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치킨들의 수난 시대, 월드컵 시즌이다. 4년에 한 번, 월드컵 때마다 엄청난 수의 닭들이 승리를 위해 희생돼 왔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기간에는 치킨집마다 평균 500마리의 치킨이 판매됐다.(닭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월드컵은 치킨 대학살의 장’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복병은 시차다. 월드컵이 열리는 브라질과 우리나라의 시차는 약 12시간. 전국 대부분의 치킨집이 가게를 걸어 잠그고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간, 경기가 펼쳐진다. 이를 증명하듯, 월드컵 특수가 치킨업계를 비켜 갈 것이란 기사가 월드컵 개막과 함께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치킨업계의 월드컵 특수는 정말 없는지, 텐아시아가 4대 치킨 브랜드의 배달 소요시간 비교를 통해 살펴봤다. 오~필승 치맥![사전조사]
한국전이 열리는 날 비교체험을 하고 싶었으나, 알다시피 한국전은 ‘치맥’을 즐기기 곤란한 새벽과 아침에 열린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사전조사에 나섰는데 ‘역시나’였다. 텐아시아가 위치한 충정로 주변 치킨집들의 영업시간은 대개 오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였다. 비상대책회의 끝에 조별리그 빅매치 ‘독일-포르투칼’ 경기가 열리는 17일 새벽 1시에 치킨들을 주문해 보기로 했다.
# 17일, 00:00
‘독일- 포르투칼’ 경기를 한 시간 남긴 17일 자정, 치킨집과의 본격 교신에 들어갔다. 브랜드 선정에는 지명도와 근접도, 주관이 기준으로 작용했다.(위의 표 참조) 표본으로 삼기로 한 치킨은 프랜차이즈 인지도 3대 천왕으로 통하는 ‘네네’, ‘교촌’, ‘BBQ’ 그리고 텐아시아 ‘치킨 마니아’ 최모 기자가 목 놓아 외친 ‘치킨 매니아’였다.(역시, 이름이 중요하다.) 하지만 초반부터 불길한 징조가 감지됐다. 회사주변 BBQ 지점 네 군데에 전화를 돌렸으나, 모두 받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BBQ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네네 손님~(중략) 전화를 받지 않는 지점은, 영업이 마감된 것으로 보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BBQ’ 대신 ‘굽네’로 비교데이터를 변경했다. ‘굽네’에 주문이 들어간 시간은 00시 30분이었다.
POINT:배달 소요시간에서 고려해야 하른 것은 텐아시아와 치킨집들 간의 거리다. 결과부터 밝히면, 거리는 ‘치킨매니아-네네-교촌-굽네’ 순. 배달 소요시간은 ‘굽네-치킨매니아-교촌-네네’ 순이었다. 단, 굽네의 경우 다른 치킨들보다 30분 늦게 주문한 탓에 시간상으로는 가장 늦게 도착했다.
# 00: 37 첫 배달의 주인공은 ‘치킨매니아’였다.
메뉴: ‘새우치킨’ 17,000원
지점: 충정로 1호점
배달 거리: 279m. (도보로 약5분 거리)
배달 소요시간: 33분. 도보.
총평: 빨랐다. ‘경기 시작 전에 치킨을 주문했는데, 경기 끝나고야 받았다’는 민원이 끊이지 않았던 지난 월드컵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치킨매니아’가 도착했을 때 가장 놀란 것은 배달원이었다. ‘배달의 기수’ 알바생이 모두 퇴근하고, 사장님은 행방불명(?)이라, 주방과 홀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앞치마를 입고 직접 배달을 오셨다. 알바생 퇴근? 황금 시간대에 사장님은 외출? 월드컵 특수는 없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실제로 아주머니는 “저녁 시간 때에 경기가 열린 지난 월드컵 때는 일손이 부족할 정도로 주문이 많았는데 올해는 조용하다”며 월드컵 특수는 없다고 말했다. 혹시 한국 대 러시아전에서 국가대표팀의 선전으로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19일 저녁, ‘치킨매니아’에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한국전 이후 주문이 오히려 감소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찍 자고 새벽 경기를 보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많아져 저녁 주문마저 줄어든 것 같다”는 분석을 전해 들었다.
결론: 충정로점 ‘치킨매니아’, ‘월드컵 특수가 뭐예요?’
