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남썸녀① ‘사랑과 우정사이’부터 ‘썸’까지, 썸학개론의 역사

썸은 확실히 2014년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 유행어다. 10대는 물론, 20~30대에 이제는 중장년층까지도 ‘썸탄다’라는 말의 의미를 가늠하고 인기를 체감하고 있다. 썸의 어원은 ‘정확하지 않은 어떤 것’과 ‘중요한 것’이라는 뜻을 동시에 가진 영어 ‘썸씽(Something)’이다. 그리고 21세기 한반도의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에는 ‘관심 가는 이성과 잘 돼가는 감정’이라고 썸을 정의내린다. 국어사전보다 더 정확히 이 단어의 분위기를 설명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노래 가사다. 바로 정기고와 소유의 ‘썸’에 등장한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너’,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가 그 것. 정리하자면 무슨 사이인 것인지 헷갈린다는 연애의 전초전, 혹은 연애에 이르기엔 애매모호한 모든 불확실한 관계들에 대한 정의다. 그러니 썸은 2014년 별안간 등장한 관계가 아니라 인간사의 케미스트리가 흐르기 시작하며 생긴 모든 흐릿한 감정에 마침내 부여된 선명한 이름인 셈이다. ‘모호하나 긴장감 있는, 불확실하나 짜릿한’ 재미난 미덕을 가진 썸을 그렇게 존재가치를 인정받으며 대중매체로까지 진출한다. TV, 가요, 영화 등은 ‘썸’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을까.

썸 안녕하십니까? 저는 썸학개론 수업을 수강 중인 14학번 새내기입니다. 당연히 재수강은 아니고요. 흠흠 제가 발표할 내용은 썸의 역사입니다. 다들 썸타고 계신가요? 사실 요즘, 그것도 2014년 들어서 ‘썸’이라는 단어 정말 많이 사용합니다. 뭐 예전에도 썸남 썸녀 이런 단어는 쓰였죠. 그런데 요즘은 어머니께서도 ‘썸’이 무엇인지 알고 계시는 것 아닙니까. 그만큼 썸은 하나의 단어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런 썸의 대중화에는 정기고와 소유의 ‘썸’이 혁혁한 공을 세운 것엔 틀림없죠. 그렇다면 ‘썸’의 등장 이전, 사람들은 어떻게 ‘썸’을 표현했을까요?

사랑과 우정사이에서 고민하는 많은 이들

사랑과 우정사이에서 고민하는 많은 이들

# 응답하라 ‘사랑과 우정사이’ ‘사랑과 우정사이’라는 노래 들어보셨나요? 지난 1992년 11월 발매된 피노키오의 곡입니다. 이 곡은 모호한 연애에 대해 ‘사랑과 우정사이’라 간편하게 명명해 당시 화제를 불러 일으켰죠. 가사를 잠시 살펴보자면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 날 보는 너의 그 마음을 이젠 떠나리 /내 자신보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널 아끼던 내가 미워지네’라는 후렴구가 돋보입니다. 이 곡에서는 말 그대로 사랑하는 연인이라 생각하기엔 사이가 좀 멀고 친구 사이보다는 가깝다며 썸을 거리에 비유해 비교적 객관적인 정의를 내렸습니다. 이 세상 많고 많은 썸남 썸녀에게 자신들의 사이를 설명할 수 있는 명확한 단어가 이로 인해 탄생된 것이었죠. 확실하지 않기에 고민도 많고 불안한 이 관계, 이를 우리는 1992년부터 ‘사랑과 우정사이’라 부르기 시작하게 됐습니다.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이전부터 있었던 이 애매모호한 관계는 명명도 설명도 힘들었지만 ‘사랑과 우정사이’의 등장으로 타인에게 고민상담하기도 좋고 “그게 뭐야~”라는 세상의 시선에도 “우린 사랑과 우정사이야! 피노키오 노래 모르니?”라 대응할 수 있게 되며 연애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하나의 촉진제가 될 수 있었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사랑과 우정사이’의 결말은 다소 씁쓸합니다. ‘연인도 아닌 그렇게 친구도 아닌 / 어색한 사이가 싫어져 나는 떠나리 / 우연보다도 짧았던 우리의 인연 그 안에서 / 나는 널 떠~나네…’ 세상에나, 14학번 새내기의 생각으로는 충격적이고 애잔합니다. 결국 ‘사랑과 우정사이’를 헤매던 한 명은 어색한 사이가 싫어져 떠나게 됩니다. 너무 좋은 친구였기에 그와의 우정을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았던 걸까요. 애매모호한 이 관계는 결국 이뤄지지 못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회적인 시선이나 분위기도 이들의 ‘사랑과 우정사이’를 더 어색하게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애매모호한 사이에 대해 비교적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었죠. 지금처럼 ‘썸’에 대한 언급도 없고 JTBC ‘마녀사냥’처럼 연애나 사랑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던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이죠. 그래서 ‘사랑과 우정사이’는 보다 아련하고 이뤄지기 힘든 미완의 사이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참! 이 명곡은 박혜경, SG워너비, 포미닛 전지윤, 그리고 MBC ‘나는 가수다’ 김경호와 김연우가 다시 부르며 지금까지도 90년대 감성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명곡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밀당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이들

