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삼동│저는 송삼동이라 합니다
그와의 대화는 적당히 풀어진 듯 편안하고 담백해서 자꾸만 귀를 기울이게 했다. 유난히 단출하던 목소리와 말투 덕분이었을까. 지난여름, 영화 <남쪽으로 튀어>의 촬영을 위해 남쪽 섬 세 곳을 돌며 촬영했던 기억에 대해 “엄청 더웠거든요. 근데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요. 고생이라는 느낌이 전혀 안 들었어요. 정말 재밌었어요”라던 송삼동의 말은 빤한 한 줄의감상에 그치지 않고, 그 여름 날의 섬과 시간들을 듣는 이의 눈앞에 생생히 그려냈다.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그는 조금의 포장도 하는 법이 없다. 자신을 “좀 소심해서, 잘한다고 하면 더 잘하는” 사람이라 소개하고, 퀴어 영화 <알이씨(REC)>를 하기 전엔 “(동성애에 대한)혐오 같은 게 조금 있었는데, 영화를 찍고 나서 그런 편견이 없어졌다는 게 가장 큰 배움이었다”며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말하던 그의 모습 위로, 좋으면 좋은 것이 얼굴에 흠뻑 젖어 그려지던 소박한 권 순경이 그대로 겹쳐졌다.

“사실 저는 ‘있는 것만 하자’는 주의거든요”
이전에 <알이씨(REC)>(왼쪽)와 <낮술>을 통해 송삼동은 이미 자신의 얼굴을 알렸다." src="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AS10GyrKem5PJGOD5tf49fnEpY8CJi.jpg" width="555" height="185" border="0" />

“사실 저는 ‘있는 것만 하자’는 주의거든요. 딱 그 역할만큼만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서요. 애드리브도 별로 즐기지 않아요.” 극적인 요소가 핵심이 되곤 하는 한국 영화판에서, 다소 심심하게 보일 법한 연기일 지라도 있는 그대로가 우선이라는 배우는 드물건만 이에 대해 덤덤하게 말하던 그에게선 확신이 느껴졌다. <남쪽으로 튀어>에서 권순경은 몇 명의 조연들 중 한 명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들섬에 가면 꼭 있을 것만 같은 수더분한 모양으로 사람들에게 “회는 한 접시 하셨냐”고 묻고, 직접 오토바이로 사람들을 태워다 주며 구석구석 섬을 보듬던 그는 꼭 그만큼만의 존재감으로 기억 한 편에 남는다. 따뜻하고 정의롭지만 이를 내세울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이 깨끗한 권 순경이 영화 속 캐릭터라기보다 딱 그 모습 자체가 되고 말았던 것은 “실제로 섬에 가서 만난 순경을 보고, ‘이거다. 이 사람처럼 되자’”고 생각했던송삼동의 생각이 오롯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가 권 순경이 되었던 방식은 자신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짚으며 가능한 방식을 택해 꼭 한 걸음 씩 전진해온 송삼동의 지난 시간과 무관치 않다.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공부하다, 갑자기 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전공자도 아니고, 키나 얼굴로 시선을 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던”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편으로, 부족한 경험을 쌓는 일에 전념했다. 초심자에게 가장 열려 있다는 이유로 아동극을 선택해 전국을 돌아다녔고, 독립영화 사이트에 매일 들어가 “송삼동이라 합니다”라며 수시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렇게 연이 닿는 작업을 해온 9년 동안 그는3편의 연극과 80편의 독립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 <낮술>처럼 그를 “아, <낮술>의 송삼동!”이라 기억하게 하는 작품을 만나기도 했으나, 이를 인생의 기회라 여기며 감상에만 젖지 않고 “워낙 시나리오가 좋았던 탓이에요. 그런데 늘 <낮술>로만 기억되니 ‘뭔가 더 해야겠구나’라고 계속 생각했어요”라 말했다.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서 결혼하고 아이 낳으며 살길 바라신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도 이 길을 계속 걸어왔던 그의 명확한 진심이 반짝이던 순간이었다.

송삼동의 어느 순간

송삼동│저는 송삼동이라 합니다

송삼동│저는 송삼동이라 합니다
늘 이 길을 꿈꿔온 송삼동이지만 자신이 긴 시간 매달려온 연기에 대한 생각은 단순하다. “연기라는 게 원래 그런 척하는 거고, 거짓말 하는 거잖아요. 다만 ‘거짓말을 어떻게 진짜 같이 하느냐’인거죠.” 오디션을 잘 못 보는 편이라는 요즘의 고민에 대해 “어쨌든 제 문제라고 생각해요. 잘 봐야죠. 잘 봐야죠”라며 거듭 다짐하던 그의 말은 이제껏 걸어온 보통 날 속의 또 한 걸음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쥘 수 있는 만큼을 해낸 다음 또 다시 손에 쥐어지는 것을 통해 스스로를 확장해 온 그가 아니던가. 긴 시간 꿈을 곱씹으며다져진 송삼동의 시간들은 딱 그만큼 순수하고 다부지기에,그의 보통 날이 모여 어떤 날이 되는 순간을 함께 꿈꾸며 기대하는데 전혀 모자람이 없는 듯하다.

의상 협찬. 스니저 퍼레이드 (Sneezer Par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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