# 00: 48 두 번째로 도착한 교촌치킨
메뉴: 허니 응원세트. 18,000원
지점: 신공덕점
배달 거리: 총 2.05km (도보로 약31분 거리)
배달 소요시간: 48분.(오토바이 배달)
총평: 교촌치킨은 월드컵을 맞아 ‘이민호와 함께하는 교촌 응원세트’를 특별 판매하고 있었다. ‘허니오리지날/레드오리지날+교촌샐러드+응원경품쿠폰’으로 구성된 세트였다. 경품추천을 통해 에어컨, 이민호DVD, 허니오리지날 교환권, 웨지감자 교환권 등을 준다고 하니 잠시 ‘기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갔다. 고민 없이 ‘허니응원세트’를 주문하기로 했다. 하지만 잠시의 기대는 “준비된 교환권이 없다”는 말과 함께 와르르 무너졌다. 광고로 미끼를 던진 것일까.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할까하는데, “쿠폰 대신 감자튀김을 서비스로 주겠다”는 주인아저씨의 말 한마디에 불평불만이 쏙 들어갔다.(서비스에 약한 인간이여~)
신공덕점 교촌치킨 역시, 월드컵 특수는 크게 없다는 입장이었다. “평소보다 소폭 상승한 것 같기는 하나, 그것이 월드컵 때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도 미미하다”는 게, 배달 아르바이트생의 답변이었다. 다른 지점은 다르지 않을까? 타 지점에 전화인터뷰를 시도했다.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기 시간대가 새벽인데다가 세월호 사태 여파로 전체적인 분위기가 많이 침체됐다. 월드컵 마케팅을 하고는 있지만, 예전만큼의 분위기는 안 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론: ‘교촌치킨’월드컵 특수, 아주 약간!
# 00: 50 ‘네네치킨’의 위엄!
메뉴: 스노윙치즈+쇼킹핫 반반. 21,000원.
지점: 중림점
배달 거리: 총303m (도보로 5분 거리)
배달 소요시간: 52분.
총평: 거리 대비 배달이 가장 늦었다. 그렇다면 혹시? 배달 아르바이트에게 잠시 얘기 좀 할 수 없냐고 물었다. 알바생의 대답을 짧고 굵었다. “너무 바쁘다”며 대화를 거부했다.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시크’한 알바생에게 “월드컵 때문에 주문이 늘었냐”고 재차 물었다. 이번에도 대답은 짧고 굵었다. “배달이 30개나 밀려 있다!”(그러니 더 이상 잡지 말라는 뜻이렸다) 브랜드 파워 1위답게 ‘네네 치킨’은 월드컵 분위기를 어느 정도 누리고 있었다. 다른 ‘네네치킨’ 지점 상황도 알아 본 결과 “월드컵 특수까지는 아니어도, 배달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네네’가 잘 나가는 이유는 고객 취향을 고려한 차별화된 메뉴? (그 이유는 아래, 굽네 아저씨에게서 찾을 수 있다.)
결론: 월드컵 특수, 완전히 없지는 않다.
# 00: 58분 ‘굽네치킨’으로 마무리.
가격: 오리지날 치킨
지점: 신공덕점
배달 거리: 총2.10km (도보로 약 32분 거리)
배달 소요시간: 28분.
총평: 주문 시간/거리 대비, 가장 빨랐다. 배달은 퇴근을 한 아르바이트생 대신, 치킨집 사장님이 직접 하셨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장님의 ‘굽네치킨’에 대한 자부심. 자신만의 ‘치킨론’을 설파하던 아저씨는 테이블 위에 놓인 타사 치킨들에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해서, ‘굽네’ 아저씨가 타사 치킨들의 맛을 비교 평가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여졌다. 타 브랜드 ‘디스’전을 펼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잠시. “매일 굽는 치킨만 먹다가 튀긴 치킨을 먹으니 맛나네”라며 훈훈한 분위기를 조성하셨다. 물론, “건강엔 그래도 굽는 게 최고!”라는 말을 잊지 않는 아저씨였다. 이날 ‘굽네’ 아저씨의 선택을 가장 많이 받은 치킨은 ‘네네’의 스노윙치즈였다. 콩고물을 버무린 듯한 메뉴가 신기했던지, 아저씨의 손이 스노윙치즈로 자꾸만~~손이 가요, 손이 가 . 각설하고. ‘굽네’의 월드컵 시즌 성적은 어떨까. 아저씨의 느긋함에서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월드컵 특수는 거의 없는듯했다. “상황을 더 두고 봐야겠지만 별 다른 차이가 없다. 주말이 오히려 바쁘지, 월드컵 특수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굽네 아저씨의 말씀이었다.
결론: 월드컵특수, 거의 없다”
[비교 체험 후유증]
1년 365일 다이어트 하느라, ‘치맥’을 기피해 온 기자가 이날 먹은 치킨은 지난 1년간 먹은 치킨의 양을 압도했다. 한번 입에 들어간 치킨을 멈추기란 브레이크 없는 차를 세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법. 치킨은 맥주를 불렀고, 맥주가 다시 치킨을 호출했으니, 야밤에 먹은 치맥은 고스란히 피와 살이 되었다고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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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편집. 최진실 true@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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