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PD(왼쪽)와 윤고운 PD

예능 PD와 드라마 PD가 만났다. KBS2 ‘해피투게더3(이하 해투3)’의 윤고운 PD와 KBS1 ‘정도전’의 연출을 맡았던 이재훈 PD는 ‘해투3-정도전 스페셜’ 편을 계기로 인연을 맺었다.

인터뷰를 핑계 삼아 술잔을 기울이다 발견한 사실은 ‘예능과 드라마는 정말 다르다’는 것, 그리고 ‘PD들은 정말 자기 영역 외에는 잘 모른다’는 점. 어찌 보면 최근 반향을 일으키며 각자의 분야에서 주목받은 두 PD의 이야기에는 ‘의외의 재미’와 ‘깨알 같은 정보’들이 가득했다. 두 PD 모두 똑같이 나름의 ‘직업병’을 자랑(?)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기자보다도 더 인터뷰의 분량과 구성을 고민하던 두 사람은 그야말로 ‘천상 PD’였다.

“무언가를 만드는 게 PD”라며 늘 새로운 무언가를 쫓는다는 이들. 두 PD의 시선으로 바라본 ‘예능과 드라마’의 이야기를 인터뷰로 풀어봤다.

취했수다: ‘취중에 진담이 나온다’고 했던가. ‘각자의 삶’을 안주 삼아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가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취했고, 그래서 말이 많아졌다. 그 생생하고도 진솔한 이야기를 정리해봤다. <편집자 주>

Q. 예능과 드라마는 정말 다를 것 같다. PD로서 서로의 영역에 대한 판타지도 있을 듯하고.
윤고운 PD(이하 윤): 예전에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드라마가 있지 않았나. 그 드라마 이후 드라마국 PD들이 정말 부러워졌다. 실제로 배우들과 선후배라고 친근하게 부르니까. 우리는 ‘선생님’이라고 부르거든. 뭔가 드라마는 매일 보고 스킨십이 많아서 그런지 인간미가 넘치는 느낌이다.
이재훈 PD(이하 이):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어쨌든 드라마 PD는 현장에서 배우들과 부딪히는 일이 많아서 관계의 애매한 선을 유지해야 한다. 누구나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왠지 다 대접해드려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미묘한 선을 지키는 게 쉽지 않다.

Q. 일단 주어진 포맷부터 다른 것 같다. 프로그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드라마와 비교하면 예능은 포맷이 유동적이다.
이: 포맷이 고정된 게 아니라서 힘들겠다.
윤: 매회 출연자에 따라 포맷을 맞춰야 하니까.
이: 재미없는 출연자 섭외되면 진짜 난감하겠다, 하하.
윤: 그래도 유재석, 박명수가 정말 잘하니까 어떻게든 살려낸다. 톤을 잡는 게 문제지. 재미라는 건 ‘빵빵’ 터지는 데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때로는 진솔한 이야기가 더 와 닿을 때도 있고. 그래서 요즘에는 ‘웃음’에 대한 강박을 버렸다.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예능이 포맷의 문제라면, 드라마는 소재를 어떻게 푸느냐가 숙제일 것 같다. 특히 KBS의 경우에는 ‘공영방송’ 타이틀을 달고 있어 제약이 더 많지 않나. 케이블, 종합편성채널 같은 경우에는 점차 타깃 시청자층에 맞춘 프로그램이 늘고 있는데 말이다.
이: 사실 전체 드라마 수는 많으니까, 그냥 ‘재미’만 있는 드라마도 한두 편은 만들어도 될 법하다. 근데 지상파에서는 그게 어렵다. 영화만 해도 코믹극, 소동극, 잔혹극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지만, 꼭 ‘교훈’이 있는 건 아니지 않나. KBS PD들은 항상 뭔가 메시지를 전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 아예 기획의도를 쓸 때도 논술문 쓰듯이 하고, 하하하. 주제가 무거운 것도 문제지만, 메시지 전달에 천착하면 재미가 없어질 위험이 있어 걱정이다.



