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책방>│어른아이의 북클럽
오른손잡이 고수들의 왼손 탁구 게임을 보는 것 같다고 할까. 팟캐스트 방송 <이동진의 빨간책방>(이하 <빨간책방>)에서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소설가 김중혁이 주고받는 이야기들은 작고 단단한 공처럼 뭉쳐져 두 사람 사이를 경쾌하게 오간다. 이동진이 비교적 높은 톤의 목소리로 조금도 힘들이지 않은 듯 드라이브를 걸고, 김중혁이 언뜻 무심한 말투로 던지는 이야기는 커트 볼이 되어 날아간다. 영화평론가로 익숙하지만 소문난 다독가이기도 한 이동진과 스스로가 직접 책을 쓰는 작가인 김중혁이기에 어깨에 힘을 빼고 건네는 이야기 속에는 오롯한 내공이 들어있다. 그래서 2013년 새해 첫 <빨간책방>의 녹음이 이뤄진 서교동의 한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하지만 당대의 영화평론가와 소설가가 나누는 위엄 있는 대담을 기대하며 찾은 그곳에서 “이럴 때 보면 (두 사람) 초등학생 같아”라는 제작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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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감싸인 작고 따뜻한 오두막 같은 스튜디오에서 <빨간책방> 팀이 주고받는 대화는 반에서 제일 인기 있는 아이들이 모여 있어 나도 끼고 싶은 북클럽 같다. 녹음이 시작되기 전 “책은 재밌었어요?”라고 김중혁의 감상을 묻던 이동진은 “하나는 좋고 하나는 별로였어요. 나중에 (방송에서) 얘기해줄게요”라는 그의 말에 “어~ 하나를 되게 높게 평가라는 구나. 뭔지 알겠어~”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가장 열띠게 이야기한 주제는 책이 아니라 라면이다. “컵라면 원래 안 먹어요, 맛이 없어서”라는 김중혁의 말에 이동진이 “컵라면이 더 맛있는데. 그럼 뭐 드세요? 집에서 파스타 드세요?”라고 농을 던진다. 이를 놓칠 새라 김중혁도 차도남인양 “말아서 먹죠. 알리오 엘리, 에, 알리오 에 올리오”라고 응수하지만 살짝 버벅거린 탓에 “오늘 인터뷰를 위해서 외워온 것 같아”라는 이동진의 말에 끝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다. 녹음이 시작돼서도 마찬가지다. “서간 소설에서 음모를 꾸밀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김중혁), “편지에 독을 바르면 되죠. <장미의 이름> 비슷하게. 허허허허”(이동진) “독을 바르면, 죽어버리면 답장이 안 오잖아요”(김중혁), “조금만 바르면 안 될까요?”(이동진) 이 ‘초딩 돋는’ 투닥거림은 단지 방송의 재미를 위한 의식적인 장치가 아니다. 오프닝을 제외하고는 대본에 구애받지 않는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게 그저 반갑고 말꼬리를 잡아 허허실실 농담을 주고받는 게 진심으로 즐겁다는 표정이다. 이 시덥지 않고 소박한 대화 속에는 넓게 즐겁고 깊게 유익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래서 책을 읽지 않고 듣기만 해도 왠지 똑똑해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는 <빨간책방>은 매월 1일, 15일에 업로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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