밀당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이들

# 두 유 노우 밀당? (Do you know Mildang?) 그렇게 ‘사랑과 우정사이’가 프리(pre) 연애의 세계를 독식했습니다. 다양한 연애 방식을 다룬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사랑과 우정사이’의 아성에 부족하긴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사이 TV에서는 연애 고민을 상담해주는 프로그램이 등장하기도 하고 아예 연애에 대해 강의를 하기도 했죠. 많은 잡지들이 등장하며 연애 상담 혹은 연애 분석 코너는 인기를 얻었고요. 그만큼 연애에 대한 관심은 더 많아지고 그를 다루는 것에 대해 재미를 느끼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토익 공부, 자격증 공부 등과 함께 연애 공부를 해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사이 ‘사랑과 우정사이’를 떨게 만드는 재밌는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밀당’이었습니다. 밀당? 마치 한자어 같은 이 단어는 밀고 당기기의 줄임말로 연애에 있어 새로운 매커니즘을 제시해준 단어였습니다. ‘연애는 사랑을 무한히 주는 것 아닌가요?’라 배우고 말했던 우리였지만 사실 그게 아니었습니다. 당근과 채찍을 준다는 말이 있듯 밀당은 잘해줬다가 때로는 조금 멀리했다가 하는 모습을 뜻하죠. 이는 어떻게 보면 ‘사랑과 우정사이’ 그 애매모호한 사이에서 필요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확실하지 않으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전략적 요소가 필요했기 때문이죠. 아… 이렇게 이순신 장군님 못지 않는 전략을 총동원하며 우리는 밀당에 열광하게 됐습니다. 가요계에서도 ‘밀고 당겨줘’, ‘밀당의 고수’ 등 밀당을 다룬 노래가 속속들이 등장하기도 했죠. 그런데 밀당을 맹신하며 공부했던 학도들에게 회의론이 등장했습니다. 아니, 인간의 본능인 연애를 하는데 있어서 밀고 당기고 머리를 쓸 필요가 있냐는 것이죠. 좀 더 솔직해지자는 회의론이 등장하며 기세 등등하던 밀당은 어느새 자취를 조금씩 감췄습니다.

