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은 확실히 2014년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 유행어다. 10대는 물론, 20~30대에 이제는 중장년층까지도 ‘썸탄다’라는 말의 의미를 가늠하고 인기를 체감하고 있다.연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인데, 재미가 가장 큰 미덕인 예능이 이를 마다할 리가 없다. 예능은 오랫동안 연애를 품어왔다. 2000년 초반에는 연예인과 일반인 여성이 어색하게 둘러앉아 (지금 표현에 따르면) 썸타는‘자유선언 토요대작전-산장미팅 장미의 전쟁’이나 ‘목표달성 토요일-애정만세’ 같은 프로그램이 유행했다. 2008년 방송을 시작해 7년 차 장수 프로그램이 된 MBC ‘우리 결혼했어요’ 역시 연예인 출연자 간 가상 결혼이라는 포맷 속에 대놓고 썸타는 프로그램이다.
썸의 어원은 ‘정확하지 않은 어떤 것’과 ‘중요한 것’이라는 뜻을 동시에 가진 영어 ‘썸씽(Something)’이다. 그리고 21세기 한반도의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에는 ‘관심 가는 이성과 잘 돼가는 감정’이라고 썸을 정의내린다. 국어사전보다 더 정확히 이 단어의 분위기를 설명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노래 가사다. 바로 정기고와 소유의 ‘썸’에 등장한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너’,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가 그 것.
정리하자면 무슨 사이인 것인지 헷갈린다는 연애의 전초전, 혹은 연애에 이르기엔 애매모호한 모든 불확실한 관계들에 대한 정의다. 그러니 썸은 2014년 별안간 등장한 관계가 아니라 인간사의 케미스트리가 흐르기 시작하며 생긴 모든 흐릿한 감정에 마침내 부여된 선명한 이름인 셈이다. ‘모호하나 긴장감 있는, 불확실하나 짜릿한’ 재미난 미덕을 가진 썸을 그렇게 존재가치를 인정받으며 대중매체로까지 진출한다. TV, 가요, 영화 등은 ‘썸’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을까.
사실 지금이야 ‘썸타다’라는 용어가 확실히 정리되었기에 이들 사이의 미묘한 케미스트리를 지칭하는 말이 생겼어도, 과거에는 정의내리기도 모호한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감정 그 자체가 전하는 아슬한 긴장감이 이 프로그램을 보는 주요한 이유였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마침내 사람들은 이 감정을 ‘썸’이라 정의내리기 시작하고, 그것을 기꺼이 부르기 시작했다. 심지어 노래로도 만들어 부르기 시작한 썸의 시대다.
오상진과 서현진(왼쪽부터) 사이 핑크빛 기류가 흘렀다며 SBS가 언론사에 공개한 사진
#’썸’ 이용의 나쁜 예예능은 이제 그 아슬한 감정을 아예 작정하고 홍보에 이용한다. 예컨데, 이런 식이다.
지난달 9일, SBS 파일럿 프로그램 ‘일단 띄워’ 제작진으로부터 한 통의 보도자료가 도착한다. 제목은 ‘오상진&서현진 썸~타는 중(?)’이며, 제법 다정한 두 사람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함께 공개됐다. 보도자료를 통해 제작 관계자는 “기나긴 비행 시간동안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선호하는 여행 장소도 일치해 자주 같이 다니며 마치 연인 분위기를 연출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오상진은 서현진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모자와 기념품을 사주는 등 평소와는 달리 선물공세를 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아마존행도 함께 하게 된 두 사람은 단 둘만의 시간을 보내며 핑크빛 기류를 이어갔다”고 전했다. 이 보도자료는 순식간에 다수의 매체에 의해 기사화됐다. 제목만 보고 정말 두 사람이 연인 전초전 단계일 것이라 생각한 네티즌, 순식간에 낚이고 말았다.
10COMMENTS, 그래요. 이제 썸 마저도 홍보의 수단이 되었군요. 제목따라 간다더니, ‘일단 띄우고 보자’네요~!
그런가하면 tvN ‘로맨스가 더 필요해’의 경우에는 연애를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출연진에 남녀의 분명한 역할을 부여해야한다는 점은 이해가 가지만, 그놈의 썸라인이 너무 자주 바뀌었다. 첫 회에는 이미 열애설이 난 홍진호와 홍진영이 출연해 먹잇감이 되었다. 두 사람 사이 오고간 문자메시지가 공개되었고, 묘한 기류로 몰아갔다. 이후 홍진영이 이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뒤로는 레이디제인과 홍진호가 썸남썸녀로 엮이게 됐다. 급기야 레이디제인은 한 강연에서 ‘내가 홍진호와 썸남썸녀 콘셉트이다’라고 말했다가 기사화되면서 양측이 이를 해명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10COMMENTS, 으힛, 제작진 욕심은 알겠지만 저러다 괜히 출연진들 사이 어색해질까 말까 걱정되는 건 오지랖인가요~.
‘마녀사냥’의 한혜진(위)과 성시경이 다정하게 이야기 하는 한 장면
#’썸’ 이용의 좋은 예그럼에도 여전히 썸 특유의 긴장감을 적절하게 조절해 프로그램에 활기가 되기도 한다. 최근 200회를 맞은 SBS 장수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의 월요 커플, 개리와 송지효가 정확한 사례다.
처음부터 커플이라고 설정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프로그램 진행 과정 속 알콩달콩 케미스트리는 느껴졌고, 어느 새 월요커플이라는 별칭이 붙게 됐다. 별명이 붙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을 지지하는 팬심이 상당하다는 뜻. 급기야 송지효의 실제 열애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월요커플을 지지하는 이들도 많을 정도였다. 사실 예능 속 러브라인이 현실과 어긋나면 거짓말 논란이 일기 마련인데, 송지효의 열애 기사가 보도된 이후 제작진은 이에 대한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그대로 내보내는 일종의 정면대응을 택하기도 했다. 애초에 ”런닝맨’ 촬영일인 월요일만 커플’이라고 선을 그었고, 그마저도 자연스레 붙은 별명인터라 ‘거짓말 논란’은 피해갈 수 있었다. 두 커플은 이처럼 강력한 지지 속에 서로에게 윈윈이 된다.
10COMMENTS, 그러고보니 개리는 송지효의 ‘응급남녀’에도 카메오 출연했었죠. 여러모로 윈윈인 커플이네요.
비교적 최근에는 JTBC ‘마녀사냥’의 성시경과 한혜진 사이 은근한 기류가 화제가 됐다. 이들 사이의 ‘썸’ 역시도, 설정된 캐릭터라는 느낌보다 그야말로 서로 주고받는 대사 속 은근히 감도는 자연스러운 케미스트리였다. 무엇보다 제작진이 이들의 ‘썸남썸녀’ 콘셉트를 질질 끌지않고 적당한 순간 끊어냈다는 점에서 더 자연스러웠다. 홍보 포인트가 될 수 있음에도, 제작진은 남녀가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생길 수 있는 충분히 자연스러운 감정이 자연스럽게 휘발된 것인양 담백하게 마무리 했다.
10COMMENTS, 근데 진짜 사귀면 안돼요? 은근 잘 맞을 것 같은데.
썸남썸녀① ‘사랑과 우정사이’부터 ‘썸’까지, 썸학개론의 역사
썸남썸녀② 영화로 배우는, 이런 썸남썸녀 조심해라!
썸남썸녀③ 가요계가 ‘썸’을 다루는 방식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SBS,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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