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그 남자의 감수성
김영민│그 남자의 감수성
개그맨 김영민을 소설에 비유하자면 이다. 연예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지 2주 만에 KBS 으로 데뷔했다. 그것도 자신의 전공분야였던 음악을 접목한 코너 ‘화니지니미니’의 마지막 멤버로 말이다. 꿈에 그리던 KBS 에까지 출연했다. 이대로 승승장구할 줄 알았건만 운은 거기까지였다. 이후 코너들은 “우리 가족도 모를 정도”로 주목받지 못했고 마저 폐지됐다. 어렵게 로 옮겨왔지만 소위 ‘니쥬’ 역할만 2년을 했다. 그러던 차에 또 한 번의 ‘운수 좋은 날’이 찾아왔다. 허리를 다쳐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은 김영민은 “방송 감 떨어지지 않게 여기서 연예병사로 활동하면 어떻겠냐”는 국군방송 관계자의 솔깃한 제안을 철썩 같이 믿고 재검을 받아 현역으로 입대했다. 이번에도 역시 운은 거기까지였다. 하필이면 붐, 다이나믹 듀오를 비롯한 연예인들이 대거 입대하던 시기였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넌 연예병사가 아니라 그냥 병사야.”

눈물 젖은 군 생활에서 나온 ‘감수성’의 내시
김영민│그 남자의 감수성
김영민│그 남자의 감수성
그런 김영민이 의 ‘감수성’의 내시로 복귀한 것은 기막힌 우연, 아니 운명이다. ‘감수성’에서 흘러나오는 슬픈 음악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은 장군도 오랑캐도 아닌 내시다. 자식을 낳기 위해 집에 가고 싶다는 장군들 사이에서 “난 뭐, 집에 가봐야 책이나 읽지”라고 자학하거나, 자신을 변태로 오해하는 적국의 공주에게 “그래도 고맙네요, 날 남자로 봐줘서”라며 씁쓸하게 웃는 내시 앞에서 그 누가 감히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겠는가. 축 쳐진 눈매와 삐죽거리는 입술, 그래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에서 김영민의 “상상하지도 못했던 군 생활”을 떠올리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앞으로 먹고 사는 문제보다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까가 더 걱정이었어요. 대박 코너를 했던 사람도 한 번 나가면 들어오기 힘든 곳인데 저는 오죽하겠어요.” 2년 내내 오로지 ‘개콘’ 두 글자만 생각했던 김영민은, 그래서 ‘감수성’ 첫 녹화를 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에도 그 때를 떠올리면 금세 눈시울이 붉어진다.

제대한 지 일주일 만에 합류하게 된 코너가 대박을 터뜨린 것도 ‘운수 좋은 날’의 시작일까. 하지만 이번에는 그 반대일 것 같다. ‘연예병사’가 아니라 ‘그냥 병사’가 된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내무반 연예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각종 청소년 경연대회와 학생회장 선거에 “목숨 걸면서” 말재주를 키워왔던 그는 “‘오늘도 많은 훈련과 작업 속에서 수고 많으셨습니다’는 오프닝 멘트와 함께 라디오를 진행하고, 음악을 틀고, 신병 들어오면 게스트로 초대해서 첫사랑 얘기부터 쭉 물어보면서 친해지는” ‘김영민의 정전쇼’를 매일 밤 진행했고, 병영일기 노트 3권을 모니터링과 코너 아이템으로 빼곡히 채웠다.

“땡전 한 푼 못 받아도 웃기고 싶어요”
김영민│그 남자의 감수성
김영민│그 남자의 감수성
김영민│그 남자의 감수성
김영민│그 남자의 감수성
운이 아닌 노력으로 얻어낸 결과물은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지속되는 시간도 긴 법이다. 최근에는 Mnet 의 고정 패널로 합류했고, 대학로 공연장에서는 “내시의 감수성”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그의 활약이 돋보인다. 그래서 김영민은 더 이상 억울한 내시가 아니다. “현역으로 입대한 게 마냥 잘됐다고 말할 순 없지만, 만약 그 2년이 없었다면 방송일이 이렇게 간절한지 모르고 지냈을 것 같아요.” 데뷔한 지 7년이 지나서야 무대의 소중함을 깨닫고, “땡전 한 푼 못 받아도” 웃기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 이미 억세게 운 좋았던 사나이가 이제 피나게 노력하고 있다. 운수 좋은 날은 끝났다. 대신 노력으로 얻어낸 첫 번째 전성기가 시작되고 있다.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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