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건의 오예]
오늘, 주목할 만한 예능
MBC 떠나는 김태호 PD
지상파 경쟁력의 심각성
김태호 PD/ 사진=MBC 제공
김태호 PD/ 사진=MBC 제공
≪정태건의 오예≫
'콘텐츠 범람의 시대'. 어떤 걸 볼지 고민인 독자들에게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가 '예능 가이드'가 돼 드립니다. 예능계 핫이슈는 물론, 관전 포인트, 주요 인물,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낱낱히 파헤쳐 프로그램 시청에 재미를 더합니다.

'불나방' 김태호 떠나보낸 MBC

김태호 PD가 20년간 몸담았던 MBC를 떠나 새 출발을 알렸다. 이로써 더 이상 지상파 방송사에 남아 있는 스타 PD를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MBC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 등을 연출한 김 PD는 지난 7일 공식 입장문을 내고 MBC 퇴사 소식을 밝혔다.

그는 "늘 새로움을 강조해왔지만 '나는 정작 무슨 변화를 꾀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점점 머릿속을 채워갔다"며 "무모한 불나방으로 끝날지언정, 다양해지는 플랫폼과 급변하는 콘텐츠 시장을 보면서 이 흐름에 몸을 던져보기로 마음먹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2001년 MBC 입사한 김태호 PD는 그간 다른 지상파 PD들이 종편 또는 케이블채널로 떠날 때도 굳건히 제자리를 지킨 인물이다. '무한도전'을 통해 이미 오래 전 스타 PD로 발돋움한 그는 수많은 퇴사설, 이적설에 휩싸였지만 MBC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에 많은 이들은 김 PD의 갑작스러운 퇴사 소식에 깜짝 놀랐다. 아무리 미디어 환경이 급변한다고 한들, 그가 현재 인기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버젓이 연출하고 있으니 퇴사를 예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들은 곧바로 김 PD의 다음 행보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가 "미래에 대해 확실히 정한 건 없다"고 밝혔으나 벌써부터 온갖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의 PD는 퇴사 후 타 방송사로 이적, 혹은 프로덕션을 설립하거나 합류한다. 방송 관계자들은 김 PD의 경우를 두고 후자에 조금 더 무게감을 두고 있다. 스스로도 새로운 플랫폼, 콘텐츠 시장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여기에 김 PD가 넷플릭스와 손잡고 새 예능프로그램을 준비한 게 퇴사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의견이 나온다. 세계 최대 OTT 업체인 넷플릭스의 시스템을 직접 경험하면서 그가 평소 갖고 있던 고민에 불을 지폈다는 것이다. 마침 퇴사설도 넷플릭스가 김 PD의 신작 '먹보와 털보' 제작 소식을 공식 발표한 지 한 달도 채 되기 전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태호 PD/ 사진=MBC 제공
김태호 PD/ 사진=MBC 제공
'먹보와 털보'는 김태호 PD가 가수 비, 방송인 노홍철과 함께 준비 중인 로드트립 버라이어티다. 김 PD의 OTT 콘텐츠 데뷔작이자 타 채널 진출작이다. 지상파 방송사 소속 PD가 넷플릭스 예능 시리즈를 연출하는 최초의 프로젝트다. 그 결과 김태호 PD는 손쉽게 활동 반경을 넓히면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쉬워졌고, 타 방송사 이적이 아닌 독자 행보로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 PD와 넷플릭스의 협업을 적극 추진한 게 MBC다. 박성제 사장은 올해 초 이러한 도전적인 프로젝트에 대해 "허락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프로젝트를 권장한다"며 "그래야 제 2의 김태호가 나온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또 최근 방송문화진흥회 업무보고에서 MBC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제작에 대한 계약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OTT 업체에 콘텐츠를 판매해 제작비를 줄이고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다. 막대한 자본 앞에 지상파 방송사가 제작사로 몸을 수그린 셈이다. 하지만 거대 기업 앞에서 제 집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결과, 김태호 PD를 떠나보내는 계기가 됐다.

물론 MBC 입장에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갈수록 광고는 줄어들고, 흐름에 따라가려면 플랫폼 다각화도 절실했다. 결국 김 PD를 놓친 건 플랫폼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갖고 있는 인재들을 언제까지고 잡아둘 명분도, 경쟁력도 갖추지 못한 탓이다.

이처럼 김 PD의 퇴사는 지상파 방송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빠른 속도로 영향력을 잃어가는 채널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 필요하다. 이러다가 대부분의 지상파 방송사가 몇 년 안에 독점 콘텐츠 제작보다 OTT 외주제작사로서의 역할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살아남기 위해선 수익다각화와 제작 역량 강화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제 2의 김태호', '제 2의 무한도전'이 나오지 않는다면 OTT의 역전은 더욱 빨라진다. 김태호 같은 불나방은 언제, 어디서든 나올 수 있다.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 biggu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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