Q.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다는 점도 어려움을 키우는 요인일 것 같다.
이: 캐스팅이 안 된다. 마치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듯한 느낌. 그래서 개런티가 싸고 안 알려진 배우 중에서 먼저 찾기 시작한다.
윤: ‘정도전’도 그랬나?
이: 사극은 다르다. 사극을 할 수 있는 배우가 많지 않으니까. 주연 배우들도 그렇지만, 조·단역 배우 캐스팅도 쉽지 않다. 사극에서 필요로 하는 조건들, 예를 들면 ‘말타기’ 같은 능력을 갖춘 분들을 찾는 것도 일이다. 장기적으로는 사극을 위해서라도 ‘배우 풀’을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Q. 요즘에는 통섭, 콜라보레이션 같이 장르의 벽을 허무는 게 인기다.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이: 물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그런 과정을 거친 다양한 작품들이 사랑받고 있지 않나. 다만 아직 지상파 채널에서는 그런 시도를 하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윤: 예능과 드라마도 결국에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똑같은 부분이 있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가 하는 것이다.

Q. 그렇다면 두 분이 각각 예능, 드라마 직군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윤: 성향이 맞아서랄까. 예능은 순발력, 애드리브 등이 중요하다. 연출 자체도 출연자들이 다양한 상황을 맞을 수 있도록 오픈된 상황을 조성하는 식이다. 근데 그게 나와 잘 맞는다. 나는 성격 자체가 사전에 기획하고 꼼꼼하게 계산하는 것보다 예측불허의 상황을 즐기는 성향이다. 또 예능은 토크쇼 외에도 음악 프로그램, 개그 프로그램 등 다양한 범위로 이야기를 확장해 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다.
이: 사실 대학에 다닐 적에는 영화감독을 꿈꿨었다. 하지만 막상 무언가를 해보려고 해도 마음처럼 잘 되지는 않았다. 매일 깨작깨작 뭔가를 쓰는 데 시나리오 한 편을 완성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집에서 반대도 심했고, 하하하. 그리고 대학교 4학년 때 드라마 PD를 준비하는 데, 마음이 너무 편해졌다. 매일 무형의 무엇인가를 쫓다가 상식 공부하고, 논술·작문 한 편씩 쓰고 나니까 뿌듯함이 밀려오더라. 어떻게 보면 현실과 꿈의 접점을 찾은 셈이다.

Q. 좋아하던 일이 직업이 되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회의감을 느낀 적은 없었나.
이: 나도 나름대로 감정의 섬세함이 있었던 사람인데, 조연출 때 다 무뎌졌다, 하하. 영화는 1년에 2시간을 찍는데, 드라마는 1주일에 2시간을 찍는다. 뭔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기계적으로 일하는 시간이 많아지더라. 자막도 예능과는 다르지 않나. 드라마는 직업, 직책, 이름, 역사 소개하는 게 전부다. 소모적인 일을 반복할 때면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다.



Q. 반대로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있을 것 같다.
이: 아무래도 시청자의 뜨거운 반응을 볼 때겠지. ‘정도전’이 특히 그랬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께서 동네에서 으쓱하셨다고 할 때 기분이 좋더라. ‘이 순간을 위해 조연출 7~8년을 버텼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윤: 나는 아마도 섭외 성공했을 때? 하하하. 조재현 씨가 ‘해투3-정도전 스페셜’ 편 출연 승낙했을 때 대단히 짜릿했다. 캐스팅하려고 상갓집부터 산골까지 안 가본 곳이 없다니까. 정말 이럴 때 보면 나도 이 일이 천직이다 싶다.
이: 어떤 형태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PD들의 공통적인 성향인 것 같다. 물론 그 결과물이 좋아야겠지만, 하하.

Q. 나중에 두 분이 한 번 함께 작업해보는 건 어떨까. 왠지 걸작이 나올 것 같다, 하하.
윤: 우린 뭔가 통하는 게 있다니까. 다음에 작품이나 하나 같이 해보자. 콜라보레이션으로, 어때?
이: 지금은 좀…. 한 5년만 더 있다가 다시 물어봐 주세요, 하하하.



취했수다① ‘정도전’ ‘해투3’ PD, “‘정도전’ 뒷이야기가 궁금하세요?”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나도 한마디!][텐아시아 뉴스스탠드 바로가기]
[EVENT] 뮤지컬, 연극, 영화등 텐아시아 독자를 위해 준비한 다양한 이벤트!! 클릭!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