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목할 만한 예능
'1박2일'·'런닝맨' 출신 PD
종편·케이블 이적 후 맹활약
'1박 2일'(왼쪽)과 '런닝맨' 포스터/ 사진=KBS, SBS 제공
'1박 2일'(왼쪽)과 '런닝맨' 포스터/ 사진=KBS, SBS 제공
≪정태건의 오예≫
'콘텐츠 범람의 시대'. 어떤 걸 볼지 고민인 독자들에게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가 '예능 가이드'가 돼 드립니다. 예능계 핫이슈는 물론, 관전 포인트, 주요 인물,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낱낱히 파헤쳐 프로그램 시청에 재미를 더합니다.

방송사 대표하는 '1박 2일'·'런닝맨' 연출 후 떠나는 PD들의 속내는…

KBS2 '1박 2일'과 SBS '런닝맨'은 10년 넘게 각 채널을 대표하는 예능프로그램이다. 그만큼 수많은 PD들이 거쳐갔는데, 대부분 이름을 알린 뒤 회사를 떠났다. 방송국의 간판격 프로그램이지만 PD들에게는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과 케이블채널 진출 전 디딤돌 역할로 전락한 모양새다.

방송사 PD는 비교적 이직이 자유로운 직업군에 속한다. 과거부터 지상파 중견 PD들이 종편과 케이블 혹은 콘텐츠 제작사나 대형 기획사로 적을 옮기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들의 성공 사례가 이어지자 최근에는 저연차의 PD들을 중심으로 '탈 지상파'가 더욱 활발해졌다. 그중에서도 '1박 2일', '런닝맨' 등 무게감 있는 프로그램을 맡았던 PD들의 이적 후 행보가 눈에 띈다.

가장 대표적인 이적 사례는 '1박 2일' 최전성기를 이끈 나영석 PD다. 그는 2012년 KBS를 떠나 CJ ENM에 입성했다. 이적 후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윤식당', '스페인 하숙' 등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tvN의 초석을 다졌다. 최근에도 '윤스테이'나 '출장십오야' 등을 선보였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 받은 그는 2018년 37억원 가량의 보수를 수령했다. 급여 2억 1500만 원에 상여금 35억 1000만 원을 합한 금액이다. 당시 '윤식당2'와 '신서유기6', '알쓸신잡3' 등을 만든 그의 성과를 반영한 결과인데 이적 7년 만에 연봉을 50배 넘게 불린 셈이다. KBS를 떠나기 전 2급 평 PD였던 그는 7000만원 남짓한 보수를 받았지만 지난해에는 급여 2억 8900만 원, 상여금 9억 4000만 원을 받아 총 12억 2900만 원을 수령했다.

나 PD와 함께 '1박 2일'을 연출했던 이명한 티빙 대표는 2019년 미디어콘텐츠본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상반기에만 12억원이 넘는 보수를 받기도 했다.

'1박 2일' 시즌3를 이끌었던 메인 PD들도 모두 KBS를 떠난 상태다. 유호진 PD는 2019년 CJ ENM으로 옮기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는 올해 tvN '어쩌다 사장'을 통해 회사 안팎으로 호평을 얻는데 성공했다. 유호진 PD의 공백을 메웠던 유일용 PD와 김성 PD는 MBN 자회사 스페이스 래빗으로 옮겼다. 지난해 김 PD는 '1박 2일'에서 함께했던 방송인 김준호, 데프콘과 '친한예능'을 선보였다.
'1박 2일'을 연출한 나영석(왼쪽부터), 유호진 PD와 '런닝맨' 출신 조효진, 정철민 PD 사진=텐아시아DB
'1박 2일'을 연출한 나영석(왼쪽부터), 유호진 PD와 '런닝맨' 출신 조효진, 정철민 PD 사진=텐아시아DB
올해 11주년을 맞은 '런닝맨'에서의 전력 이탈도 비슷한 상황이다. 초기 '런닝맨'을 이끌었던 조효진, 김주형 PD는 각각 2016년, 2017년 콘텐츠 제작사 컴퍼니상상으로 이적했다. SBS에서 '패밀리가 떴다', '엑스맨' 등을 연출한 장혁재 대표를 따라간 것. 조효진 PD는 넷플릭스 '범인은 바로 너', 김주형 PD는 넷플릭스 '이수근의 눈치코치'를 연출했다.

2017년부터 '런닝맨' 연출을 맡았던 정철민 PD는 지난해 CJ ENM에 입성했다. 현재 그는 '런닝맨'에서 호흡을 맞췄던 유재석, 전소민과 함께 tvN '식스센스2'를 연출 중이다. '런닝맨' FD였던 고동완 PD도 스튜디오 룰루랄라로 이적한 뒤 A+E(에이앤이) 네트웍스로 다시 한 번 옮겼다. 고 PD는 각각의 회사에서 웹예능 '워크맨'과 '네고왕'을 연달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지상파 PD들의 계속된 이탈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종편, 케이블 채널은 짧은 시간 안에 입지를 확고하게 굳혀 지상파를 위협한지 오래다. 여기에 온라인 기반 플랫폼의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시청 문화가 바뀌고, 전통적인 플랫폼은 무너지고 있다. 경직된 조직 문화와 낡은 규제를 가진 지상파에서는 PD들이 실험정신을 펼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종편과 케이블의 제작 환경은 지상파보다 우위에 있다. 게다가 대우까지 나쁘지 않으니 이적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1박 2일'이나 '런닝맨'처럼 굵직한 필모그래피를 갖춘 PD들은 영입 1순위 대상이다. 실제로 지상파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는 PD들은 수많은 제안을 받는다. 지상파 채널이 이를 뿌리칠 정도로 높은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지상파 방송사는 핵심 인력을 가장 큰 프로그램에 투입하고는 있지만 계속된 누수로 인해 머리가 아픈 상황이다. 현재 두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PD들이 어느날 갑자기 퇴사 의사를 밝혀도 붙잡을 회심의 카드가 마땅히 없다.

예능 PD 지망생에게 지상파 방송국은 여전히 입사 희망 1순위로 꼽히지만 현직 PD들에게는 더 이상 매력적인 회사가 아니다. 그저 이직을 위한 발판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특히 '1박 2일'과 '런닝맨'은 여전히 방송국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케이블, 종편 채널의 '사관학교'로 전락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방송국 입장에서는 현실을 마주하고, 인재를 확보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태건 텐아시아 기자 biggu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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