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그루│Grew up
한그루│Grew up
스물여덟, 인생이 얼룩덜룩하게 채색된다는 걸 깨닫는 나이. 사랑은 원하는 방향으로 끝을 맺지 못하고, 사회인으로서 쌓은 경력은 노곤한 생활의 무늬가 되어 얼굴을 덮는다. JTBC (이하 )의 동비는 그런 스물여덟 여자다. 그녀는 오래 사귄 남자친구 기중(김영광)이 다른 여자와 정략결혼하려는 모습을 지켜보고, 회사에서 잘린 후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하며,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세상에서 떠나보낸다. 남들 앞에선 웃음으로 가장하지만, 혼자 남겨지면 얼굴에서 모든 표정을 지우는 동비가 실제로는 스물하나, 웃음 많은 여자아이인 한그루에게 지금 주어진 몫이다. 동비의 심리를 짐작하기 위해 책 를 참고해야 했을 만큼 아직 어린 이 배우에게 는 그저 재미고 기쁨이다. 또래 배우들과의 연기, 롤 모델이었던 이미숙과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사실, 동비의 분량을 늘려달라는 시청자들의 요청. 이 모든 건 요즘 그를 평소보다 더욱 자주 웃게 하는 것들이다.

웃음 많은 여자아이, 배우의 길에 당도하다

한그루│Grew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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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법도 하다. 지금까지 한그루의 삶은 연기를 위해 바쳐졌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모에게 직접 쓴 대본을 보여주며 같이 연기를 했던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을 시작으로 춤과 공부를 병행해야 했던 미국 생활, 북경국제예술학교에서 연기와 검술을 다듬었던 중국에서의 생활은 모두 지금 이 순간에 닿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연기만 배워도 배우의 길을 갈 수 있었겠지만, 이것저것 배워놓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미국에서의 4년 동안 여덟 시간 춤 연습을 하고, 서너 시간만 자면서 공부하는 일과를 한 번도 거르지 않은 소녀의 끈기는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 잡은 목표를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4년 동안 승마도 배웠죠. 혹시 사극을 하게 되면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라면서도 “에잇, 아쉬워요. 처음부터 그냥 연기만 배웠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라는 한그루의 투정에서는 배우를 가리키는 그의 바람직한 욕심이 넓고도 깊은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스물여덟에게 그렇듯, 갓 스무 살이 된 누군가에게도 인생은 명쾌하지 않다. 데뷔의 기회는 뜻밖에도 가수로 찾아왔고, “일주일 동안 방문 밖으로 나오지도 않은 채” 고민한 끝에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머릿속은 늘 물음표 투성이었다. “작년에 ‘Witch Girl’로 데뷔했을 때 진짜 악플도 엄청나게 많았고 완전 미움 받았거든요. 그때 이런 생각이 처음으로 들더라고요. 이렇게 할 거면 그 많은 걸 다 배운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무도 내가 그런 걸 했다고 좋아해 주지도, 인정해주지도 않는데.” 다행히도,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은 어디서든 테두리 밖으로 솟아나오기 마련이다. 눈 밝은 감독은 그를 채널 CGV 에 캐스팅했고, 한그루는 연기 데뷔작이었던 이 작품에서 스턴트 없이 모든 액션을 해냈다. “오디션 볼 때 검술을 보여 드렸는데, 그것 때문에 저를 뽑으신 것 같아요. 역시, 배운 건 하나도 버릴 게 없다니까요! 히힛.” 땡그란 눈으로 생긋 웃고는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얼마나 고단했는지, 어떻게 자신을 다독여왔는지 따위는 가볍게 털어버린다. 그가 기억하고 싶은 건 오로지 하나, 배우의 길에 막 당도했다는 사실이다.

“숲도 나무 한 그루로부터 시작되잖아요?”

한그루│Grew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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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그루│Grew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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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 한그루가 꾸는 자유로운 꿈은 자신에게 주는 일종의 선물이다. 지난 시간 동안 충실하게 자라왔고, 앞으로도 훌쩍 자라날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보상인 셈이다. “진짜 스물여덟 살이 될 때까지는요, 일단 주어지는 작품은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다 해봤으면 좋겠어요. 현장에서 경험하는 게 큰 배움을 주더라고요. 지금보단 더 안정돼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지 잘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혼란스러울 때가 많거든요.” 어쩌면 직접 만들었다는 이름의 의미가 그의 운명을 가리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숲도 나무 한 그루로부터 시작되잖아요? 그것처럼 제 이름도 ‘모든 게 나로부터 시작돼서 숲을 이루리라’ 이런 뜻일 거라고 혼자 생각해봤어요.” 숲을 꿈꾸는 나무라니, 더욱 눈여겨볼 수밖에. 단단한 뿌리로 땅 속 깊은 곳을 꽉 붙든 채, 무성한 가지들을 쉼 없이 뻗어갈 나무 한 그루가 여기서 조용히 자라고 있다.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김희주 기자 fif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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