소유 정기고의 '썸'

소유 정기고의 ‘썸’

# 솔직 당당한 ‘썸’ 등장 역시 ‘사랑과 우정사이’의 견고한 20년 아성은 깰 수 없었나요. 그러나 방법론적 밀당의 몰락 이후 신진세력 ‘썸’이 등장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썸’하면 소유와 정기고의 노래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사실 썸은 이전부터 존재한 단어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썸씽’의 줄임말로 등장한 썸은 우리의 연애 속에서 조금씩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갑자기 두 사람이 만나자마자 “맘에 듭니다. 사귑시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사귀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감정을 갖고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썸으로 명명 됐습니다. 앗,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라 꼽히는 한글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에게 명사 썸은 무언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동사가 생성됐습니다. ‘썸탄다’는 말이 그 주인공이죠. 왠지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은 사이이기 때문일까요? 썸은 ‘탄다’와 결합돼 사용됐으며 상대를 지칭하는 말로는 ‘썸남’, ‘썸녀’가 있었습니다. 아, 제가 꿀팁(Honey Tip)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썸남 썸녀는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한 관심이 있을 때를 명명하는 단어인데요, 그 전에 관심 있는 사람을 뜻할 때는 심남, 심녀도 있습니다. 네, 생각하시는대로 관심남, 관심녀의 줄임말이죠. 하하. 어쨌든 다시 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렇게 애매모호하고 알 듯 말 듯한 사이를 우리는 썸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 속 피카츄가 라이츄로 진화하듯 썸을 거쳐 한 쌍의 커플은 연애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었죠.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만큼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다소 추상적이며 서정적인 표현보다는 썸이란 간단 명료한 표현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조그마한 물건이라도 포털사이트를 통해 각 사이트 별 가격을 비교하며 구입하는 우리에게 연애 역시 신중해야 했습니다. 때문에 아직 사귀기는 부담스럽고, 하지만 호감이 가는 이가 생겼을 때 썸을 타게 되는 것이었죠. 그렇게 썸은 우리들의 관계(relationship)에 있어서 스물스물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4년 드디어 ‘썸’의 대중화로 이어지는 기념비적 사건이 탄생했으니 노래 ‘썸’의 등장이었습니다. 초반 “어머 노래 제목이 썸이래~ 이제 썸이 노래 제목까지~”라는 반응이 있었지만 무슨 노래인가 하는 호기심에 한 번, 편안한 멜로디 라인과 실력파 소유 정기고의 보컬, 그리고 중독성을 낳는 가사의 시너지로 두 번! 그렇게 ‘썸’은 메가 히트곡으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썸’은 음원차트 1위 올킬, KBS2 ‘뮤직뱅크’ 5관왕 등극 등 상반기 최고 인기곡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썸’의 인기로 썸이라는 단어는 모든 이들이 함께 사용하고 그 뜻을 알게 됐습니다. 노래 ‘썸’에서는 ‘요즘 따라 내꺼 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 니꺼 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 이게 무슨 사이인 건지 / 사실 헷갈려 무뚝뚝하게 굴지마’, ‘때론 친구 같다는 말이 / 괜히 요즘 난 듣기 싫어졌어’라고 표현했습니다. 앞에서 발표했던 ‘사랑과 우정사이’와는 사이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죠? 20년이 지난 우리는 애매모호한 사이에게 솔직하게 말하게 됐습니다. 오히려 답답하게 애잔한 태도를 취하며 홀로 정리를 하는 것 보다 지금 헷갈리니 확실히 하자는 태도를 보이게 됐습니다. 이어 마지막에서는 ‘니 맘 속에 날 놔두고 한 눈 팔지 마 / 너야말로 다 알면서 딴청 피지 마 / 피곤하게 힘 빼지 말고 / 어서 말해줘 사랑한단 말이야’라고 말합니다. 20년 전 사랑과 우정사이를 헤매던 이들이 들으면 놀랄 정도로 화끈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연애와 성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며 당당해진 최근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우리는 썸이라는 애매하고 아슬아슬하며 불확실하지만 희망이 있고 때로는 설레기도 한 관계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연애에 있어 하나의 필수적인 단계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휴우~ 제 발표를 잘 들으셨나요? 썸은 이처럼 연애 학계에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막강한 파급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최근 트렌드인 솔직 당당한 썸! 여러분도 행복한 썸을 거쳐 많은 사랑하세요. 행쇼~ 그럼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슬라이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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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편집. 최진실 true@tenasia.co.kr 사진. 네이버 검색 화면 캡처, 스타쉽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