에 들어갈 단어는 상상에 맡기겠다. 어쨌거나 커피도 아니고 스프도 아니고 과일도 아닌, 라면이라는 친서민적인 음식을 통해 남자의 긴장을 가볍게 떡 주무르는 운수의 ‘썸’타는 실력은 실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를 통해 배우는 ‘썸’의 교훈! 대화 시,단어선택에 고심하자. 단어 하나로 상대방과의 긴장의 끈을 늦출 수도, 땐땐하게 조일 수도 있다. 라면과 같은 유니크한 단어일수록 ‘썸’의 지수는 올라간다.
“라면 먹고 갈래요?” 응용 편: 생활밀착형 버전 “아이폰 충전하고 갈래요?”, 식신 버전 “치즈 넣은 라면 먹고 갈래요?”, 본능충실 버전 “화장실에서 똥 누고 갈래요?”

# ‘500일의 썸머’- 썸머(주이 데샤넬)

이름마저도 ‘썸’머다! Summer가 아니라, ‘Some녀’로 읽히는 건 왜일까? 썸머는 상대의 마음에 불꽃을 확 던져놓고 예고 없이 불쑥 사라지는 ‘썸’계의 대표적인 ‘먹튀녀’다. 그녀의 경쟁력은 “나는 심각한 관계는 싫어!”라는 대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관계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기에, 이런 ‘썸녀’들은 남자에게 의지하거나 질척거리지 않는다. 자신에게 안달하지 않고 독립적인 여성은 정복욕 강한 남자들로서는 한번쯤 오르고 싶은 매혹의 대상인 동시에 위험한 상대다. 이런 ‘썸녀’에게 잘못 걸렸다가는 제 아무리 ‘폼 하나에 죽고 사는’ 폼생폼사 사나이도 “내 청춘을 유린당했다”며 눈물 쏟을 수 있다.
이 영화를 통해 배우는 ‘썸’의 교훈!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온다! 썸타는 중인 그/그녀가 당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해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세상은 넓고 남자/여자는 많으니. ‘500일의 썸머’의 톰(조셉 고든 레빗)도 썸머를 보내고, 오톰(Autumn)을 만나 다시 ‘썸타기’를 시작했다.

# ‘섹스 앤 더 시티’ -미스터 빅(크리스 노스)
잘생긴 외모에 탄탄한 직업, 여자가 원하는 것을 순발력 있게 알아채는 센스, 여성들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트라우마까지 완벽하게 갖춘 옴므파탈의 상징. 그러나 캐리(사라 제시카 파커)에게 절대로 미래에 대한 확신은 주지 않았던 썸남계의 우유부단 1인자다. “어째서 사랑한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 거야?”(캐리) “두려워서. 사랑한다고 말하면 당신은 우리가 결혼하겠구나 하고 생각할까봐 두려워.”(미스터 빅) ‘썸’ 이상의 관계, 그러니까 책임감과 안정감 또는 부담이 따르는 관계를 원치 않는 미스터 빅은 그러나 다른 여자와 두 번이나 결혼하는 언행불일치로 큰 실망을 안겼다. 결국 두 번이나 품절남이 된 후에야 캐리에게 안기는 빅은 ‘썸계’의 최고 찌질남이 아닐까.
이 영화를 통해 배우는 썸의 교훈!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 했다. 아무리 ‘썸’이 주는 아슬아슬한 감정이 좋다 해도 이런 썸 상대를 만나면 정신적인 피해를 입기 십상이다. 캐리를 보라. 빅으로 인해 캐리가 흘린 눈물은 1.5리트 패트병을 채우고도 넘칠 걸? 미스터 빅에게 사랑을 고백했다는 캐리의 말을 들은 친구 사만다는 이런 명언을 남겼더랬다. “남자에게 ‘당신을 증오해’라고 하면 사상 최고의 섹스를 하게 되지. 하지만 ‘당신을 사랑해’라고 하면 다시는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될 공산이 크다구!”

# ‘트와일라잇’ – 늑대소년 제이콥(테일러 로트너)

‘트와일라잇’의 그녀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당대 최고의 ‘어장관리녀’로 등극한데에는 이 남자, 제이콥의 역할이 지대했다. 물론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와의 사이가 안 좋을 때마다 제이콥을 찾아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 점, 처음부터 태도를 분명하게 하지 않고 ‘희망고문’을 한 점에서 벨라의 죄는 명확하나, 따지고 보면 벨라의 이러한 행동이 가능했던 것은 벨라의 ‘썸타기’를 사랑이라 믿어버린 제이콥의 어리석음에도 죄가 있다. 벨라가 에드워드와 결혼한 후에도 그녀 곁을 맴돌며 ‘골키퍼가 있다고 골 안 들어가냐’라는 기세로 덤벼든 제이콥의 오매불망 사랑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이 영화를 통해 배우는 썸의 교훈! 나만 바라보겠다고 하는, 상대의 달콤한 말을 의심해 보자. 제이콥을 곁에 두며 희망고문 했던 벨라는 결국, 자신의 딸과 제이콥이 사랑에 빠지는 못 볼꼴을 보게 된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벨라에게 배우는 ‘밀당’의 대사들: “(자신을 두고 싸우는 제이콥과 에드워드에게)나를 스위스(영세 중립국)라고 생각해!” “아들이 태어나면 에드워드의 E와 제이콥의 J를 따서 EJ라고 이름을 지을 거야”

# ‘친구와 연인사이’ – 엠마(나탈리 포트먼)
좋게 표현해서 ‘친구와 연인사이’지, 정확하게 말하면 전형적인 ‘썸 타는 사이’다. 이들의 ‘썸타기’가 남들과 차별화된 점이라면, 섹스가 감정보다 먼저 왔다는 점이다. ‘이성사이에 친구가 가능 한가’라는 해묵은 논쟁이 끊일 수 없는 것은, 남녀 사이엔 섹스라는 위대하고도 거대한 마법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사귀지는 말고 섹스만 하자!”는 엠마(나탈리 포트먼)와 아담(애시튼 커처)의 계획은 섹스 앞에서 산산이 무너지고 만다. ‘썸타는’ 관계에서 섹스가 미치는 영향이란!
이 영화를 통해 배우는 ‘썸’의 교훈! ‘몸정’ 앞에서 ‘썸’ 따위가!

썸남썸녀① ‘사랑과 우정사이’부터 ‘썸’까지, 썸학개론의 역사

썸남썸녀③ 가요계가 ‘썸’을 다루는 방식

썸남썸녀④ 예능이 썸을 다루는 좋은 예 나쁜 예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영화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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